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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는데 불편이 있겠지만 교정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이점을 양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사론과 마귀론


정통 신학교, 정통 교회에서도 마귀론은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성경에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이 기록되어 있는 사단(마귀, 귀신)를 정통 신학교에서 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마귀에게 속임을 당한 증거이다.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신학교를 졸업한 사역자들이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일설교 또는 성경공부시간에 성경에 무수히 나오는 사단(마귀, 귀신)을 한마디도 아니하는 교회가 허다하다. 한편 사단에 대하여 말하는 목회자들의 가르침도 성경에서 가르치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전쟁(엡 6:10-17)이다. 그런데 만약에 전쟁이 임하는 군인들이 적군의 정체도 모르고 전쟁에 임한다고 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마귀와의 전쟁에 임하는 십자가 군인들이 마귀의 정체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는 끔직한 처사이다. 성경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 마귀의 정체를  모르면 성공적인 교회성장은 물론이고 성공적인 목회생활, 성공적인 신앙생활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박윤선 목사가 말하는 마귀의 정체
요 6:10에 나오는 ‘이 세상 임금’은 마귀를 가리키는데 그는 보이지 않는 악령이며, 옛 뱀이며, 사탄이다(계 20:2).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므로 이 세상 임금이 쫓겨 났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털끝만한 대적도 없다. 만일 있다면 이미 패배를 당한 대적뿐이다. (박윤선 목사, 옥한흠 목사 편집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p.72)

 

김명혁 목사가 말하는 마귀의 정체
사탄이 비록 발악을 할지라도 발 묶인 사자와 같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명혁 목사, 옥한흠 목사 편집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p.93)

 

    이상에서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털끝만한 대적도 없다. 사탄이 비록 발악을 할지라도 발 묶인 사자와 같다”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벧전 5:8-9의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라는 말씀과 약 4:7의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라는 말씀과 엡 6:11-13의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라는 말씀을 전혀 연구하지 아니한 데서 온 그릇된 주장이다. 

 

김명혁 목사가 말하는 사울 왕과 죽은 사무엘의 초혼사건은 그릇된 주장이다.
죽은 자의 혼을 불러서 죽은 자와 말하고 죽은 자의 메시지를 받는 초혼술이 있는데 신명기 18:11은 이러한 초혼술을 금하라고 했다. 사무엘상 28:7 이하에 보면 사울 왕이 아주 곤경에 처했을 때 접신하는 여자를 찾아가서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사무엘이 나타났다. 사무엘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사무엘이 나와서 사울과 대화했을까? 죽은 자를 불러서 대화하는 초혼술을 성경은 그와 같은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사건인가?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 사건이다. 사울로 하여금 접신술을 믿게 만들어 정말 죽은 영혼과 말하는 것이 실제라고 믿게 만들어서 결국 그 영혼을 하나님에게서 아주 떨어뜨리려고 하는 수작이다. 그래서 그와 같은 사건을 본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접신술과 초혼술을 믿도록 만들게 한 사건이다. (김명혁 목사, 옥한흠 목사 편집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p.101)

 

    “정말 사무엘이 나와서 사울과 대화했을까?” 삼상 28:7-20의 기록을 자세히 보면 죽은 선지자 사무엘이 실제로 나타나 사울 왕과 대화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삼상 28:7-20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는지라.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하는지라.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 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

 

    김명혁 목사는 그의 글에서 “사무엘상 28:7 이하에 보면 사울 왕이 아주 곤경에 처했을 때 접신하는 여자를 찾아가서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사무엘이 나타났다. 사무엘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사무엘이 나와서 사울과 대화했을까? 죽은 자를 불러서 대화하는 초혼술을 성경은 그와 같은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사건인가?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 사건이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삼상 28:7- 20의 그릇된 연구에서 온 것으로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왜 그릇된 주장인가?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의 기록을 보자. 이상의 기록에서 신접한 여인이 불러 올라온 사무엘이 진짜 사무엘이 아니었다면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라는 말을 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그녀는 올라온 그가 진짜 사무엘이었음으로 그녀도 놀란 것이다. 또한 그가 가짜 사무엘이 아니고 진짜 사무엘이었기 때문에 사울이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사무엘에게 절한 것이다.
    김명혁 목사의 주장과 같이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 사건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라는 기록도 사실이지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의 말은 결코 아니었다. 또한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는 사무엘의 말은 사실이지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의 말은 결코 아니었다. 이상의 사무엘의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의 말대로 사울 왕과 그의 세 아들들은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이상의 사무엘과 사울 왕의 대화는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의 말은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김명혁 목사의 “정말 사무엘이 나와서 사울과 대화 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사건인가?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 사건이다”라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연구에서 온 것으로 그릇된 주장이다.
    삼상 28:7-20에 기록된 죽은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나타나서 대화한 사건은 이 구절만의 연구로서는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 34:1-8에 기록된 모세, 왕하 1:5-11에 기록된 엘리야, 그리고 마 17:1-8에 기록된 죽은 모세와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베드로, 야곱, 요한에게 나타난 기록을 같이 놓고 연구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삼상 28:7-20에 기록된 죽은 사무엘과 사울 왕의 대화한 사건을 결코 해석할 수 없다.

 

모세는 죽어 장사지냈는데 몇 천년 후에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였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보였다.
신 34:1-8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니라.

 

천년 전에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보였다.
왕하 1:5-11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선지자의 생도 오십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가에 섰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죽은 모세와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보였다.
마 17:1-8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신 34:1-8에 모세는 느보산에서 죽어 장사를 지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은 모세를 애통해 하여 삼십일을 애곡하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왕하 1:5-11에 기록된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승천하였다. 이와 같이 몇 천년 전에 죽은 모세와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가 마 17:1-8에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베드로, 야곱, 요한에게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죽은 모세와 승천한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에게 나타나시어 예수님과 직접 이야기를 한 사건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한 특별사역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해석을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결코 없다. 신접한 여인을 통해 죽은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나타나 이야기를 한 사건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초혼자를 믿고 그녀를 의지한 사울 왕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섭리에 의한 특별사역이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즉 하나님은  마귀들려 있는 초혼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사울 왕을 죽이시려는 계획 아래 죽은 사무엘을 사울 왕에게 보내시어 그에게 나타나게 하시어 사울 왕의 그릇됨을 지적하게 하시고 그와 그의 아들들이 전쟁에서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대로 사울 왕과 그의 세 아들들은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다. 결론적으로 죽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울 왕에게 진짜로 직접 나타나 사울 왕과 직접 대화한 사건이다.
    김명혁 목사의 “죽은 자를 불러서 대화하는 초혼술을 성경은 그와 같은 일을 용납하지 않는다. 초혼술은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 사건이다”라는 주장은 맞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사무엘이 나와서 사울과 대화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사건인가?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 사건이다”라는 주장은 삼상 28:7-20, 신 34:1-8, 왕하 1:5-11, 마 17:1-8을 상호 비교하여 연구하지 않는 데서 온 것으로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바른 주장은 “정말 사무엘이 나와서 사울과 대화했을까? 정말 사무엘이 사울 왕과 대화하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사건인가? 죽은 선지자 사무엘과 사울 왕의 대화한 사건은 사탄과 악령의 속임수 사건이 절대로 아니라 초혼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불순종한 사울 왕을 죽이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이었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조용기 목사의 횡설수설한 주장은 그가 마귀에게 잡혀 있음을 입증한다.
조용기 목사는 “마귀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그가 집필한 여러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 원수인 마귀와 귀신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도 베드로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어찌하든지 약점만 있으면 뛰어 들어가서 삼켜버리고 뼈까지 부스러뜨리려 하는 것이 마귀의 일인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부하인 귀신들을 보내어서 우리에게 침투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마귀가 부리는 군대이며 병사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고난당하심으로 마귀와 귀신들은 온전히 무장 해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마귀를 무장해제 시켜 천하의 구경거리로 만들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마귀는 이제 예수님의 보혈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은 못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마귀를 모르기 때문에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직 죄 아래에 있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아서 포로로 잡아서 마음대로 행하지 마는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 마귀를 이겼고 예수님이 마귀와 귀신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었으므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단호하게 마귀와 귀신들을 물리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히 2:14에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고 주님은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2007년 2월 4일 인터넷 설교 중에서 발췌)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무장해제 된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불시에 마귀의 공격을 받아서 산산조각이 나고 도덕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원하오니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1998년 4월 12일 순복음가족신문 조용기 목사 설교 중에서 발췌)

 

    조용기 목사는 “마귀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하였고, 또한 “사도 베드로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어찌하든지 약점만 있으면 뛰어 들어가서 삼켜버리고 뼈까지 부스러뜨리려 하는 것이 마귀 의 일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가 주장한대로 마귀가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한다면, “사자와 같이 뼈까지 부스러뜨리려 하는 것이 마귀이다”라는 주장은 완전히 서로 모순되는 주장이다. 다시 말하여 “사자와 같이 뼈까지 부스러뜨리려 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마귀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절대로 아니다”라는 말이다. 또한 마귀는 이빨 빠지고 무장해제 된 것인데 “불시에 마귀의 공격을 받아서 산산조각이 나고 도덕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때가 많다”라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조용기 목사의 마귀에 관한 해석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은 모순된 것으로 횡설수설하다는 사실이 그의 글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히 2:14에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destroy)고 주님은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한편으로 “예수님을 믿고 죄 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 마귀를 이겼고 예수님이 마귀와 귀신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었으므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단호하게 마귀와 귀신들을 물리쳐야만 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귀를 멸하였다면 즉, 마귀를 멸하여 없애버렸다면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단호하게 마귀를 물리쳐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멸하여 없애버렸다고 하면서 마귀를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앞뒤의 말이 일치하지 않고 횡설수설한 모순이다. 조용기 목사가 쓴 모든 글들과 모든 설교들은 일체의 예외 없이 이상의 실례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앞뒤의 말이 서로 달라 횡설수설하게 되어 있다. 조용기 목사가 이렇게 모순된 말을 하게 된 이유는 히 2:14를 그릇 해석했기 때문이다. 히 2:14 의 바른 해석은 “주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의 세력을 멸하셨다”(destroy)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마귀를 예수님의 재림 시까지 멸(destroy)하지 않고 존재하게 놓아 두셨다(계 12:10). 마귀는 하나님의 진리가 바르게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며 임무이다. 성경 밖의 일반 세상에서는 마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는 마귀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는 실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실존하는 마귀가 불신자는 물론이고 신학자들, 목사들, 선교사들, 신자들 속에 들어가 그들의 두뇌를 그의 뜻대로 지배하고 조종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마귀는 신학교를 3년간 다닌 찰스 다윈 속에 들어가 그의 생각을 지배하고 조종하여 성경에 기록된 창조론을 진화론으로 바꾸어 버렸다. 마귀는 찰스 다윈으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된 창조론을 그릇 해석하게 하여 바른 복음의 전도를 방해한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여 진화론을 발상하게 한 결과로 진화론을 만들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데 앞장선 찰스 다윈은 그 속에 들어간 마귀의 지배를 받는 마귀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처음에는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성경대로 사역하는 바른 목자였으나 성경을 가지고 살지 않고 교만하고 물질의 탐욕과 탐심에 빠져서 서서히 마귀에게 먹혀서 현재는 그 속에 마귀가 들어가 있어서 그의 두뇌를 지배하고 조정하여 모든 성경의 말씀을 횡설수설하게 가르치어 바른 복음의 전도를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아래에서와 같이 흙과 나무로 만든 우상에게 절하는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종교인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을 함으로 그는 마귀에게 잡혀 있음이 또 다시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영들 분별함의 은사’를 받지 않는 거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의 신학교 교수들이나 목사들이나 신자들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를 설교를 유창하게 잘하는 하나님의 올바른 사역자로 인정하여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발언을 한 후에도 계속하여 각종 집회에 초청하여 설교를 시키고 있다. 이는 현대 한국교회가 처해 있는 불행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