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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전쟁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대하 15:3-6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지가 이제 오래였으나,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가서 찾으매 저가 그들의 만난 바가 되셨나니, 그 때에 열국에 거한 모든 백성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치 못하며, 이 나라가 저 나라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고난으로 요란케 하셨음이니라. 

 

    “이 나라가 저 나라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고난으로 요란케 하셨음이니라”에 의하면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고난을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하 15:3-6의 기록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당시의 열국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 지구상에서의 전쟁은 계속하여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한다.

 

단 5:18-21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나이다.

 

    이상에서 느부갓네살이 왕 위에 오른 것도, 왕 위를 빼앗기는 것도, 어느 나라가 강대하게 되고 그 나라가 멸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기록이다. 단 5:18-21의 기 록은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나라와 당시의 열국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그 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계속되어지는 것이다.

 

삼상 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 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대하 20: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 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대하 21:16-17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그 무리가 올라와서 유다를 침노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 므로”에서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어 유다와의 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전쟁은 어느 한편에서 다른 편에 대하여 여러 가지의 원인 때문에 마음이 격동하게 되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을 일이키겠다는 격동의 마음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기록이다. 삼상 17:45-47에 기록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 인즉”이라는 말씀은 모든 전쟁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일어나고 종전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전쟁

잠 20:18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KJV with good advice make war.)
눅 14:28-32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의 내용을 분석하면 예수님의 전쟁에 대한 견해를 밝혀낼 수 있다.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전쟁을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국가 간의 전쟁은 실존하는 사건임을 밝히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실존하는 국가 간의 전쟁에 대한 대처방법을 제시하고 계신 것이지 전쟁의 옳고 그름을 말씀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전쟁의 실체를 인정하시고 그에 대한 대처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 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는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을 경우, 상대방이 전쟁을 시작하였을 경우에 자국의 병력으로서는 승리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라는 말씀이다.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는 말씀은 자국의 병력으로서는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사신을 보내어 협상하라는 말씀이다. 전쟁을 도발한 상대방을 이길 병력이 부족하면 협상할 것이요, 이길 수 있다면 전쟁을 하라는 말씀이지, 이길 수 있는 데에도 협상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여기에 서 예수님께서는 상대방의 나라가 전쟁을 도발하는 원인이 정당하다든지 부당하다는 것을 논의하지 않고 상대방이 전쟁을 개시하여 침공할 경우의 대처방법을 말씀하고 계신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전쟁이란 현존하는 실체라는 사실을 밝히고 계신다. 따라서 구약의 대하 15:3-6의 기록과 신약의 눅 14:28-32의 기록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