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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가?
석원태 목사의 교회
선악을 알게 하는 말 그대로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않음(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이 선이고 선악과를 따먹음(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이 바로 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뜻)에 벗어난 것을 죄라고 하지 않습니까? 원래 사람은 에덴에서 하나님과 영생할 존재였습니다. 생명나무를 두어 인생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어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가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립니다. (석원태 목사 서울 경향교회 2008년 11월 19일 인터넷 신앙상담게시판의 글 중에서 발췌)

 

    이상에서 “생명나무를 두어 인생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어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가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라는 주장이 맞다고 할 경우에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었다. 다시 말하여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된다는 것은 모순이 되어 버린다. 왜 이러한 커다란 모순이 생기게 되었느냐 하면 선악과의 뜻을 전혀 잘못 알고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김세화의 주장
창세기에는 ‘선악과’사건이 나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것...생명나무까지 허락하셨지만 유독 선악과에 대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내리신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세화, LA 밀알장애인선교단 간사, 2003년 12월 11일 LA 중앙일보)

 

    이상에서 “하나님은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 하였는데, 선악을 아는 것은 좋은 것인데 좋은 것으로 인도하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시었다면 이는 모순이다. 왜 모순이 생기게 된 것일까?

 

박윤선 목사의 주장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으로 사람을 시험하기 위한 시련수(시련의 나무)였다. 그 때에 사람은 아직 범죄하지 않았으나 시련을 통과하기 전이었다. 그 에게는 시련을 통과하면서 선을 파수하는 생활이 필요하였다. (박윤선 목사, ‘성경주석 창세기 출애굽기’ p.95)

 

    이상의 “그에게는 시련을 통과하면서 선을 파수하는 생활이 필요하였다”는 해석은 선악과를 이해하는데 전혀 불충분한 설명으로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는 설명이다.

 

매튜 헨리의 주장
거기에는 ‘선과 악을 아는 나무’도 있었다. 이 나무를 통해서 도덕적인 선악을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적극적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어졌다. 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나무의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다. 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다른 모든 도덕적인 선과 악의 분별은 원래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법의 결과로 생기는 선악의 분별은 이 나무 위에 새겨져 있다. ‘너희는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유혹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탄은 이 나무에게 주어진 이름까지도 악용하였다. 이 나무는 선과 악에 관한 지식, 다시 말하면, 책임과 불충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 주기 위해 세워진 나무였다. (매튜 헨리, ‘성서주석 창세기’ [상] p.75,101)

 

    이상에서 보이는 창세기 2장과 3장에 기록된 선악과에 대한 해석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1-5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22-23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상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고 계시면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었다. 선악을 아는 일은 좋은 일인데 하나님은 선악을 아시면서 왜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을 알지 못하게 하시었을까? 이상의 문자적인 기록에 의하 면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는 선악과 아담이 알게 될 선악은 같은 의미로 되어 있는데, 과연 같은 의미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창세기 3:5-13을 연구하면 자세히 밝혀진다.
 
창 3:5-13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 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선악을 아는 일은 좋은 일인데 하나님은 선악을 아시면서 왜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을 알지 못하게 하시었을까? 창세기 3:5-13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난 후의 결과를 살펴보면 질문에 대한 해답이 간결하게 밝혀진다.


    첫째,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 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선악과를 먹고 난 후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았다. 이는 선악과를 먹기 전과 먹은 후 사물을 보는 그들의 눈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창 1:31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상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였다는 뜻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의 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좋은 상태 그대로의 눈이었으나, 선악과를 먹고 난 후의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좋은 상태가 아니라 나쁘게 보였기에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과 먹은 후의 눈이 같지 않고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둘째로,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내가 동산에서 하나님 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지 아니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여 숨게 되었다. 하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선악과를 먹기 전과 먹은 후에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셋째로,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는 기록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책임이 아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와에게 있다고 하여 책임을 전가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넷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는 기록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손종한 원인이 하와 자신에게 있지 않고 뱀에게 있다는 책임을 전가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선과 악을 아는 것은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이유 는 이상의 기록이 밝히는 데로 선과 악의 판단의 기준이 하나님의 선악의 판단의 기준과 다르기 때문이다. 즉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이유는 이 선악의 판단의 기준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 된 모든 인간은 선악의 판단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처럼 사단 중심, 인간 중심으로 선악을 판단한다. 즉 선악의 판단 기준은 사단과 인간의 생각이다. 하나님 중심의 선악의 판단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자세히 모르면 하나님 중심의 선악의 판단 기준을 절대로 모르게 되어 있다.
    창세기 3:22-23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의 문자적인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선악의 기준과 아담과 하와의 선악의 기준이 동일한 것으로 생각 되어지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위에서 살펴 본대로 하나님의 선악의 기준과 선악과를 먹은 후의 아담과 하와의 선악의 기준은 같지 않고 전혀 상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선악의 판단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금지하신 것이다.

 

베이커 성경주석: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노력을 하다가 죽게 되었다.”
유혹자는 아담과 이브가 지혜로 와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실은 어리석어져 벌거벗게 되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생소한 노력을 하다가 그들은 죽어야 할 운명이 되었다. (베이커 성경주석, ‘창세기’ [상] p.132,145)
 
매튜 헨리: “사단은 너희는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너희는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다. 너희는 엘로힘 즉 전능하신 하나님과 같아지며 전지자가 될 뿐 아니라 전능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 자신과 같아질 것이며, 그와 같아지고, 그의 상대가 될 것이다. 너희는 또 다스리는 자가 되고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되며 누구에게 예속된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터무니 없는 제안이다. (매튜 헨리, ‘성서주석 창세기’ [상] p.101)

 

조용기 목사: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다.”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다. (조용기 목사, 2006년 7월 23일 여의도순복음방송국 FGTV Internet 설교 중에서 발췌)
창 2:17의 말을 바꿔 얘기하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모든 과실을 먹을 수 있으되 선악에 대한 지식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 지식은 나의 것이니라. 그것은 내 권위의 상징이니라.” 금단의 나무는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조용기 목사, ‘4차원의 영적 세계’ 1997, p.231)

 

김세윤 목사: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였다.”
태초에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창 3:5)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낙원의 평화를 잃고 카오스와 고난의 세상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김세윤 목사, ‘예수와 바 울’ p.322)

 

    이상에서 베이커, 매튜 헨리, 조용기 목사, 김세윤 목사는 창 3:5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에 근거하여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창 3:5의 기록이 전혀 잘못된 해석에서 온 것으로 이러한 해석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NIV  For God knows that when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창 3:22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NIV  The LORD God said, The man has now become like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창 3:5의 구절을 문자적으로 얼핏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구절만을 보아서는 안 되고 창세기 3:22를 같이 놓고 해석해야 한다. 창세기 3:5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 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의 기록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다”라고 해석한다면 그들이 선악과를 먹고 나서 하나님과 같이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난 후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결코 되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다”라는 것은 전혀 그릇된 해석이다. 창세기 3:5은 창세기 3:22에서 해석되고 있다.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창세기 3:5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는 뜻은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하여 선악과를 먹은 것이 결코 아니라 그들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이 선악을 아는 것과 같이 그들도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한글성경의 창세기 3:5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의 번역은 해석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이 선악을 아는 것과 같이 너희도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상의 연구를 통하여 베이커 성경주석, 매튜 헨리, 조용기 목사, 김세윤 목사의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다”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황당한 것임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