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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적인 형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이상의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우리의 형상과 모양과 동일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 6:46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 12:44-45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 14:7-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이상의 기록에서 빌립이 원하는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의 뜻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내적인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면 말이 안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외모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 달라고 한 것이다.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이다. 즉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외적 형상은 바로 예수님의 외적 형상이라는 말씀이다. 삼위일체의 교리를 이해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외적인 형상은 우리와 전혀 동일하신 것이다.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백퍼센트 우리들의 외모와 똑같으신 분이시다. 
    따라서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이며, 예수님과 하나님은 우리와 전혀 동일한 외모, 외형을 지니신 분이다. 아담이 어떻게 생겼을까? 오늘의 우리와 전혀 동일하게 생겼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 창 1:26-27, 창 2:1-3, 요 12:44-45, 요 14:7-10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자손들과 전혀 동일하게 생기셨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이 이상의 성경말씀에 자세하면서도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음이 발견된다. 현대 신학계와 교계에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을 가지시지 아니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분이 절대로 아니며, 하나님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의 교리를 모르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요 4:24에 성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영(성령)이라고 하였고, 고전 15:45에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영(성령)이라고 하였다. 성부 하나님은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측면에서 육을 가지신 분이 아니시지만 성자 하나님 측면에서는 우리와 전혀 동일한 육체와 외모를 가지신 분이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 측면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육체를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아버지의 외적 형상과 자녀의 외적 형상이 같은가, 다른 것인가? 이는 상식에 어긋나는 질문이다. 아버지와 자녀의 외적 형상은 동일하다. 출 33:20-23에 기록된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는 기록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인간 세상에 예수님으로 오시어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의 외적 형상과 모양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요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여기에서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는 말씀은 삼위일체의 교리에서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보았다는 뜻이며, 요 14:7-10의 기록은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같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본 자는 성부 하나님을 본 자란 뜻이다.

 

요일 4:12-15의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란 무슨 뜻인가?
요일 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요일 4:12-15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딤전 6:14-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벧전 1:1-2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 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예수님과 3여년 동안 기거를 같이 함으로 예수님을 보았던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보지 못했던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저 있는 신자들에게 쓰는 편지 가운데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분명히 보았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한 것이다. 딤전 6:14-16에 기록된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라는 말은 디모데에게 쓴 바울의 편지에 나온 기록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나, 디모데와 그에게 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딤전 6:14-16에 기록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와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이실 분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란 말은 33년 동안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았지만 부활승천하신 이후의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이며 천국에 계시기 때문에 볼 수도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