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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과 천국은 다른 곳인가?
레마 성경주석이 말하는 낙원과 천국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복되고 영광스러운 왕국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늘은 구름이 있는 하늘 곧 대기권을, 둘째 하늘은 대기권 밖, 곧 혹성들이 있는 하늘을, 셋째 하늘은 하나님과 천사와 몸을 떠난 성도들이 있는 낙원을 상징합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말 곧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천국, 곧 낙원에서만 이야기되는 비밀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낙원은 죽은 영혼이 가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음부는 악한 자의 형벌 받는 곳이지만, 낙원은 의로운 자들이 기업을 받아 찬미 부르는 행복한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주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는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은 성도들이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를 기다리는 상태이고 모든 고난의 요소가 없는 평화로운 곳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낙원과는 달리 성도가 영원히 거할 곳은 천국입니다. (레마 성경주석 ‘고린도후서’ [하]  p.103,105)

 

    이상의 “셋째 하늘은 하나님과 천사와 몸을 떠난 성도들이 있는 낙원을 상징합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말 곧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천국 곧 낙원에서만 이야기되는 비밀일 것입니다”라고 하여 낙원과 천국은 같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낙원과는 달리 성도가 영원히 거할 곳은 천국입니다”라고 하여 낙원과 천국은 다른 곳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레마 성경주석의 낙원과 천국에 대한 해석은 앞뒤의 말이 일치하지 않고 횡설수설하다. 

 

조용기 목사: “낙원과 천국은 다르고 음부와 지옥은 다른 곳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죽으면 육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낙원에서 주 님의 재림시까지 대기하고 있는 처소로서 영혼들이 쉬는 화려하고 좋은 곳이다. (조용 기 목사의 2006년 5월 24일 수요예배의 설교 중에서 발췌).
부자는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장엄한 장례식과 훌륭한 묘지에 안장을 했지만 그는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음부는 죽은 자들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모여 있는 곳입니다(조용기 목사, ‘오중복음 이야기’ p.119).
나사로는 죽어 그의 영은 곧장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낙원으로 그를 인도하여 아브라 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는 음부로 가서 불꽃가운데에서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낙원이나 음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시기 전의 상태입니다. 그때에는 낙원과 음부가 큰 구렁을 사이에 두고, 윗층은 낙원이고, 아래층은 음부였습니다. 윗층 낙원은 천국에 올라갈 사람들의 대기실이고, 아래층 음부는 심판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사람들의 대기실입니다.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 설교전집’ 제19권 1996, p.308-309)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윗층 낙원은 천국에 올라갈 사람들의 대기실이고, 아래층 음부는 심판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사람들의 대기실입니다”라고 주장하여 낙원과 천국은 다른 곳이며, 음부와 지옥은 다른 곳이라고 주장한다.

 

조용기 목사: “낙원과 천국는 같은 곳이며, 음부와 지옥은 같은 곳이다.”
성경 누가복음 16장에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영생의 천국으로 들려 올라 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참 삶의 목적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낙원에서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인격적인 존재로서 사느냐, 아니면 영원한 음부의 불속 으로 떨러지느냐로 구분되어 집니다. (조용기 목사,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1996, p.219 -220).  고후 12:4에 “그는 낙원으로 이끌어 가서 이 세상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기이한 것을 보고 들었기에 사람의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천국에 얼마나 귀하고 영원한 곳인지 바울은 천국체험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용 기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1997, p.281)
사망과 음부를 다 벗어나서 천국과 영원한 낙원의 생활을 하는 모습을 바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1998년 4월 19일 순복음가족신문 조용기 목사 설교 중에서 발췌)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그는 낙원으로 이끌어 가서 이 세상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기이한 것을 보고 들었기에 사람의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천국에 얼마나 귀하고 영원한 곳인지 바울은 천국체험 후에...,영원한 낙원, 영원한 천국”이라고 하여 낙원과 천국은 같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영원한 음부의 불속”이라고 하여 음부는 불속의 지옥이라고 하여 음부는 곧 지옥이라고 주장한다. 조용기 목사는 위에서는 “낙원과 천국은 다른 곳이며 음부와 지옥은 다른 곳”이라고 주장하며, 여기에서는 “낙원과 천국은 같은 곳이며, 음부와 지옥은 같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조용기 목사의 낙원과 천국, 음부와 지옥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횡설수설하여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가족신문이 말하는 “천국, 음부, 지옥”
나사로의 비유를 볼 때, 천국(아브라함의 품)과 지옥(음부)은 어떤 곳입니까?(1998년 8월 2일자 순복음가족신문). 음부는 죽음을 말한다. 즉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 세상을 말한다. (1998년 4월 26일자 순복음가족신문: 발행 편집인 조용기 목사, 주필 고석환 목사)

 

    이상의 “지옥(음부)은 어떤 곳입니까”라는 글에서는 “지옥과 음부”는 같은 곳이라고 주장하며, 또한 “음부는 죽음을 말한다. 즉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 세상을 말한다”고 하여 이 세상이 곧 지옥이며 음부라고 주장한다. 순복음여의도교회의 담임목사인 조용기 목사와 부목사인 고석환 목사의 주장은 전혀 일치하지 않고 모순되게 가르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그 교회 교인들과 한국교계는 전혀 모르고 있다. 한편 “음부는 죽음을 말한다. 즉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 세상을 말한다”라는 것은 성경에 근거가 일체 없는 황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성경에 기록된 낙원과 천국, 음부와 지옥
    동서양의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낙원에 있다가 예수님의 재림 시에 부활하여 천국에 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낙원과 천국의 관계를 그릇 해석한 데서 온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눅 23:32-33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 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 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죄수의 말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였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였다. 여기에 나오는 ‘당신의 나라’와 ‘낙원’은 다른 곳인가? 만약에 ‘당신의 나라’와 ‘낙원’이 다르다고 한다면 이 대화는 상호모순이 된다. 즉 죄수의 말은 “오늘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영혼이 당신의 나라 곧 천국에 가는데 나도 그곳에 데려가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그런데 ‘당신의 나라’와 ‘낙원’이 다르 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오늘 죽으면 영혼이 천국이 아니라 낙원에 가게 된다는 말이 되어 죄수의 말과 서로 모순된다. 따라서 이 두 용어는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해석해야 상호 모순이 생기지 않게 된다.  

 

마 12:39-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영혼과 육”이 모두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오직 “육”만이 땅 속 곧 무덤 속에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요 20:11-18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던 첫날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났을 때, 너무나도 반가워서 예수님을 만지려했던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시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록을 근거로 주장하기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 낙원에 가신다고 하시었다. 만약에 그 낙원이 천국이라면 그곳에 하나님 아버지가 계심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뵈었을 것이나, 낙원은 천국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낙원은 천국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얼핏 보면 앞뒤의 말이 논리적이어서 이 주장이 맞는 해석으로 보이지만 이는 전혀 그릇된 해석에서 온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왜 그릇된 해석인가? 어디에서 그릇된 해석을 하게 되었는가?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라는 말씀 가운데 “나” 라는 뜻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는 말씀 중에서 “나”는 영혼과 육이 부활하시어 살아 있는 상태의 “나”이다. 그러나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의 “나”는 영혼과 육을 포함한 “나”가 아니라 영혼만을 의미하는 “나”이다. 마 12:39-40의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의 인자 곧 “나”는 영혼과 육의 결합된 상태의 “나”가 아니라 오직 “육”만의 “나”이다. 요 20: 11-18에 기록 된 “나”는 영혼과 육의 부활하신 몸으로서의 “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의 “나”는 영혼육의 부활하신 몸으로서의 예수님께서 아직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뵙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낙원과 천국은 동의어로 해석하지 아니하면 죄수와 예수님의 대화의 내용의 해석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동의어로 해석하면 모순이 전혀 생기지 않게 된다.

 

눅 23:44-46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죽으면 그의 영혼이 곧 바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은 눅 23:39-43에 기록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한 죄수와의 대화를 연구하면 정확히 밝혀진다. 한 죄수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즉 한 죄수의 소원은 오늘 죽으면 그의 영혼을 예수님이 가시는 “당신의 나라”에 같이 데려가 달라는 것이었고,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늘 죽으면 예수님의 영혼과 죄수의 영혼은 오늘 바로 천국에 같이 간다는 말씀이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죽으면 그 의 영혼이 곧 바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은 눅 23:44-46의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에 밝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버지는 하늘나라 곧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는 기록은 예수님이 죽으시면 그의 영혼이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천국으로 인도된다는 말씀이다. 눅 23:39-49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가 죽으면 그의 영혼이 예수님과 한 죄수의 경우와 전혀 동일하게 곧 바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낙원과 천국
고후 12:1-5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행 14:19-20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바울은 언제 낙원에 갔는가? 고후 12:1-5의 구절만으로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행 14:19-20의 구절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돌에 맞아 죽었고 그의 육체는 성 밖에 내어 던져지게 되었다. 이때 바울의 영혼이 그의 육체를 떠나 낙원에 간 것을 고후 12:1-5에 기록한 것이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는 기록에서 낙원에 있는 누구의 말을 들었다는 것인가? 바로 앞절의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의 기록에서 밝히고 있다. 즉 낙원 곧 천국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말을 들은 것이다. 이상의 기록을 통하여 낙원은 곧 천국이며, 천국 곧 낙원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낙원과 천국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2:1-5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 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계 2:7의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낙원에 생명나무가 있다는 기록이다. 계 22:1-5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 앞에 생명수 강이 있고 생명나무가 있으며...그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천국 곧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다. 생명나무가 있는 곳에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이 계신다고 하였다. 계 2:7의 기록에 낙원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계 22:1-5의 기록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이 계신 천국에 생명나무가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계 2:7과 계 22:1-5의 기록에서 [천국 = 낙원]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천국은 낙원이며 낙원은 천국이다. 이 두 용어는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음이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확인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음부와 지옥
박윤선 목사의 주장: “음부와 지옥은 다른 곳이다.” “사망과 음부”(계 20:13). “사망”은 사람을 죽게 하는 불변의 법칙이 있고, “음부”는 죽은 자들을 수금하는 옥이었다. 그러나 이것들도 변동되어 부활의 법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죽었던 자들을 놓아준다.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계 20:14). 장래의 신천신지에는 사망법도 없고 음부법도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불 못에 던지운다. “불 못.” 이것은 풀무 불과 같고(마 13:42,50), 또한 지옥과 같다. “음부”(눅 16:26)나 “옥” (벧전 3:19; 계 20:7)이나 “무저갱”(계 20:3)은 대심판 전의 멸망의 처소를 말함이고, 지옥(약 4:4; 마 5:22)과 불 못(계 19:20, 20:10,14,15, 21:8)은 대심판 후의 멸망의 처소를 말함이다. 지옥과 불 못을 동일시하는 이유는 지옥은 음부와 달리(음부는 별세한 영혼들의 가는 곳임-눅 16:19 이하) 영혼과 몸이 함께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 10:28). 계시록에 있는 불 못도 역시 그런 곳이다(20:14). (박윤선 목사, ‘성경주석 계시록’ p.339)

 

    이상에서 박윤선 목사는 지옥과 음부가 다른 곳이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성경에 나오는 지옥과 음부를 잘못 연구한 데서 온 그릇된 해석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
마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1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계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이상의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지옥은 불이 있는 곳,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 영원한 불이 있는 곳, 몸과 영혼이 함께 들어가는 곳이다. 불신자가 죽으면 그 영혼이 즉시 지옥으로 보내지며, 예수님의 재림하신 후에는 무덤에 있던 육체와 지옥에 있던 영혼이 재 결합 즉 부활하여 백보좌의 심판을 받고 이번에는 영혼육이 산채로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음부
눅 16:19-24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여기에서 죽은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의 기록에 음부는 바로 불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위의 마 5: 21-22의 기록에서 지옥은 불이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즉 예수님은 지옥과 음부라는 말은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박윤선 목사가 말하는 “지옥은 음부와 다르다”는 것은 그릇된 주장이다. “지옥과 달리 음부는 죽은 영혼이 들어가는 곳이며 지옥은 영혼과 몸이 함께 들어가는 곳”이라고 그릇된 주장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계 20:10- 15에 나오는 “사망과 음부도 죽은 자를 내어주고...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박형룡 목사의 주장
구약에 나오는 ‘스올,’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데스’가 무덤을 의미하기도 하다. (박형룡 목사, ‘교의신학 내세론’ p.108-140)

 

행 2:29-32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hades, ᾅδης)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 니 하시리라 하더니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29-32에 한글로 “음부”로 번역된 것은 헬라어로는 ‘hades’(ᾅδης)이다. 이를 NIV 에서는 ‘grave’(무덤)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바른 번역이다. 한글성경에서 “음부”로 번역하여 계 1:18, 마 16:18에 나오는 “음부”와 혼동을 가져오도록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바른 번역은 아니다.

 

계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KJV I am he that liveth, and was dead; and, behold, I am alive for evermore, Amen; and have the keys of hell and of death.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KJV And I say also unto thee, That thou art Peter,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계 1:18에 나오는 한글성경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NIV에서는 ‘the keys of death and hades’(ᾅδης)로, KJV에서는 ‘the keys of hell(ᾅδης) and of death’로 번역하였다. 또한 마 16:18에 나오는 한글성경의 음부를 NIV에서는 ‘hades’(ᾅδης)로, KJV에서는 ‘hell’(ᾅδης)로 번역하였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헬라어 ‘hades’(ᾅδης)를 NIV에서는 ‘hades’로, KJV에서는 ‘hell’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영어에서는 ‘hades’와 ‘hell’은 지옥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한글성경에서 ‘hades’는 음부로 번역하고, ‘hell’은 지옥으로 번역하여 음부와 지옥이 다른 곳인 것처럼 번역하였는데 이는 그릇된 번역이다. 음부 (hades)와 지옥 (hell)은 전혀 같은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연구하지 못한 박윤선 목사를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음부와 지옥은 다른 곳이라고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다. 박형룡 목사는 “구약에 나오는 ‘스올,’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데스’가 무덤을 의미하기도 하다”고 주장하는데, “구약에 ‘스올’은 무덤을 의미하가도 하다”는 주장은 맞는 주장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약성경에서 음부(hades)는 지옥 (hell)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행 2:29-32의 경우와 같이 때에 따라서 무덤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