logo

“내 말을 지키면 결단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요 8:51-53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NIV I tell you the truth, if anyone keeps my word, he will never see death. At this the Jews exclaimed, Now we know that you are demon-possessed! Abraham died and so did the prophets, yet you say that if anyone keeps your word, he will never taste death. Are you greater than our father Abraham? He died, and so did the prophets. Who do you think you are?
KJV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If a man keep my saying, he shall never see death. Then said the Jews unto him, Now we know that thou hast a devil. Abraham is dead, and the prophets; and thou sayest, If a man keep my saying, he shall never taste of death. Art thou greater than our father Abraham, which is dead? and the prophets are dead: whom makest thou thyself?

 

요 8:51-53에 대한 매튜 헨리의 해석
“그는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할 것이다.” 타락하지 않는 인간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믿는 자들의 육체가 죽음을 면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면 믿는 자들이 죽음을 보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옳겠는가? 믿는 자들은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않으며 죽음을 두렵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초월하여 명백하게 또는 담담하게 앞을 바라본다. 그리고 죽음 저편에 있는 그들의 생활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죽음을 무시하고 보지 않는다. 비록 죽음을 면케 하는 약이 없고 누구나 죽음을 보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못할 것이요, 항상 죽음에 붙들려 있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옮기워졌다. 그리고 두 번째 죽음의 해를 입지 아니할 것이다. 본문에서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죽음은 이 두 번째 죽음을 말한 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과는 상반된 개념이다. 신자들은 이 죽음을 결코 맛보지 아니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정죄함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이 없는 곳에서 또 “그들이 영원히 죽지 아니할 곳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눅 20:36). 현 세상에서는 그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그것을 맛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곧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할”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출 14:13). (매튜 헨리, ‘성경주석 요한복음’ [하])

 

    이상의 “현 세상에서는 그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그것을 맛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곧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할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은 요 8:51-53의 그릇된 번역과 그릇된 해석에서 온 것으로 그릇된 주장이다. 이 구절의 바른 해석은 “현 세상에서 그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고,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고,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할 수 있고, 육이 결단코 죽지 아니할 수 있다”이어야 한다.

 

요 8:51-53에 대한 베이커 성경주석의 해석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고의적으로 변경시키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으며 그런 뜻으로도 말씀하시지도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죽음의 쓴 잔을 맛보았다(히 2:9). 유대인들의 주님에 대한 또 다른 공격 방법은 그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51절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주님께서 이 말씀을 영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그 자신의 몸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의 삯인 죽음의 쓰라림을 잠시 맛보셨다. 그러나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51절)라는 주님의 말씀이 가장 진실하였던 때는 바로 이때였다. 그리스도인 역시 죄의 삯인 죽음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에 이르는 문이기도 하다. 그 후로는 심한 비방, 원수의 들려 올려진 손, 죽음의 쓰라림은 없다. (베이커 성경주석 ‘요한복음’ [상] 468,507-8)

 

    이상의 “유대인들은 51절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그들 중의 대부 분은 주님께서 이 말씀을 영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 8:51-53의 말씀을 하실 때 이를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결단코 보지 아니하리라”를 문자 그대로 육의 몸이 죽지 아니하는 것으로 받아드린 것이다. 요 8:51-53의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요 8:51-53에 대한 레마 성경주석의 해석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52절)는 51절에 언급된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는 말과 같은 뜻이나 육체적인 죽음을 좀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위의 두 표현이 다 육체적인 죽음을 가리키긴 하지만 예수는 후자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51절) 영적인 죽음의 측면을 말씀하시었으나 유대인들은 이를 오해하여 육체적 죽음의 강한 표현인 전자로 받아들임으로써 예수의 말을 크게 반박하였다. (레마 성경주석 ‘요한복음’ 304)

 

    이상의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육체적인 죽음을 좀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음을 결단코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지 않고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바른 번역과 바른 해석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육체의 죽음을 결단코 맛보지 아니하리라. 즉 육의 죽음이 없다”이어야 한다.

 

요 8:51-53에 대한 이상근 목사의 해석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강한 부정이며, 신약에서는 본절 뿐이다. 미래에 죽음을 보지 않겠다는 것은 현재 영생을 벌써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도 죽었는데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니 그것은 미친 소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상근 목사 ‘신약주해 요한복음’ 176) 

 

    이상의 요 8:51-53에 대한 해석에서 “미래에 죽음을 보지 않겠다는 것은 현재 영생을 벌써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라는 해석은 애매한 해석이며 절대로 바른 해석이 아니다. 바른 해석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의 육체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그 때부터 육이 죽지 않는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다”이어야 한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죽은 후에 부활하여 갖게 되는 영생이 결코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그 때부터 갖게 되는 육이 죽지 않는 영생을 의미한다.


요 8:51-53에 대한 박윤선 목사의 해석
예수님의 주장을 믿는 자는 영생하게 된다(51절). 52-53절의 부분에서는 유대인들이 또 다시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 들렸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변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곧, 예수님께서 어떻게 신자들을 죽지 않게 하여 주실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영생하고서야 남들도 영생할 터인데, 예수님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말인가? 선지자들과 아브라함도 다 죽지 않았는가?”한다. (박윤선 목사, ‘성경주석 요한복음’ 285)

 

    이상의 박윤선 목사의 주장은 요 8:51-53의 기록을 통해서는 나올 수 없는 것으로 그릇 된 것이다. 이 구절에서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이란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의 육 이 죽었다는 말이며 그들의 영혼이 죽었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육이 죽지 않는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으로 육이 죽지 않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 조건이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육이 결단코 죽음을 보지 않고 죽지 아니한다”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육이 결단코 죽지 않고 영생불사한다는 말씀이다.
    요 8:51-53의 기록의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의 예수님의 말씀과 창 3:19-24의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영생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동일한 같은 뜻의 말씀이다. 즉 “내 말을 지키면 육이 죽지 않고 영생불사한다”는 것과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육이 죽지 않고 영생불사한다”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 = 생명과]라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먹으면”이라는 말과 “생명과를 먹으면”이라는 말은 같은 뜻으로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생명과이다”라는 뜻이다. 생명과인 예수님의 말씀만을 먹으면, 즉 생명과인 예수님의 말씀만을 지키면 육이 죽지 않고 영생불사 한다는 말씀이다.

 

요 8:51-53의 말씀은 요 11:21-26에서 다시 설명되고 있다.
요 11:21-26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이 구절은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로 번역해야 한다.)

NIV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KJV Jesus said un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that believeth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참고: 번역문제

요 8:51(b)의 번역

NIV  I tell you the truth, if anyone keeps my word,

he will never see death.

 

BNT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ἐάν τις τὸν ἐμὸν λόγον τηρήσῃ,

θάνατον οὐ μὴ θεωρήσῃ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KOR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요 11:26(b)의 번역

NIV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BNT  πᾶς ὁ ζῶν καὶ πιστεύων εἰς ἐμὲ οὐ μὴ ἀποθάνῃ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KOR  무룻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