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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들은 두 번에 걸쳐 심판이 있는데 그 첫 번째의 심판
요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의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이 없다는 뜻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인데 이를 첫 번째의 심판이라고 일컫는다. 불신자는 이 첫 번째의 심판을 받아 죽으면 육은 무덤으로, 그의 영혼은 지옥에 보내지게 된다. 다시 말하여 불신자는 첫 번째 심판을 받아 육이 죽으면 그 영혼이 지옥에 보내지는데 이것이 곧 첫 번째 사망이다. 계시록 20:11에 나오는 백보좌 심판은 두 번째 심판이며 이것은 곧 두 번째 사망이다.

 

베이커 성경주석이 말하는 첫 번째 사망
불 못. 이것은 순전히 비유적인 것이다. 우리는 사망과 무덤 같은 것들을 태울 수 있는 불을 문자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것은 “둘째 사망”을 물질적인 비유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생을 끝나게 하는 사망보다 훨씬 무서운 사망에로의 부활이 있다. 그것은 생명에로의 부활이 아니다. 육체적인 죽음인 첫 번째 사망은 둘째 사망에 대한 희미한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둘째 사망의 영적인 죽음은 매우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둘째 사망은 더욱더 끔찍할 것임에 틀림없다. (베이커 성경주석, ‘요한 1.2.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p.594)

 

    이상의 “육체적인 죽음인 첫 번째 사망”이라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육체적인 죽음인 첫 번째 사망”이라는 것은 불신자가 죽어 육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그의 영혼은 불못인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잘못 해석한 데서 온 그릇된 주장이다. 또한 “둘째 사망의 영적인 죽음은 매우 무서운 것이다”라는 것은 계 19:20, 계 21:5-16에 기록된 불신자가 부활한 후에 백보좌 심판을 받고 몸과 영혼이 산채로 지옥의 불에 던져지는 것을 잘못 해석한 데서 온 그릇된 주장이다. “둘째 사망의 영적인 죽음은 매우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이 부활하여 백보좌 심판 후에 산채로 지옥에 던지우는 것이지 영적인 죽음이 절대로 아니다.


 조용기 목사가 말하는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과 우상숭배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육체가 죽는 것이 첫째 사망이고 영혼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영원한 불에 타는 것이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1998년 5월 24일자 ‘순복음가족신문’의 조용기 목사 설교). 계시록 20:4-5, 20:11-15: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 들은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첫째 사망은 육신이 죽 는 것이고, 둘째 사망은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영혼의 죽음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세세토록 괴로움을 당하는 사망을 말합니다. 그러나 첫째 부활에 참석한 사람들은 비록 육은 죽었지만 영은 하나님께 영접을 받습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는 사람은 아무 변명도 못하고 불못으로 낙엽처럼 떨어져 내려갑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 곧 영혼이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어 세세토록 괴로움을 당하는 사망입니다. (조용기 목사, ‘요한계시록 강해’ 1997, p.260,263)

 

    조용기 목사의 “육체가 죽는 것이 첫째 사망이고 영혼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영원한 불에 타는 것이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둘째 사망 곧 영혼이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어 세세토록 괴로움을 당하는 사망입니다”라는 주장은 계시록 19:10, 20:5-6, 20:11-15의 그릇된 해석에서 온 것으로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조용기 목사가 말하는 백보좌 심판
하나님께서 우주 어느 곳에 심판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 심판대가 바로 백보좌입니다. 이윽고 심판이 시작되면 그 앞에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서게 됩니다. 또한 심판대에는 책들이 펴져 있는데, 그 책들 속에는 모든 죽은 자들의 행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서 결코 속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책 즉 생명록이 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의롭지 못한 행실을 낱낱이 지적하신 후, 생명록을 펼쳐 놓고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불 못으로 낙엽처럼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요 곧 사망이요 곧 영원한 사망인 것입니다(계 20:14). (조용기 목사,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 p.215-6).
 
    이상의 “이 심판대가 바로 백보좌입니다. 이윽고 심판이 시작되면 그 앞에 모든 죽은 자 들이 부활하여 서게 됩니다”라는 주장은 계 20:5-6, 계 20:11-15의 그릇된 해석에서 온 것이다. 백보좌 심판은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서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불신자들만이 영혼과 육이 부활하여 받게 되는 심판이다. 이 백보좌의 심판으로 불신자들의 영혼 육이 산채로 지옥으로 보내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박윤선 목사가 해석하는 백보좌 심판
둘째 사망. 이것은 불 못의 형벌이다.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 데”(계 20:12), 이것은 심판 받기 위하여 나타난 모든 영혼을 가리킨다. 그들이 먼저 심판을 받은 뒤에 몸의 부활을 받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영혼들은 생명의 부활을 받고, 그렇지 못한 영혼들은 심판의 부활을 받는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 어주고”(계 20:13). 이것은 전에 죽었던 몸들이 부활한다는 말의 역설이다. 사람들이 어디서 죽었든지 없어지지 않고 이제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다 몸으로 부활한다는 말씀이다. (박윤선 목사, ‘성경주석 계시록’ p.331,346,337,338)

 

    이상의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계 20:12), 이것은 심판 받기 위하여 나타난 모든 영혼을 가리킨다. 그들이 먼저 심판을 받은 뒤에 몸의 부활을 받는다”는 주장은 계 20:5-6, 계 20:11-15의 기록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데서 온 것으로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백보좌의 심판은 오직 불신자들만이 받게 되는 심판이다.
계 19:19-20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 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 20:4-6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마 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 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계 20:4-6은 믿는 자는 죽은 후, 부활 후에 심판이 없다는 기록이다. 믿는 자는 살아 생전에 심판을 받아 그 행위대로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대로 믿는 자는 죽은 후에 바로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또는 에녹과 엘리야처럼 죽지 않고 천국에 가든지, 말로만 믿는 자는 지옥으로 보내지게 된다. 여기의 계 20:4-6에서 말하는 부활한 믿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이 없다는 말은 죽은 후에 부활하여 심판을 받아 육과 영혼이 산채로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백보좌 심판이 없다는 뜻이다. 불신자는 첫 번째의 심판으로 죽은 후에 그의 영혼이 지옥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곧 첫째 사망이다. 불신자는 주님의 재림 시에 무덤 속에 있던 육체와 지옥에 있던 영혼이 재결합 부활하여 두 번째의 심판 즉, 백보좌 심판을 받고 이번에는 영혼과 육이 동시에 산채로 지옥에 던져진다. 이것이 계 20:6이 기록된 둘째 사망이다.

 

계 20:11-15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 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1-15는 한 문장의 구절로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받게 되는 백보좌 심판을 의미한다. 계 20:11의 백보좌 심판은 마지막 구절인 15절에서 설명되고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심판을 받고 산채로 불 못에 던지우게 되는 심판이다. 생명책에 기록 되지 못한 자들이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된 신자들에게는 절대로 백보좌 심판이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 요 5:24-29에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무덤 속에 있는 자가...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여 믿는 자는 절대로 부활 후에 심판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었다.

 

“바다가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여기 계 20:11-15에 나오는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는 난해구절이다. 이 구절을 해석하지 못하면 삶과 죽음, 부활과 영생의 문제는 절대로 풀리지 아니하게 된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주고”는 문자 그대로는 해석은 불가능하다. 이 기록은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사망하여 바다에 있던 자의 육체가 바다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육지에서 죽어 지상의 무덤 속에 있던 사람의 기록은 여기에서 생략된 것이다.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를 해석하지 못하면 백보좌 심판에 대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도 기록하였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20:13의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한복음 19:33-34를 같이 연구해야 한다.
 
요 19:33-34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여기에 나오는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를 바르게 해석해야 계 20:11-15에 나오는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를 해석할 수 있다.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를 기록된 문자 그대로 보면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 속에 물과 피의 두 종류가 별개의 것으로 공존해 있는 것이 아니고, 몸 속에는 오직 “피”만 있기 때문에 “피와 물이 나오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무슨 뜻인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매 피가 마치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많은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의 뜻은 문자 그대로 보고 해석하면 말이 안 되며, 요 19:33-34의 해석의 원리를 도입하여 해석해야 한다. “사망”이라는 단어는 장소를 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추상명사이다. 따라서 “죽음 즉 사망이 죽은 자를 내어준다”는 것은 언어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음부도 죽은 자를 내어준다”는 것은 말이 된다. 왜냐하면 음부 곧 지옥이라는 단어는 장소를 나타내는 명사이기 때문이다. 음부 곧 지옥에 있던 사람을 내어준다는 것은 언어적으로 말이 성립된다. 결론적으로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의 뜻은 불신자가 사망하여 그의 영혼이 음부(지옥)에 있었는데 그 음부(지옥)에 있던 그의 영혼을 음부(지옥)가 내어준다는 뜻이다.
    이상의 해석에 근거하여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의 구절은 해석될 수 있다. 죽어서 바다 속이나 혹은 육지의 무덤 속에 있던 죽은 자의 육체가 나오고, 그리고 죽어서 음부(지옥)에 있던 그의 영혼이 음부(지옥)에서 나와서 영혼과 육이 재결합 부활하여 곧 영혼과 육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산채로 백보좌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라는 기록된 문자 그대로 보면 해석은 불가능하다. “사망”이란 단어는 “죽음”이라는 추상명사인데 추상적인 죽음이 장소를 나타내는 음부 곧 지옥에 던지운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죽은 자의 시체 또는 죽은 자의 영혼이 음부에 던지우다”라고 해야 언어적으로 말이 된다. 또한 음부는 지옥으로 불 못을 의미한다. 따라서 “불 못을 불 못에 던지다”라고 말한다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무슨 뜻인가? 백보좌 심판 전에는 죽은 자의 영혼만이 음부(지옥)에 들어가 있었는데, 부활 시에는 영혼과 육이 재결합하여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백보좌 심판을 받고 이번에는 영혼과 육이 동시에 산채로 음부(지옥) 곧 불 못에 던져진다는 뜻이다.

 

마 5:29-30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 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여기의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에서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신다”는 뜻은 불신자의 첫 번째의 심판으로 죽어서 육은 무덤으로 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던져져 있다가, 주님의 재림 시에 영혼과 육이 부활하여 백보좌 심판을 받은 후에는 몸이 산채로 지옥에 던져진다는 뜻이다.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에서 “멸한다”(destroy)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몸과 영혼을 멸하여 없애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산채로 지옥에 던져 영원히 고통 속에 있게 만드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몸과 영혼이 지옥에서 멸하여 없어져버린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믿지 아니하면 주님의 재림 시에 영혼 육이 부활하여 백보좌 심판을 받아 산채로 지옥 불에 던저져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