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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에녹과 엘리야와 같이 믿고 행하면 육이 죽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
박형룡 목사의 주장

성경은 육체적 죽음을 형벌 즉 “죄의 값”으로 말한다. 그러나 신도는 이미 칭의되어 형벌의 대가를 지불해야할 의무 아래 있지 않는 고로 “왜 그들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가?”하는 문제가 자연히 일어난다. 그들은 어찌 에녹과 엘리야가 휴거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땅에서 하늘로 직접 이전되지 않는가? 하나님의 백성의 최선(최고로 선)한 자 들도 수난과 사망에 굴복할 뿐 아니라 그들의 수난과 사망이 악자들의 당하는 것보다 더 참혹할 때도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죄로 인한 형벌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담당하신 고로 그들의 모든 죄는 충분히 용서되고 형벌 받을 본무는 완전히 해소되었다. 그들은 행위 언약의 규정으로서나 정죄하는 권력으로서의 율법 아래 있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신도들을 몰아 사망의 공포스러운 경험을 통과시킴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시는가?
신도의 수난과 사망은 형벌적인 것이 아니다. 즉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신도의 죽음에서 형벌적 의미가 제외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그들의 사망은 다른 어떤 고귀한 목적을 가진다는 것은 필연한 사실이다. 신도의 죽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훈련과 징계의 정점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히 12:6).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도다”(시 116:15). 사망 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연적 고악(괴로는 악)으로 남아 있으며 공포의 적이나 은혜의 경륜에 있어서 그들의 영적 진보와 천국의 최선에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사망의 관념, 사망으로 인한 영별(영원한 이별), 질병과 수난은 사망의 선구자라는 감상, 사망이 가까이 온다는 의식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비상한 유익을 주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하고 육욕을 억제하게 하며 속념을 방지하게 하고 그리고 영적 성장을 촉진하는 것들이다. (박형룡 목사, ‘교의신학 내세론’ p.50-61)

   박형룡 목사의 이상의 주장은 창 2:16, 창 3:22-24, 요 6:47-58, 요 8:51-53, 요 11:25- 26, 롬 8:11, 히 2:9-15에 기록된 육의 죽음과 육이 죽지 아니하고 영생불사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것으로 그릇된 주장이다. 

 

육이 죽지 않고 승천한 에녹의 믿음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
히 11:5-6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칭찬)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는 오역이다. 바른 번역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칭찬을 받았느니라”이어야 한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요일 4:15-16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졌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의 삶이다. 이는 또한 고후 13:5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고, 행동하는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에녹과 엘리야의 믿음의 행위대로 오늘의 우리도 행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믿음이며 육이 죽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이다.

 

아담의 원죄
롬 5:12-13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다.
NIV Therefore, just as sin entered the world through one man, and death through sin, and in this way death came to all men, because all sinned-for before the law was given, sin was in the world.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NIV Nevertheless, death reigned from the time of Adam to the time of Moses, even over those who did not sin by breaking a command, as did Adam,
롬 5:17-21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더 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 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상의 구절들에 의하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한 범 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도 미치게 되었고,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담의 죄가 원죄가 되어 이 원죄 하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다고 해석되어 진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이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며 이 원죄 하에서 살아가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믿으면 원죄에서 해방되어 곧 사망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다윗이 말하는 다윗의 원죄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NIV    Surely I was sinful at birth, sinful from the time my mother conceived me.
KJV    Behold, I was shapen in iniquity; and in sin did my mother conceive me.
NAS   Behold, I was brought forth in iniquity, And in sin my mother conceived me.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간증하고 있다. 이 말은 다윗의 모친이 죄악 중에 다윗을 잉태하여 다윗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영어성경 KJV, NAS, NIV의 번역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모친의 태속에서 자범죄를 짓지 아니한 다윗이 죄 중에 잉태하여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된 것이라는 것은 롬 5:12-14과 롬 5:17-21에 기록된 대로 아담의 자손 된 다윗의 모친을 통해 아담의 원죄가 다윗에게 유전된 것이라고 해석되어 진다. 즉 아담의 원죄 하에 다윗도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 것이다.

 

다윗이 말하는 다윗의 자범죄
시 25:7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시 19:12-13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 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 25:7과 시 19:12-13에 기록된 죄는 원죄 아니라 고의로 범한 고범죄 곧 자범죄를 의미하며, 시 51:14에서 말하는 다윗의 피흘린 죄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고, 밧세바의 남편 된 우리아를 적군의 칼에 죽게 만든 죄이다. 이같은 죄는 원죄가 아니라 자범죄에 해당하는 죄이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창 8:21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NIV  Every inclination of his heart is evil from childhood.
전 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NIV This only have I found: God made mankind upright, but men have gone in search of many schemes.

 

   롬 5:12에는 “아담을 위시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 다”고 하였고, 롬 5:14에는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왔다”고 하였다. 이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된 것으로 보이나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왔 다”를 문자 그대로 보면 죄를 짓지 아니했는 데에도 사망이 온 것이다. 죄를 짓지 아니했는 데도 사망이 온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말이 안 된다. 아담이 지은 죄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었던 죄이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왔다”는 말은 아담과 같이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짓지 아니했다는 말이다.
    창 8:21에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하였고, 전 7:29에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하여 아담과 같이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짓지 아니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아담을 위시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여 범죄하므로 죽음 곧 사망이 오게 된 것이다.
    가인의 경우를 보자. 가인은 아담과 같이 선악과를 먹지 아니했으나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살인죄를 범한 것이다. 노아시대에 노아와 그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범죄하므로 하나님이 보낸 홍수로 인하여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롬 5:17-19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 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창 18:25에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라고 하였고, 겔 18:20에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담의 자손들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했는데도 아담이 지은 죄를 담당한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죄를 짓지 아니한 아담의 자손들도 죄인이 되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이는 말이 안 된다. 아담과 같이 그의 자손들도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죄인이 되었다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해석해야 된다. 왜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가는 다음 구절을 연구해야 한 다.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를 문자 그대로 보면 “한 사람 예 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해석되는데 이는 말이 안 된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결코 의인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을 믿어야 만 의인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을 문자 그대로 보면 말이 안 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한 사람 아담이 순종치 아니 함으로 그가 죄인 된 것 같이 아담의 자손들도 아담과 같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모두 죄인이 된 것이다”라고 해석해야 모순이 생기지 아니한다. 아담의 불순종이 원죄가 되어 불순종한 아담의 자손들에게도 아담의 원죄가 유전되지만, 아담의 자손들이 하나님(예수님)을 믿으면 원죄에서 해방된다.

 

박형룡 목사의 해석
사망에 대하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근본적 진리는 죄로 인한 형벌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이 진리를 가르치기에 결코 등한하지 않다. 사망은 생명의 자연한 종말이 아니다. 이 것은 인류 위에 무서운 위력을 가지어 인류가 반드시 사망할 운명에 있음은 그들은 죄인들인 때문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어 범죄한 때에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3:19). 성경의 첫 권은 이렇게 사망은 율법에 의하여 부과된 형벌적 고악이라는 것을 명시해 준다. 프로테스탄트, 로마 카톨릭, 그릭 카톨릭을 포함하는 전 기독교 세계는 아담이 타락할 때에 신적 정명에 의한 전 인류의 머리와 대표로 행동하였기 때문에 그의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망이 그 자신에게만 아니라 그 모든 후손에게 임한 것이라고 믿어 왔다. 찰스 하지는 죄와 사망의 관련을 분명히 표현하여 말하되, “아담과 그의 후손 사이에 언약적 또는 자연적인 연합의 효능으로 그의 죄는 비록 그들의 행동이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전가되어 그에게 위협되고 또 그들에게 오는 형벌의 법정적 근거다. 성경적 신학적 용어에서 죄를 전가하는 것은 죄책을 전가함이다.” 이 신적 공의를 만족시킬 법정적 본무는 사망을 죄인 된 모든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만들었다. (박형룡 목사, ‘교의신학 내세론’ p.55-58,63)

 

    박형룡 목사는 “사망은 인류 위에 무서운 위력을 가지어 인류가 반드시 사망할 운명에 있음은 그들은 죄인들인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또한 “프로테스탄트, 로마 카톨릭, 그릭 카톨릭을 포함하는 전 기독교 세계는 아담이 타락할 때에 신적 정명에 의한 전 인류의 머리와 대표로 행동하였기 때문에 그의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망이 그 자신에게만 아니라 그 모든 후손에게 임한 것이라고 믿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담이 타락할 때에 전 인류의 머리와 대표로 행동하였기 때문에 그의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망이 그 자신에게만 아니라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그 모든 후손에게 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창 18:25에 기록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의 말씀과 겔 18:20에 기록된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위배된다. 즉 “아담의 자손들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했는데도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하여 사망하게 된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한편 박형룡 목사의 자료에 의하면 찰스 하지는 “죄와 사망의 관련을 분명히 표현하여 말하되, 아담과 그의 후손 사이에 언약적 또는 자연적인 연합의 효능으로 그의 죄는 비록 그들의 행동이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전가되어 그에게 위협되고 또 그들에게 오는 형벌의 법정적 근거다. 성경적 신학적 용어에서 죄를 전가하는 것은 죄책을 전가함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도 역시 창 18:25에 기록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의 말씀과 겔 18:20에 기록된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위배된다. 또한 박형룡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이 진리와의 관련에서 자신적 범죄가 없는 영아들이 고통과 사망에 굴복함을 발견하다. 성경은 수난과 사망은 죄의 값이라는 것을 일양적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이 만일 무죄한 자들에게 형벌을 시행하시면 그는 공의롭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영아들에게 사망의 형벌이 행해진 즉 그들은 반드시 유죄할 것이요 그들은 자신적으로 범죄한 일이 없은즉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반드시 아담의 죄책을 받아 유죄하게 되었을 것이다. 부모로 더불어 몇 날이나 몇 시간만을 함께 있고 별세하는 영아들이라도 그 가정의 생활의 전 과정을 변화시키는 감화를 남길 수 있다. 신적 관점에서 영아 그들은 그 특수한 목적으로 세상에 출생되었다가 극히 짧은 시간에 그 목적을 완수하고 가는 것이다. (박형룡 목사, ‘교의신학 내세론’ p.55-58,63)

 

    박형룡 목사는 “하나님이 만일 무죄한 자들에게 형벌을 시행하시면 그는 공의롭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자신적 범죄가 없는 영아들에게 사망의 형벌이 행해진 즉 그들은 반드시 유죄할 것이요 그들은 자신적으로 범죄한 일이 없은즉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반드시 아담의 죄책을 받아 유죄하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즉 공의의 하나님께서 무죄한 영아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신다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주장이 되어 서로 모순된 주장이 된다. 박형룡 목사의 이상의 주장은 한마디로 “자범 죄가 없는 영아들이 죽는 것은 아담의 죄책을 받아 유죄하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인데 이 주장은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주장과 모순된다.

 

신 28장에 영아의 사망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신 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삼하 12:9,15,18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왕하 14:6에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영아들은 죄를 짓지 아니하여 죄가 없는데 왜 죽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8:1-6에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 면 네 몸의 소생과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시었다. 이상의 기록에 의하면 만약에 어떤 이가 낳은 영아가 죽었다면 이는 그 부모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는 명령에 불순종의 죄에서 온 것이다. 다윗은 자기의 아내가 아니라 타인의 아내를 빼앗아 범죄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죽은 것은 그 아이의 부모의 죄 때문이었다. 즉 부모의 불의한 죄로 잉태한 불의의 씨앗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따라서 이 영아는 겉으로 보면 무죄한 상태에서 죽은 것이지만 부모의 죄 가운데에서 잉태된 것이기 때문에 죄 덩어리인 상태에서 잉태되었고, 죄 덩어리 상태에서 태어난 죄 덩어리의 영아였던 것이다. 따라서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가 낳은 이 영아에게 성인에게 적용시키는 자범 죄의 논리를 가지고 그 영아는 자범죄가 없는데 부모의 죄로 인하여 죽음을 당했다는 논리를 적용시켜서 해석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만약에 무죄한 영아에게 죽음의 형벌을 시행하시었다면 하나님은 공의롭지 못한 재판관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라는 원리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모순되거나 하자가 없어야 한다.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창 18:20-25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찌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유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 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이상의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라는 기록은 불신자들이나 신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진리의 말씀이다.

 

겔 18:9-13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치 아니하고 이 악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억탈하거나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변을 위하여 꾸이거나 이식을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정녕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18:14-18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 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 사람을 학대 하지도 아니하며, 전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억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 그 아비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억탈하고 민간에 불선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으리라. 
겔 18:19-20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롬 5:14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라는 기록과 겔 18:20의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의 기록은 완전히 서로 모순되는 내용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그의 자손들에게도 죽음이 온 것이기 때문에 모순이란 일체 없다. 바로 이것이 롬 5:14의 뜻이다. 또한 겔 18:20의 기록에 근거하여 아담의 자손 된 에녹과 엘리야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죽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다. 겔 18:20의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에 근거하여 에녹과 엘리야는 아담이 범한 죄를 담당치 아니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겔 18:20의 말씀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