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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학계와 교계의 성령론에 대한 문제점

    오늘날 한국의 장로교의 개혁신학을 주도한다고 하는 총신대의 총장 김의환 목사, 전 학장 및 현 교수 차영배 목사, 장신대 전 학장 이종성 목사,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 고신대, 그리고 오순절 신학을 주도한다고 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담임목사와 베데스다신대의 총장 조용기 목사 등이 주장하는 성령론에 대한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제기한다. 


김의환 목사의 주장: ‘많은 신자들이 신령한 축복을 말할 때에 믿음으로 오는 중생 다음에 두번째로 성령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믿음으로 오는 칭의로 구원을 얻으나 두번째 축복인 성령세례를 받아야 더 큰 은혜를 입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믿음으로 칭의를 얻어 구원 얻은 다음에 열심히 기도하고 헌신함으로 성령 받은 것처럼 비 복음적 신앙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분명히 다른 복음이다’(김의환 목사, ‘성경적 축복관’ p.62-63).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은 다르다. 성령의 세례는 구원과 관계가 있고 성령충만은 증거와 전도의 관계가 있다’(1993년 1월 20일 김의환 목사의 개혁주의 성령론 강의안).


    김의환 목사는 이상에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다르며 중생 시에 성령을 받으며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며, 중생 후에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다른 복음 곧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안산성도교회 소재열 목사의 주장: ‘오순절파가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이 우리의 개혁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그 다르다는 개념이 단순히 강조점의 차이인가? 아니면 진리 인식의 차이인가? 진리 인식의 차이라면 빨리 결단을 내려 소모적인 논쟁을 피해야 한다’(1994년 10월 29일 기독신보)라고 주장하였다. 


조용기 목사의 주장: ‘칼빈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는데 또 무슨 성령이 임하는 것이냐고 말하며 침례교 계통에서는 성령충만이지 성령세례가 무엇이냐고 말한다. 잘못된 신학이나 목회자의 인도는 양무리까지 파멸케 하는 것이다’(순복음교육연구소 제4집, p.81,79). ‘오늘날 우리가 믿을 때 그냥 성령을 받는다면 무엇 때문에 바울이 구태여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쓸데 없는 말을 물었겠느냐는 것이다. 바울의 말을 자세히 살펴볼 때 믿음은 자동적인 성령충만이 아니며 또한 믿은 자가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믿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다는 어리석고 나약한 자기 무능력에 빠진 변명을 단호히 버리고 성령이 분명히 가르치고 또 명령하고 있는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조용기 목사, ‘성령론’ p.140-141). 


    조용기 목사는 여기에서 성령 받음과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서로 같은 뜻이라고 하며, 믿을 때 즉 중생 시에 성령을 받지 않고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므로 중생 후에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김의환 목사가 보는 조용기 목사는 성령론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이다. 그런데 김의환 목사는 이러한 조용기 목사의 1994년 9월 LA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축도해주었다.


한경직 목사의 주장: ‘성령을 소멸치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한경직 목사, ‘사도행전 강해’ p.51-52). 


    여기에서 한경직 목사는 믿는 신자들은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령을 받는 것과 성령충만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상에서 말하는 한경직 목사의 주장은 김의환 목사의 주장과 다르다. 위의 김의환 목사의 주장을 통해서 본 한경직 목사의 성령론은 다른 복음이며 이단이다.

 

한경직 목사와 같이 예장(통합)에 소속된 김진홍 목사의 주장: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성령을 받았다. 그렇지 않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에 없는 [지가 복음]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진홍 목사 ‘성령세례’ 설교녹음 태입)


차영배 목사의 주장: 예장(합동)에 속한 고영민 목사는 중생 후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라는 차영배 목사의 주장은 비 성경적이며, 오순절 성령강림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은 오순절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글을 썼다(1994년 10월 1일 기독신보). 이러한 비난에 대하여 차영배 목사는 ‘오히려 고영민 목사가 오순절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과 연속성을 주장하며 중생 후에 성령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한다(1994년 11월 5일 기독신보). 이러한 차영배 목사가 말하는 성령론은 김의환 목사의 주장을 통해서 보면 다른 복음이며 이단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차영배 목사는 ‘중생 후에 성령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연속성의 여부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의환 목사는 ‘중생 시에 성령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을 다르게 가르치면 다른 복음이며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별개의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같은 교단 내에서, 같은 신학교 내에서 총장과 교수와 목사들이 서로 다른 성령론을 주장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또한 방향이 없는 총신대의 이러한 성령론이 미주 총신대에서도 책과 강의를 통하여 그대로 전파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 교계와 신학계를 이끌어간다고 하며 보수개혁신학의 총본산이라고 하는 총신대의 총장 김의환 목사, 교수 차영배 목사, 한국과 세계의 성령운동을 주도한다고 하는 신학교 총장이며 세계최대교회의 목회자인 조용기 목사, 한국 교계의 원로 한경직 목사의 성령론이 전혀 일치하지 않고, 겉으로는 화합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글과 강의를 통하여 ‘다른 복음이다. 이단이다. 성경에 없다. 칼빈주의자들의 성령론은 어리석고 나약하다. 그릇된 신학이다’라고 서로 비난하는데 신학생들은 누구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며, 신자들은 누가 이단이며 누가 정통인가를 어떻게 구분하고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하는가?
    한편 고신대의 교수 안영복 목사는 오직 성경을 근거로 성령론을 재정립하자고 주창하여 기존의 성경해석에 이의를 제기하여 고신대가 고수하는 개혁주의의 기존의 전통적 교리에 반대되는 중생 후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라는 주장을 피력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신 교계를 오도하는 이단자 오순절주의자로 몰려 고신대에서 쫓겨났다(안영복 목사, ‘성령론’ p.127,131).
    또한 장신대의 전 학장 이종성 목사는 444쪽에 달하는 그의 저서 ‘성령론’에서 성령론의 핵심주제로서 격론이 계속되고 있는 ‘중생 시 혹은 중생 후에 성령을 받는 것인지, 성령세례를 받는 것인지’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일체 말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는 확고한 성경적 주장을 가지고 있어야 할 신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이 없는 증거이다.
    동서양의 신학계에서 성령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에 격론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 개신교의 역사 100년이 넘는 현 시점에서 성령론 하나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여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한국 개혁주의 신학계에 대하여 개탄하며, 나아가서 한국교계에 대하여 통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따라서 교계와 신학계를 주도한다고 하는 신학자들과 목사들로 인하여 오도된 성령론의 바른 정립을 위하여 분명한 대답이 요구된다. 위의 목사들의 주장이 모두 맞는 것인지, 틀렸는지, 어느 한 주장이 맞는 것인지, 무오류의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여 오류투성이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과연 무엇인지, 누가 과연 이단인지, 아닌지, 위에 열거한 성령론의 주장의 차이를 가지고 이단으로 몰수 있는 것인지 등등의 문제는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차제에 필자는 본 글을 통하여 한국교계의 일치된 성령론 교리의 정립을 위한 초교파적인 성령론연구소의 창설을 제의한다. 필자는 개혁주의를 비판하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오순절주의자로 보이겠지만 오순절주의자도 아니며 개혁주의자도 아니다. 필자는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주장과 해석을 무조건 믿지 않고, ‘오직 성경만을 믿는 성경주의자’이며, 장로교 개혁주의와 오순절주의의 성령론이 모두 한결같이 많은 부분에서 성경의 그릇된 번역과 그릇된 해석에 근거하여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편을 지지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 어느 편이든, 누구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 성경 안에서 잘못을 비판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성령론을 밝힐 것이다. 필자의 글에 대하여 이견이나 이의가 있을 경우 지상토론 또는 공개토론을 환영하는 바이다. (1995년 6월 6일자 미주 크리스쳔포스트에 기고한 필자의 글)

 

김지찬 목사가 말하는 한국교회의 성령운동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교회의 근본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경시나 성령운동에 대한 거부에 있지 않다. 실제로 많은 장로교회가 순복음교회의 은사운동을 받아들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스개 소리로 한국장로교회는 순복음장로교회라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다른 개신교 교파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한국장로교회의 성령론은 초대교회의 신학으로 돌아가기를 시도했던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이 물러준 빛나는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장로교회의 성령론은  쯔잉 글리, 마틴 루터와 볼링거 특히 요한 칼빈의 신학에서 새롭게 인식된 성령론의 체계 위에서 있다. (김지찬 목사, 총신대 구약교수, 한국복음주의 신학회 논문집 ‘성경과 신학’ 제20권 1996, p.91,132)

 

    이상의 주장에서 “실제로 많은 장로교회가 순복음교회의 은사운동을 받아들인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는 것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순복음교회의 성령의 은사론을 위시하여 성령론은 전혀 그릇된 것인데 그릇된 줄을 모르고 이를 받아드렸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장로교회의 성령론은 초대교회의 신학으로 돌아가기를 시도했던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이 물러준 빛나는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는 주장도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16세기 이후 현재까지 유럽과 미국의 신학계의 성령론은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고 있으며, 또한 한국장로교회의 성령론 역시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순복음교회와 장로교의 성령론이 어디에서부터 그릇되었는가에 대하여 본 글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조용기 목사가 말하는 한국교회의 문제점
오늘날의 신앙은 형식적인 종교심의 만족에 불과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배는 메마르고 냉랭한 의식에 치우쳐 있으며, 교회는 사교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1천만이 넘는 그리스도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온갖 사회의 부조리에 기독교인이 앞장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가 성령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최근 복음사역이 정체되거나 퇴보하고 있다는 한국교회의 전 반적인 위기감은 전적으로 성령님과의 동업사역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 ‘오중복음 이야기’p. 68-69)

 

    이상의 글에서 “최근 복음사역이 정체되거나 퇴보하고 있다는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위기감은 전적으로 성령님과의 동업사역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맞는 것이지만 ‘성령님과의 동역 사역’이란 바로 성령론에 관한 것이다. ‘성령님과의 동역 사역’을 주장하는 조용기 목사가 가르치는 성령론은 커다란 혼란과 모순 속에 있기 때문에 ‘성령님과의 동역 사역’을 더욱 못하게 하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 조용기 목사가 말하는 ‘성령님과의 동역 사역’을 방해하는 그의 성령론이 왜 잘못되었는가에 대하여 본 글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많은 교회들이 부흥되지 않는 이유는 부흥을 위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교재하고 은사를 개발하여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한세대학교 목회대학원 오순절영성훈련 1998. 4. 9 격려사 ‘서문’에서 발췌)

 

    이 글을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으나 그릇되었다. 교회가 성장하기 않는 이유는 기도에 있지 않고 바른 성령론에 있다. 먼저 바른 성령론의 정립이 없이 기도만 한다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계에서 성령세례(충만)를 위시하여 성령의 은사론은 전혀 연구되어 있지 않다.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가 성령세례(충만)를 받고 신자들도 반드시 받게 해야 한다. 목회자가 먼저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또한 신자들은 받게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고 하여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목회자가 성령세례를 받지도 않고 또한 신자들은 받게 하지 않고 성장하는 교회가 많이 있는데 이러한 교회는 바른 교회가 결코 아니다. 왜 바른 교회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본 저서의 뒤에 나오는 마 28:19의 ‘세례’ 항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영훈 목사가 말하는 성령운동과 교회성장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정체되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에 나는 사도행전 1장 8절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으며 바로 이 부분 에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이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성취한 것 같다. 또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도 부분적으로 성취된 것 같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앞서 언급했듯이 증인이라고 하는 것은 순교자요, 희생자요, 헌신자요, 자기 자신을 포기한 삶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령운동 없이 교회가 성장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에 몇 가지 한국의 성령운동의 관계를 말하려고 한다. 첫째로, 우리는 1907년에 대부흥운동을 일으킨 것 같이 성령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은 먼저 기도운동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셋째로, 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 영훈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후임 담임목사, 제7회 한국교회목회자세미나, 주최: 여의도순음교회 내 국제신학연구원 원장 이영훈 목사. 국제신학연구원 편집: ‘목회자의 영성훈련 성령과 기도.’ 이영훈 목사 발표 제목 ‘한국교회 성령운동이 나아갈 길’ 1995, p.28-29) 

 

    이상에서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정체되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에 나는 사도행전 1장 8절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으며 바로 이 부분에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은 바른 주장이다. 또한 “우리는 성령운동 없이 교회가 성장할 수 없음을 알았다”는 주장도 바른 주 장이다. 그러나 “행 1:8의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이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성취한 것 같다. 또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말씀도 부분적으로 성취된 것 같다”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이영훈 목사를 위시한 한국과 세계의 오순절주의자, 그리고 세계의 모든 신학계와 교계의 모든 신학자들과 사역자들은 눅 3:16, 눅 24:49, 행 1:5, 행 1:8, 행 2:1-4에 기록된 ‘중생과 성령세례와의 관계, 성령세례의 의미, 성령충만의 의미, 성령세례와 성령충만과의 관계’를 위시하여 성령론을 전혀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성령론의 바른 정립이 없이 교회성장을 위한 성령운동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성령론의 바른 정립이 없이 이영훈 목사가 주장하는 기도운동, 말씀운동, 교회일치운동을 한다고 하여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일차적이며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 점은 바른 성령론의 정립에 있다.

 

마원석 목사 말하는 선교사역 
금세기 초반에 일어난 성령운동은 두 가지의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권능을 받아서 증인이 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성령의 동행이 없이는 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선교할 생각도 말아야 되고 선교사 지원자가 없으면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도록 해야만 한다. 성령을 받지 않고 선교현장을 나가면 그것은 무장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말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성령을 받아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증인이 되는 것은 우리 교회가 해야 되는 일이다. 이렇게 성령사역에 동참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회를 놀랍게 복을 부어 줄 것이며 지금까지 받아온 복보다 더 많은 복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교회성장이 멈춰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교회의 성장비결이 기도에 있다는데 요즘 기도하지 않으십니까? 그 때마다 한결같은 대답은 기도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구역예배는 잘 모인다고 한다. 목회자 자신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회성장이 왜 멈추었을까요? 교회성장학을 연구한 분들의 방식에 따라서 교회 운영을 하면 교회성장이 지속되어야 할 텐데, 그들이 연구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건만 그들의 연구가 왜 효력이 없을까? 우리가 뭔가 중대한 것을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원석 목사, 1997년 여의도 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 주최 ‘목회자 월요성령학교’의 강의안 ‘성령운동과 21세기의 세계선교’에서 발췌 p.118,123,131 마원석 목사의 경력, 1979년부터 필립핀 선교사) 

 

    이상의 글은 전체적으로 바른 주장이다. 그러나 마원석 목사가 말하는 성령론은 혼란되어 있다. 여기에서 “하나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성령세례에는 권능을 받아서 증인이 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는 주장은 혼란되어 있다. 여기의 ‘하나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성령세례와 권능은 별개인 것으로 말하면서 동시에 ‘성령세례는 권능을 받아서 증인이 된다’고 하여 성령세례란 증인이 되는 권능을 받는 것이라고 하여 앞뒤 말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바른 주장은 “성령세례란 권능을 받아 증인이 되는 것이다”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마원석 목사는 이상에서 ‘성령 받음, 성령세례, 성령충만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그릇 번역된 한글성경을 바른 번역으로 믿고 착각하여 주장한 것이다. 한국교회가 정체되어 있는 이유를 기도하지 않아서라는데 이는 그릇된 것이다. 한국교회가 정체 되어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성령론이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른 성령론의 정립이 없이는 교회성장은 멈추게 되어 있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한편 역사적인 사실이다. 교회성장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는 분들 역시 그릇 번역된 성경책을 바른 성경책이라 믿고 성령론을 연구했기 때문에 그들의 성령론은 근본 출발부터 그릇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령론을 제대로 연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연구는 그릇된 것이며 그릇된 연구로 인하여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성장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명성훈 목사가 말하는 성령충만한 교회
성령충만한 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이며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이기에 성령충만한 교회로 인정을 받게 된 것입 니다. 성령충만한 교회의 특징은 매우 공격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통성기도가 특징입니다. 방언과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깊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통이 잦을수록 성령의 기사와 표적은 자주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교회의 원형인 초대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일반적으로 나타났던 교회였습니다. 누가는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한 초대교회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아지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행 5:12-16). (명성훈 목사, ‘성령과 함께’ p.196-7)

 

    이상의 명성훈 목사의 글을 얼핏 보면 맞는 주장인 것으로 보인지만 전혀 그릇된 것이다. “성령충만한 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이며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는 성장하는 교회입니다”라는 말은 그릇된 주장이다. “성령충만한 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라는 말은 성령충만의 뜻을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성령충만’이라는 말 자체는 그릇 번역된 성경에서 온 그릇된 용어이다. 뒤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여 성령충만이라는 말은 “성령의 권능충만”이어야 한다. “성령충만한 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가 아니라 명성훈 목사가 인용한 행 5:12-16의 기록대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교회이어야 성령충만한 교회이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통성기도가 특징인 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가 결코 아니다. 고전 14:26에 기록된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와 같은 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이다. ‘유창한 설교와 거창한 찬송’은 있지만 ‘계시(예언)도 없으며, 신유도 없으며, 방언도 없으며, 방언의 통역함도 없으며, 성령의 아홉 가지의 은사’가 전혀 나타나지 아니하는 교회는 비록 기도를 많이 하는 큰 교회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성령충만한 교회가 아니다.  한국오순절 신학자라고 하는 명성훈 목사의 성령론은 전혀 그릇된 연구로서 한국의 오순절교단은 물론이고 한국의 신학계를 오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