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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는가?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사 37:35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21,25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8:9-11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 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시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상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인내하시고, 우리를 연단시키신다.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이유는 자기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을 위함이라고 하시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의 기록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 10:11-17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 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상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시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순히 양만을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즉 예수님이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죽으신다고 하시었다. 목자가 양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한다면 이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목자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양도 살고 목자도 살게 된다는 뜻이다. 곁길로 간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목자가 목숨을 버리면 그 양을 얻게 되고 목숨을 버린 목자도 다시 목숨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상의 결론은 목자가 그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양을 위하고 그리고 목자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기록이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의 뜻은 자기 자신만의 목숨을 위하여 산다면 그는 그의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즉 잃은 양이었던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 예수님이 그를 살려주시겠다는 말씀이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기록을 연구하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는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의 여러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잃은 양인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지옥에 가게 될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히 12:2의 기록에 의하면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시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심은 즉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여기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갖게 될 즐거움과 그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었다는 기록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만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면 그에게 영광을 되돌려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케 하신다. 위의 성경의 기록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을 위함이며, 동시에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용서해 주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는데, 이는 또한 목자이신 예수님 자신을 위함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녀들도 영생 복락의 삶을 같이 누리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의 기록이다. 누구를 위하여 우리들은 살아야 하는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이는 곧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의 본을 보여 주시었다. 마리아의 태를 통하여 인자로 오신 하나님의 맏아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죽도록 충성하심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셨다. 오늘을 사는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었다. 누구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인가? 하나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 누구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인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위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이다. 다시 요약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고, 우리 자신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었고, 동시에 목자이신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이다. 그리하여 양들도 살고 목자이신 예수님도 사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양들인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고, 양들과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부활하게 하신 것이다. 

 

빌 2:6-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아니하시었다면,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죽으시려고 이 땅에 오시었고, 또한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 후에 있게 될 즐거움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뜻이 히 12:2에 기록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의 뜻이다.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다.”
요 10:32-36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 (God)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gods)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God)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gods)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God's Son)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시 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다.
NIV      I said, ‘You are gods; you are all sons of the Most High.’

 

    “하나님(God)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gods)이라 하셨거든”이라는 기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God)을 믿는 자들이다. 하나님(God)을 믿는 자들은 신들(gods)이다. 하나님은 큰 신(God)이며, 하나님(God)을 믿는 우리는 작은 신들(gods)이다. 하나님(God)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God)의 자녀들로서 작은 신들(gods) 이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 알기 쉽게 살펴보자. 곰(bear)의 새끼는 작은 곰으로서 역시 곰이다. 새끼 곰도 역시 곰이다. 곰의 새끼도 역시 곰이듯이 하나님 아버지는 신(God)이기 때문 에 신(God)이신 하나님(God)의 자녀들도 역시 신들(gods)이다. 예수님을 하나님(God)이 보내신 독생자 구세주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신들(gods)이다. 이는 성경에서 예수님 이 직접 가르치신 말씀이다. 그 동안 기독교계에서 성경에 기록된 이상의 사실에 대하여 가르치지 아니했는데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또한 시 82:6에 기록된 말씀이므로 진리로 받아드려야 한다.

 

고전 8:4-6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gods)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gods)과 많은 주(lords)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one God. the Father)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one Lord Jesus Christ)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 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늘에나 땅에나 신(gods)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gods)과 많은 주(lords)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one God. the Father)가 계시니”의 기록에 나오는 “많은 신(gods)과 많은 주(lords)”는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마귀(사단, 귀신)를 가르친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참 신과 참 주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one God the Father), 한 주 예수 그리스도”(one Lord Jesus Christ)만이 존재한다. 박태선은 자기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은 삼십량에 팔려고 했던 가롯 유다를 바로 마귀였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칭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박태선은 가롯 유다 처럼 바로 마귀였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는 자기를 재림한 예수라고 하는데 그도 역시 가롯 유다처럼 바로 마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