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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NIV Since the children have flesh and blood, he too shared in their humanity so that by his death he might destroy him who holds the power of death-that is, the devil-and free those who all their lives were held in slavery by their fear of death.

개역한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개역개정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공동번역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표준새번역   일생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쉬운성경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우리말성경   죽음이 두려워 평생 노예로 매여 사는 사람들을 풀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필자            죽음의 공포에 의한 노예상태에서 일생을 보내는 자들을 해방시키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여기의 “마귀를 없이 하신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마귀를 없애는 것(destroy)이 아니라 마귀가 가지고 있는 사망의 권세(the power)를 없앤다는 뜻이다. 마귀가 아담 때로부터 받은 사망의 권세가 예수님의 오심과 예수님의 사망과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에게로 넘어 온 것이다. 이제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마귀의 손에서 예수님의 손으로 넘어 왔다. 죽고 사는 것이 예수님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여기의 히 2:15에 나오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는 것은 전혀 그릇된 번역이다. 바른 번역은 “죽음의 공포에 의한 노예상태에서 일생을 보내는 모든 자들을 해방시키려 하심이라”이어야 한다. 바른 해석은 “일생동안 죽음의 두려움으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매여, 죽음의 공포의 종으로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이어야 한다. “죽음의 공포에 의한 노예상태”라는 말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공포를 주는 것이며, 이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있는 상태가 바로 “죽음의 공포에 의한 노예상태”이다. “노예상태에서의 해방, 노예에서의 해방”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다. 죽음의 공포에 의한 노예상태의 해방, 죽음의 공포에서의 해방은 죽음에서의 해방이며, 죽음에서의 해방은 곧 육이 죽지 않음이다. 육이 죽는다면 죽음의 공포에서의 해방은 있을 수 없다.
    육이 죽지 아니해야 죽음에서의 두려움과 공포가 없게 된다. 예수님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영혼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 죽음의 공포에서의 해방, 죽음에서의 해방, 육이 죽지 않음도 포함하는 구원이었다. 예수님만을 믿고 그 말씀에만 순종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지 않고 생명과만를 먹는 것과 전혀 동일하다. 요 8:51-53, 요 11:25-26, 히 2:9, 히 2:14-15에 근거하여 예수님만을 믿고 말씀에만 순종하면 육체의 죽음이란 결단코 없다는 결론이다. 요 11:25-26에 나오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 히 2:14-15에서 해석되고 있다. 이상의 기록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려고 이 세상에 오시었다”는 교리가 정립된다. 2,000여년 전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려고 이 세상에 오시어 죽음을 직접 맛보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으면 요 8:51-52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결단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 하리라”라는 말씀이 적용되어 육의 죽음을 보지 않고, 육의 죽음이 없이 영생불사의 삶을 누릴 수 있다. 한편 에녹과 엘이야와 같이 육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천국으로 들림 받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생명과로 오신 예수님만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만을 지키면 육의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이 말씀 중에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은 육체의 죽음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의 삶”은 아담 안에서와 같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고, 육체가 죽지 않고 영생불사하는 삶이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히 9:27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믿는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모든 사람은 일체의 예외 없이 모두 죽는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전혀 그릇된 것임이 이상의 여러 성경기록을 통하여 밝혀졌다. 이상의 연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요 8:51-53의 예수님의 말씀과 요 11:25-26에 나오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해석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4:10)
고후 4:8-12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NIV For we who are alive are always being given over to death for Jesus' sake, so that his life may be revealed in our mortal body. So then, death is at work in us, but life is at work in you. (고후 4:11-12)


    여기의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는 기록은 바울의 예수님의 복음전도는 죽음을 각오한 죽음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즉 바울의 복음전도는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기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라는 뜻은 죽음 곧 사망 안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게 되므로 사망은 바울 안에서 역사한다고 한 것이다. 바울의 죽음 곧 사망 안에서 전하는 복음을 통하여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곧 믿는 자가 죽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바울의 이러한 복음전도는 믿는 신자들의 죽을 몸을 예수님의 생명 안에서 죽지 않고 생명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의 죽지 않는 생명은 바울의 죽음 안에서의 복음전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뜻이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his life may be revealed in our mortal body)의 뜻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살아계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죽게 될 몸(our mortal body)이 죽지 않고 영생불사한다는 말씀이다. 고후 4:8-12에 “죽게 될 몸이 예수님 안에서 죽지 않게 된다”는 바울의 말은 롬 8:11의 기록을 다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살전 4:17)
살전 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상의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후에 부활하는 신자들은 영생하며, 주님의 재림시에 살아있는 신자들은 육이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는 뜻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재림 이전에 죽어 육이 무덤 속에 있고 영혼은 천국에 있던 자가 영혼과 육의 재결함 곧 부활하게 된다는 뜻이다. 흙 속에 묻혀있던 썩은 육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성경 밖의 세상적인 지식으로의 설명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기독교인들이란 불신앙의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황당한 소리로 가득찬 성경의 기록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며, 죽어서 무덤 속에 장사 지낸지 4일이 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던 사건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며, 오병이어로 남자만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며, 죽었다가 3일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시었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을 믿는 사람들이며, 살전 4:13-18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요 11:25-26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를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지옥에 갈 영혼만의 구원을 위하여 오시지 아니했고, 육이 죽지 않은 육의 죽음에서의 구원을 위해서도 오시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3)
고전 15:50-54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는 이미 죽어서 무덤 속에 썩어 있던 육체가 썩지 아니할 상태로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다. 또한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는 뜻은 우리의 현재의 몸은 죽으면 반드시 썩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 때에 살아 있던 성도들은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하는 상태로 변화된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에 살아 있는 신자들은 육이 죽지 않는 상태로 변화되어, 죽었다가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이다. 현재 살아 있는 몸은 공중으로 들림 받을 수 없고 변화되어야만이 들림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믿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신자들은 육이 죽지 않고 들림 받아 천국에서 영생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아버지이시다.
    요 11:25-26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의 기록 중에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는 살전 4:13-18과 고전 15:50-54에 기록된 육이 죽어 무덤 속에 있다가 주님의 재림 시에 부활한다는 뜻이다. 살전 4:13-18과 고전 15:50-54의 기록에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때에 살아있던 신자들은 분명히 육이 죽지 않고 천국에 간다. 만약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재림 시에 살아있던 신자들에게만 적용된다면 이는 말이 안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 살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지킨 자는 육이 죽어 무덤 속에 있다가 재림 시에 부활하여 천국에 가고, 주님의 재림 시에 살아 있는 자는 육이 죽지 않고 천국에 간다면 공평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재림 시에 살아 있던 신자들에게도, 그리고 오늘날의 살아 있는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해야 오늘날의 신자들과 주님의 재림 시에 살아 있는 신자들 모두에게 공평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이 말씀대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에녹과 엘리야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오늘날의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은혜의 선물로 육이 죽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예수님,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나타났다.
    마 17:1-8, 왕하 2:11, 신 34:4-6의 기록에 의하면 몇 천년 전에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와 죽어 장사지낸바 된 모세가 예수님,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있던 변화산에 나타났고 그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하였다. 이 사건은 성경 밖에서의 설명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설명이 불가능한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천국에 있던 그들이 지상에 직접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의 믿는 신자들도 에녹과 엘리야처럼 육이 죽지 않고 천국에 갈수 있으며, 죽어서 육이 무덤 속에 장사지냈다고 하더라도 모세처럼 모습이 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기독교인이란 누구인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예수님으로 오시었으며,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의 삶을 사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성경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는 자들이 올바른 기독교인이다. 모든 성경의 말씀을 믿으면서 아래의 기록은 안 믿는다면 그는 올바른 기독교인이 결코 아니다. 요 11:25-26에 나오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과 요 8:51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결단코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의 말씀과 롬 8:11의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말씀과 히 2:14-15의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의 권세를 없이 하시며, 또 죽음의 공포에 의한 노예 상태에서 일생을 보내고 있는 모든 자들을 해방시키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 성경의 다른 구절들은 믿으면서 이상에 기록된 성경말씀은 믿지 아니한다면 이는 그릇된 믿음의 소유자이며 그릇된 기독교인이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후 5:1-8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고후 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 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NIV For while we are in this tent, we groan and are burdened, because we do not wish to be unclothed but to be clothed with our heavenly dwelling, so that what is mortal may be swallowed up by life.

 

    이상의 고후 5:4의 뜻은 “육의 장막에 거하는 우리가 육의 몸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몸으로 다시 입는 것이니 이는 죽을 것 곧 죽을 육신의 몸이 생명 곧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입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롬 8:11의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를 다시 설명하는 기록이다.

딤후 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KJV  For I am now ready to be offered, and the time of my departure is at hand.
NIV  For I am already being poured out like a drink offering, and the time has come for my departure.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I have kept the faith. Now there is in store for me the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will award to me on that day-and not only to me, but also to all who have longed for his appearing.
몬 1:9-10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딤후 4:6-8에서 바울은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고, 빌레몬서 1:9-10에서 “나이 많은 나 바울”이라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불확실한 전설일뿐이다. 롬 8:11에서 바울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여 분명히 죽게 될 육이 성령님을 통하여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죽어서 그의 영혼만이 천국에 갔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일이며 에녹과 엘리야처럼 죽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벧후 1:13-15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여기에서 베드로가 말하는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I live in the tent of this body)과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I will soon put it aside)란 육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건데 베드로는 그의 육의 죽음을 예견하고 글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요 6장, 요 8장, 요11장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말을 지키면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직접 들었고 배웠다. “그의 육이 몸이 죽었다. 순교했다”는 실제의 기록과 증거가 없는 한 그가 죽어서 천국에 갔다고만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