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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주장: "성령(님)을 인격체로서 모시지 아니하면 성령론 정립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아래의 성경구절들은 성령(님)을 물질 또는 물건취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래의 성경구절들은 성령(님)을 물질이나 추상명사로 취급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구절들을 바르게 번역하고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면 성령론의 정립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동서고금의 세계 신학계에서 성령론의 정립에 실패한 이유는 아래의 구절들을 바르게 번역하지 못하고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마 3:11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막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눅 1:15   저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 1:41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눅 1: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눅 3:16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요 1:33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요 3:34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0:22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행 2:17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행 2:38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행 4:31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6:3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행 9:17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행 10:45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행 10:47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행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행 15:8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행 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고전 12:13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7:40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고후 12:18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갈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갈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엡 1:13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 5:18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빌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골 2:6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딛 3:6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사,
유 1:20   성령으로 기도하며, 

 

    이상의 성경에 나오는 “성령과 불로 세례, 성령으로 세례, 성령의 충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 성령을 받음,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으로 충만하게, 성령을 주어,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내 영을 부으리니, 한 성령을 마시게” 등은 성령(님)은 모두 물질이나 물건 또는 힘(power, force)과 같은 추상명사로 취급하는 기록이다. 따라서 이상의 성령(님)을 물질이나 물건취급하는 것처럼 된 기록을 인격을 가지신 성령 하나님으로 바르게 번역하고 해석하지 아니하면 성령론의 정립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동서양의 현대 신학계에서 이 구절들을 전혀 잘못 번역하고 잘못 해석하여 성령론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본 저서에서는 이상의 성경에 나타난 성령(님)이 물질이나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을 바로 번역하고 바로 해석하여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를 철저히 밝혀낼 것이다.

 

모든 사역자들은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물질취급하고 있다.
John R. W. Stott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의 특징은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고(to baptize with water),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다(to baptize with the Holy Spirit). (John R. W. Stott, ‘Baptism & Fullness-the work of the Holy Spirit Today’ p.23)

 

    John Stott의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었다”(to baptize with the Holy Spirit)는 주장은 성령님을 물과 같은 물질로 취급하고 있다. 여기의 ‘to baptize with the Holy Spirit’에서 성령님(the Holy Spirit)은 하나님(God)이시므로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바꾸게 되면 ‘to baptize with God’가 되어 언어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된다. ‘To baptize with water’의 표현은 말이 되지만 ‘to baptize with the Holy Spirit’은 어불성설이다.

 

Billy Graham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성령(the Holy Spirit)은 한분의 인격체(a person)이시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한분의 인격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그것”(it)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었다. 예를 들어 요 14장, 15장, 16장에서 성령은 힘도 아니며, 하나의 물건도 아니고, 한분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분”(he)이라고 예수님께서는 호칭하시었다. 누구든지 성령을 “그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며, 아마도 지각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King James Version은 로마서 8:16에서 성령을 그것 자체(itself)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오역이다. 성령은 신성을 지니신 인격체이시며,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세분 중 한분이시다. (Billy Graham, ‘The Holy Spirit’ p.1-7)

 

    Billy Graham의 이상의 주장은 전혀 하자가 없고 모순이 없고 완전무결한 설명이다. 그러나 그의 저서에서 말하는 그의 다른 주장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성령을 채우시기를 원하신다”(God wants to fill us with His Spirit). (Billy Graham, ‘The Holy Spirit’ p.162)


    여기에서 Billy Graham은 성령(the Holy Spirit)을 인격체이신 하나님으로 취급하지 않고 물질(it), 능력으로 취급하고 있다. 물질, 능력으로 취급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God wants to fill us with His Spirit’로 표현해서는 절대로 안 되고 ‘God wants to fill us with the power of His Spirit’으로 표현해야 한다. 행 2:4의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Spirit’이나 엡 5:18의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도 역시 성령(the Holy Spirit)을 물질이나 능력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물질이나 능력으로 취급하지 않고 인격체이신 하나님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행 2:4과 엡 5:18의 한글성경과 영어성경의 번역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John Stott와 Billy Graham은 그들이 저술한 성령론에서 이와 같이 성령 하나님을 물질이나 물건으로 취급하여 그들의 성령론은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성령론은 황당한 그릇된 성령론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박형용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성령은 사도들에게 방언의 축복을 허락하셨다. 성령이 충만하므로 다른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성령을 부어주심이요,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모든 육체(백성)에게 부어주시겠다는 내용이다. 남종과 여종은 성령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 약속되어 있다. 이방인들이 성령 받은 사건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박형용 목사, ‘사도행전 주해’ 2007, p.58,67,68,73,130)

 

    박형용 목사가 사용하는 “성령이 충만하므로, 성령을 부어주심, 성령을 받을 것,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는 표현들은 성령님을 성령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물과 같은 물질이나 또는 권능(power)과 같은 추상명사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종윤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성령(the Spirit)이란 말은 위로부터 오신 능력(power)이라고 눅 24:49에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1:17,35과 4:14 이하에는 성령의 권능이라고 되어 있다. 성령의 권능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힘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라고 했다. 살전 1:5, 고전 2:4, 롬 15:9을 보면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라고 하여 능력과 성령이 동격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과 동격으로 나오는 것은...그러면 성령님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종윤 목사, 옥한흠 목사 편집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p.69)

 

    이상의 글에 의하면 “성령이란 말은 위로부터 오신 능력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이 동격”이라고 하여 성령은 바로 능력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서 성령(님)을 인칭명사로서 인격체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추상명사인 능력이라고 하여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편 “성령님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서는 성령(님)을 성령님으로 표시하여 인격체를 지니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종윤 목사와 같이 모든 신학자들과 모든 목사들이 성령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또한 능력으로 취급하여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종윤 목사는 “성령(The Spirit)이란 말은 위로부터 오신 능력이라고 눅 24:49에 기록하고 있다”고 해석하는데 이는 눅 24:49의 그릇된 번역과 해석에서 온 것이다.

 

눅 24:49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NIV   I am going to send you what my Father has promised; but stay in the city until you have been clothed with power from on high.

 

    눅 24:49의 기록에 의하면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라고 하여 여기에 나오는 능력을 성령(님)으로 절대로 해석할 수 없다. 만약에 여기에 나오는 능력을 성령으로 해석할 경우에 “너희는 위로부터 성령(님)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You have been clothed with the Spirit from on high)라는 말이 되어 문장으로서, 삼위일체의 교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문장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눅 24:49를 통해서는 ‘성령’이란 말을 위로부터 오신 ‘능력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이종성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성령은 예수가 계시지 않는 지금에 있어 다른 보혜사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신의 능력이다. (이종성 목사, ‘성령론’ 1992, p.250)

 

    이종성 목사는 이상에서 “성령은 신의 능력이다”라고 하여 성령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능력”으로 취급하고 있다.

 

김세윤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요한은 그가 모든 악의 세력들을 심판의 불에 태울 것이며,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소개하였다(마 3:12; 눅 3:17; 막 1:8). 예수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종말의 사자 또는 메시아로서 성령이 충만했다(눅 4:1; 막 1:12; 마 4:1). 주께서 자기가 택한 종에 대하여 기뻐하며 그에게 성령을 부어 주어 무장시키고 임무를 위임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성령으로 무장되어(사 42:1; 61:1),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모으며, 예수는 세례때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을 받았다. (김세윤 목사, ‘예수와 바울’ 2001, p.20,22,25,27. 미국 풀러신학교 교수)

 

    김세윤 목사는 이상에서 “성령을 부어 주실 것, 성령으로 기름부음, 성령이 충만, 성령을 부어, 성령으로 무장, 성령을 받고”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성령 하나님을 물(water)이나 기름(oil)과 같은 물질로 취급하는 것으로 전혀 그릇된 것이다.

 

곽선희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성령은 원문대로 보면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바람입니까? 보이지 않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인 성령은 분명히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큰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곽선희 목사, ‘사도행전 강해’ 1998, p.97)  성령으로 마음을 충만하게 채움으로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면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미운 사람도 고와집니다. 성령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하게 마련입니다. 성령을 재충만해야 합니다. 새어나간 성령을 다시 채워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 성령이 충만해 집니다. (곽선희 목사, ‘갈라디아서 강해’ p.348-354)

 

    곽선희 목사는 이상에서 “성령은 보이지 않는 힘, 보이지 않는 힘인 성령, 성령으로 마음을 충만하게, 성령을 받으면, 성령이 충만, 성령을 재충만, 새어나간 성령을 다시 채워”라는 등의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성령 하나님을 물이나 기름과 같이 물질로, 또는 힘과 같은 추상명사로 취급하는 것으로 전혀 그릇된 것이다.

 

김삼환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성령으로 채워야 우리의 심령은 만족하게 됩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눈물, 영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이 눈물이 올라옵니다.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시옵소서. (김삼환 목사, ‘팔복’ 1998, p.180,235,237,255)

 

    김삼환 목사는 이상에서 “성령으로 충만, 성령으로 채워야, 성령을 받으면,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라는 말을 사용하여 성령 하나님을 물이나 기름과 같이 물질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바꾸어 표현하면 “하나님으로 충만, 하나님으로 채워야, 하나님을 받으면, 하나님을 충만하게 부어”가 되어 어불성설의 황당한 표현이 되어 버린다.

 

길자연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말씀 듣는 시간은 성령을 공급받는 시간이다. (길자연 목사, 1998년 9월 9일 순복음오산리기도원 설교 중에서 발췌.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역임 1998~1999. 한기총회장 역임. 칼빈신학교 총장 역임)

 

    길자연 목사는 이상에서 “성령을 공급받는 시간”이라고 하여 성령 하나님을 완전히 물이나 기름과 같은 물질로, 또한 힘(power)같은 추상명사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전혀 그릇된 것이다.

 

김중기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당시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그의 영을 뿜어내시면서) 가라사대(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하셨다. 부활은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께 결정적으로 내리 닥쳤던 성령강림 사건이며 오순절은 하나님의 영이 그의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증기 목사, 순복음교육연구소 발행 신학연구논문집 ‘성령’(제2집) 1986, p.70.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 및 부총장 역임)


    김중기 목사는 이상에서 “그의 영을 뿜어내시면서, 성령을 받으라,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께 결정적으로 내리 닥쳤던, 하나님의 영이 그의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말들은 성령 하나님을 인격체를 가지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말이다.

 

하용조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님께서 이제 우리 안에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옛날과 달라집니다. 이는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본 것보다 더 확실해집니다. 성령의 충만이란 그 육체를 건드는 것입니다. 육체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충만했다는 말은 성령님의 임재가 내 인격 속에 내 몸 속에 왔다는 말입니다. 성령충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2008년 온누리교회의 Internet 설교 중에서 발췌)

 

    하용조 목사를 위시하여 위의 모든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성령 하나님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다. 왜 물건취급하고 있는 것인가? 한글에서 “받는다”라는 동사는 물건, 물질, 사랑, 능력과 같은 물질명사나 혹은 추상명사와 같이 사용되는 동사이며 인칭명사와는 절대로 같이 사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린 애기를 받아라. 일등병 하나를 받으라”의 경우에는 가능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누구누구 대통령을 받으라”라는 말은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말이다. 성령님은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받아라. 예수님을 받아라”라는 말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았다”라는 말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한글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겠지만 한글성경의 번역은 전혀 그릇된 번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데서 온 그릇된 질문이다.
    “성령의 충만”이란 말도 삼위일체 교리 측면에서 전혀 그릇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 충만, 예수충만, 모세충만, 아브라함충만”이란 존재할 수 없는 용어들이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은 성령님을 인격체로 취급하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용조 목사를 위시하여 한국에 있는 모든 신학교 교수들과 모든 목사들, 모든 선교사들, 모든 성경교사들, 모든 신자들이 일체의 예외 없이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물질이나 물건취급하여 그릇 가르치고 그릇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옥한흠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10년, 20년 씨름해도 교회가 병들어 있습니다. 성령 받아야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을 해내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입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었지만 하나님의 신으로 그 일이 가능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먼저 주고 싶어하는 선물이 성령님을 가르칩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다시 충만케 하옵소서. 성령이 내 가슴을 가득히 채우시고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은 다 없애버리소서. (옥한흠 목사 편집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p.69,73-74,79). 신자는 누구나 성령으로 채움을 입은 성령의 사람이다. (옥한흠 목사, ‘평신도를 깨운다’ 1998, p.41)

 

    이상의 글에서 옥한흠 목사는 “성령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을 해내시는 하나 님의 신비한 능력”이라고 하였다. 이상에서 옥함흠 목사는 이종윤 목사와 같이 “성령은 능력”이라고 하여 성령을 하나님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 모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먼저 주고 싶어하는 선물이 성령이다. 성령으로 다시 충만케 하옵소”라는 말들도 역시 성령을 하나님으로 취급하지 않고 능력이나 선물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왜 이들의 용어가 성령을 하나님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는가? 삼위일체의 교리에 의하면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옥한흠 목사의 위의 주장을 다시 고쳐보면 “우리 모두 하나님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먼저 주고 싶어하는 선물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으로 다시 충만케 하옵소서”라가 되어 어불성설의 황당한 말이 되어 버린다. 한편 옥한흠 목사는 “이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에서는 성령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다. 성령을 성령님으로, 성령 하나님으로 취급하지 않는 글이나 설교는 전부 그릇된 것이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동서고금의 전 세계 신학계와 교계에서 일체의 예외 없이 성령론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상의 이유에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론을 정립하지 못하고 가르치는 기독교는 전부 그릇된 가르침이다. 옥한흠 목사가 “우리 모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다시 충만케 하옵소서”라는 주장을 하게 된 이유는 그릇된 번역을 맞는 번역으로 믿는 착각에서 온 것이다. 이들 용어에 대한 바른 번역이 없이는 성령론의 정립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옥한흠 목사는 또한 “성령이 내 가슴을 가득히 채우소서. 성령으로 채움”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성령이 내 가슴을 가득히 채우소서”라는 말은 말이 되는 것 같으나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성령이 내 가슴을 무엇으로 가득히 채우소서”라고 해야 말이 된다. 여기에서 “가슴에 무엇을 채운다”는 말을 모르면 성령론은 절대로 풀수 없게 된다. 옥한흠 목사가 이와 같이 말이 안 되는 말을 하게 된 이유는 행 1:8에 대한 이해를 못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행 2:4의 그릇된 번역을 맞는 번역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행 1:8과 행 2:4의 기록에 근거하여 “성령님이시여, 내 가슴을 성령님의 권능으로 가득히 채우소서”라고 말한다면 바른 표현이 된다.

 

서철원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성령충만은 바로 성령의 지배이지 물처럼 흘러넘치게 부어지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보혜사로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떠난 후에 와야 했다. 성령의 오심은 예수의 오심이다. 보혜사는 예수의 부재 시 예수의 현존이다. 예수는 보혜사로서 성령으로 제자들 안에 현존한다. 오순절파의 주장처럼 성령이 액체로 비유되어 처음에는 조금 부어지고, 그 다음에 넘치게 부어지는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인격이므로 임재 후에는 인격으로 오시고 사람의 전 인격을 지배한다. 성령은 하나님이심으로 사람에게 오면 그를 지배한다. 바울도 성령 받음을 성령으로 충만케 한다(행 9:17)고 아나니아가 전파하였다.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성령을 마시고 산다. 예수의 성령세례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음이라고 해야 더 타당하다. 그 전에는 예수의 육체에만 거주하였던 성령이 많은 사람들의 육체에 부어져 내렸다. 예루살렘 교회의 삼천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선포대로 예수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행 2:38-42).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로 이루어지고 믿음은 그 도구이다. 그런데 이 믿음과 구원 얻음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우리의 노력이 아니다(엡 2:8). 인간의 청구나 성령 받기 위한 노력 이전에 성령을 사람들에게 부으신다(행 10:45).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2:38). (서철원 목사, ‘성령신학’ p.104,109,112,115,118,120,122)

 

    이상에서 서철원 목사는 “성령의 오심은 예수의 오심이다. 보혜사는 예수의 부재시 예수의 현존이다. 예수는 보혜사로서 성령으로 제자들 안에 현존한다. 성령은 인격이므로 임재 후에는 인격으로 오시고 사람의 전 인격을 지배한다. 성령은 하나님이심으로 사람에게 오면 그를 지배한다”라고 하여 성령을 예수님과 하나님으로 인격체이신 성령님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편 그는 “바울도 성령 받음을 성령으로 충만케 한다.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성령을 마시고 산다.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음이라고 해야 더 타당하다. 성령을 사람들에게 부으신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하여 성령(님)을 인격체이신 성령 하나님으로 취급하지 않고 ‘마시는 물’과 동일하게 물질로 취급하고 있다. 서 목사는 분명히 “오순절파의 주장처럼 성령이 액체로 비유되어 처음에는 조금 부어지고, 그 다음에 넘치게 부어지는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 “예수 믿을 그 순간부터 성령을 마시고 산다. 성령을 사람들에게 부으신다. 성령이 많은 사람들의 육체에 부어져 내렸다”라고 하여 성령을 물과 같은 액체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이 그가 저술한 성령론은 커다란 모순 속에 있다.

 

안영복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오순절 이전에 제자들은 이미 중생하여 성령을 모시고 있었다. 이렇게 성령을 모시고 있는 그들에게 오순절 날에 와서 다시금 성령이 위로부터(눅 24:49) 충만히 부어졌던 것이다. 성령세례는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심으로 표현된다. (안영복 목사, ‘성령론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p.96,105)

 

최갑종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사도행전 저자 누가는 여러 곳에서 이미 성령을 받은 자들이 다시 성령으로 충만해졌음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베드로가 다시 성령으로 충만해졌으며(행 4:8), 이미 성령을 받은 예루살렘 교인들이 다시 성령으로 충만해졌으며(행 4:31), 이미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행 6:3,5)이 다시 성령이 충만해졌다(행 7:55)고 각각 말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으로서 초월하신 동시에 내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성령을 마치 물질처럼 생각해서 성령이 우리 인간 안에 갇혀 있는 어떤 무엇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갑종 목사, ‘율법과 성령’ p.179)

 

    안영복 목사는 “성령을 모시고 있다”고 하여 성령을 인격체로 취급하면서 동시에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심”이라 하여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최갑종 목사는 “성령을 마치 물질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성령을 받은 자, 성령을 충만히 받음”이라고 하여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김의환 목사: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수들은 신학교 교수 자격이 없다. 그들은 크리스쳔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이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신학교 교수들이 성령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성령을 인격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수들은 신학교 교수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은 크리스쳔이 아닙니다. 크리스쳔이 아닌 사람이 신학교에서 성령론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김의환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부설 국제신학연구원 주최 ‘제 5회 국제신학학술세미나’ 자료집 발표논문 ‘성령운동과 교회갱신’ 1997년 8월 발행. p.75). 1907년 1월 6일 첫날밤에 길선주 목사가 ‘마음 문을 열고 성령을 받으라’라는 제목하에 설교하였다. 길선주 목사는 네번의 밤 집회 설교를 맡아 설교하는 동안 2,200명의 결신자를 얻었다. (김의환 목사 op.cit., p.7-19)

 

    이상에서 김의환 목사는 성령을 인격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신학교 교수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성령을 받으라’라는 말을 사용하여 성령을 인격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물질로 취급하여 스스로 모순된 주장을 펴고 있다.

 

조용기 목사의 주장: “성령(님)을 인격체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이단이다.”
일부 성도들이 성령님을 비 인격적인 능력이나 영향력 등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성령님에 대한 신앙태도에 중대한 잘못을 범해왔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아리안이나 사벨리안, 소시니안들은 성령님을 단지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만 간주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통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낙인 되었다. (조용기 목사,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 p.93-94)

 

 조용기 목사는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맥이 빠지고 시들시들하게 된 이유는 성령님과의 교재가 무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인식하지 않고 순순히 힘이나 기운 등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성령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지, 정, 의를 가지신 인격체라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용기 목사, ‘오중복음 이야기’ p.61,66)

 

용기 목사는 한편으로 성령(님)을 물질이나 물건취급하고 있다.
우리가 보혜사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거하면서 승리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격자이십니다. 이 때문에 인격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조용기 목사, 1987년 8월호 ‘현대목회’의 ‘보혜사 성령’의 기고문에서 발췌, p.18)
오늘날 우리가 믿을 때 그냥 성령을 받는다면 무엇 때문에 바울이 구태여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쓸데 없는 말을 물었겠느냐는 것이다. 바울의 말을 자세히 살펴 볼 때 믿음은 자동적인 성령충만이 아니며 또한 믿은 자가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믿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다는 어리석고 나약한 자기 무능력에 빠진 변명을 단호히 버리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고 또 명령하고 있는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조용기 목사, ‘성령론’ p.140-141)
성령충만이란 우리가 중생한 뒤 성령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점령하여 우리 안에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조용기 목사, ‘성령님’ p.144)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과 같이 성령이 한 방울도 없는 사람은 천국에 못갑니다(조용기 목사, ‘요한계시록’ 설교 테입). 우리에게 성령을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1998년 6월 7일 오전 11시 설교). 우리의 육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우리의 영도 성령을 호홉하며 삽니다. 우리는 폐를 통하여 공기를 들어 마시듯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늘 호홉할 수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1997, p.37)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없이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조용기 목사, ‘요한복음 강해’ [상] 1997, p.89)
 
    조용기 목사는 이상의 글에서 “성령님께서는 인격자이십니다. 이 때문에 인격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한다. 한편으로 그는 “성령으로 충만, 성령을 받음, 성령의 충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가득한 것, 우리에게 성령을 퍼부어 주시는, 성령이 한 방울도 없는 사람, 성령을 늘 호홉하며, 성령을 한없이 부어주셨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성령 하나님을 인격체로서 취급하지 않고 물질이나 물건, 또는 힘과 같은 추상명사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조용기 목사가 말하는 그의 성령론은 분명히 횡설수설한 모순 속에 있다. 조용기 목사는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아리안, 사벨리안, 소시니안들은 성령님을 단지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만 간주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통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낙인 되었다”고 하였다. 위의 조용기 목사의 주장에 의하면 그는 성령(님)을 힘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주장에 의하여 그는 소시니안들과 같이 이단이 되어 버렸다. ‘여호와 증인들’은 성령님을 하나님이 아니라 ‘힘’으로 취급하여 이단이 된 것이다. 보수정통이라는 기성교계와 신학계는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또한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하여 이단이 아니면서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비난을 피하는 길은 성령론을 다시 연구하는 길 밖에 없다.


이영훈 목사는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독교회사를 보면 첫 번째 이단으로 정죄된 아리우스는 예수님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신 분으로 첫번째 피조물로 생각하였고, 성령을 ‘하나님의 능력’ 정도로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성령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다. (이영훈 목사, 2007년 10월 24일 LA 크리스찬투데이 신앙칼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투고에서 발췌)

 

이영훈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는데 그는 장차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야는 성령으로 침례를 베풀 것이라고 선포한다(막 1:8). 성령침례는 성령으로 사로잡히는 성령충만의 체험으 로 일회적인 것이다. (이영훈 목사, 순복음가족신문 1998년 10월 11일 기고문에서)
오순절 날은 영적 추수가 시작된 날이요 율법대신 은혜의 성령을 받은 날이다. 한국교회는 실로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이영훈 목사, 한국오순절학회 간행물 1997년 11월 기고문에서 발췌 p.3,29). 사도시대의 오순절 성령의 부어짐이 첫 열매를 거두는 이른 비의 역사였다면 현재의 오순절 성령의 부어짐은 마지막 추수를 위한 늦은 비의 역사로 본다. (이영훈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 교회성장연구소 주최 제7회 국제신학학술세미나 주제발표문 p.94) 

 

    조용기 목사의 후계자인 이영훈 목사는 위에서 “성령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다”라 고 하여 성령을 성령 하나님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그는 “성령으로 침례, 성령으로 사로잡히는 성령충만, 성령을 받은 날, 성령이 충만, 성령의 부어짐”이라고 하여 성령 하나님을 인격을 지니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물과 같은 물질이나 힘과 같은 추상명사로 취급하고 있어 조용기 목사와 같이 앞뒤의 주장이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명성훈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성령충만은 곧 예수충만입니다. 성령 따로 예수 따로가 아닙니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경은 인류의 고전에 불과하지만 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생한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항상 예수님을 증거하고 높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할수록 우리 자신은 죽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인격이시며 보혜사이십니다. 성령을 더욱 인격으로 모시고 인격적인 표현을 언어와 생활로 표시하여 더욱 성령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명성훈 목사, ‘성령과 함께’ p.21-22,35)

 

최성규 목사는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그것은 성령이다. (최성규 목사, 인천순복음교회 담임, 1998년 6월호 ‘신앙계’에 기고한 글 ‘목마르지 않는 샘물’ 중에서 발췌)

 

    한국의 오순절교단을 이끈다고 하는 신학자 명성훈 목사는 “성령을 더욱 인격으로 모시고”라고 하여 성령님을 인격체로 취급하면서 동시에 “성령이 충만할수록,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하여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조용기 목사의 제자로서 한국 오순절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한 최성규 목사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성령”이라고 하여 성령님을 물과 같이 물질취급하고 있다.

 

요 14:16-17에 대한 NAB의 번역(New American Bible 가톨릭 영어성경)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Advocate to be with you always, the Spirit of truth, which the world cannot accept, because it neither sees nor knows it. But you know it, because it remains with you, and will be in you.

 

    가톨릭 영어성경은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NAB는 ‘the Spirit of truth, which the world cannot accept’에서 ‘the Spirit of truth’(진리의 성령)을 관계대명사 ‘which’로 받아 물질과 물건취급하고 있다. 또한 NAB는 ‘the world neither sees nor knows it’에서 ‘the Spirit’를 ‘it’로 받아 물건이나 물질취급하고 있다. 또한 NAB는 ‘you know it, because it remains with you, and will be in you’에서 ‘the Spirit’를 똑같이 ‘it’로 취급하여 물건이나 물질취급하고 있다.

 

요 14:16-17에 대한 KJV의 번역
And I will pray the Father, and he shall give you another Comforter, that he may abide with you forever; Even the Spirit of truth; whom the world cannot receive, because it seeth him not, neither knoweth him: but ye know him; for he dwelleth with you, and shall be in you.

 

    KJV는 위의 가톨릭 성경(NAB)과는 다르게 ‘the Spirit of truth’을 ‘whom, him’로 받아 성령님을 물질취급하지 않고 인격체로 취급하고 있다.

 

요 3:5-8에 대한 NAB의 번역 
Jesus answered, "Amen, amen, I say to you,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without being born of water and Spirit. What is born of flesh is flesh and what is born of spirit is spirit. Do not be amazed that I told you, 'You must be born from above.' The wind blows where it wills, and you can hear the sound it makes, but you do not know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goes; so it is with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NAB의 ‘born of water and Spirit’에서 정관사 ‘the’가 없는 ‘Spirit’은 성령님을 뜻하지 않고 있는데, ‘the Spirit’이어야 성령님을 뜻한다. 또한 ‘what is born of spirit’에서 ‘spirit’은 성령님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the Spirit’이어야 한다. 그러나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에서 ‘the Spirit’은 성령님을 의미하기 때문에 바른 번역이다.

 

요 3:5-8에 대한 KJV의 번역
Jesus answered,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Marvel not that I said unto thee, Ye must be born again.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sound thereof, but canst not tell whence it cometh, and whither it goeth: so is every 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요 3:5-8의 번역에서 KJV은 이 구절들에서 전부 ‘the Spirit’로 번역했는데 이는 바른 번역이다.

 

요 3:34은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라”고 하여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요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라.    
NIV  For the on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God gives the Spirit without limit.
KJV  For he whom God hath sent speaketh the words of God: for God giveth not the Spirit by measure unto him.
NAS  For H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He gives the Spirit without measure.
필자  For the on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God gives the words of the Spirit without limit.
필자  For the on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God gives the words of God without limit through the Spirit.
필자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한량 없이 주심이다.

 

    이상의 요 3:34의 구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성령(님)을 한량 없이 주신다”를 문자적으로 보면 성령님이 분명히 인격체이신 성령 하나님을 뜻하지 않고 물질이나 물건취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각별한 번역과 해석이 필요하다. 마 10:29, 행 2:17-18, 살전 5:19에서와 같은 맥략에서 요 3:34를 번역하고 해석해야 한다. 요 3:34 후반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성령(님)을 한량 없이 주심”의 번역과 해석을 위해서는 요 3:34 전반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를 같이 놓고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데 “어떻게 하여 이렇게 말씀하느냐 하면”(for)의 이유를 후반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에게 한량 없이 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성령(님)을 한량 없이 주심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고 해석할 경우 성령 (님)은 물질이나 물건이 되기 때문에 이상과 같이 해석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뜻이 요 3:34의 말씀이다. 따라서 바른 번역과 해석은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한량없이 주심이니”(For the on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God gives the words of God without limit through the Spirit)이어야 한다. 

 

고전 12:13은 “다 한 성령을 마시게”라고 하여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고 있다.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Greek καὶ γὰρ ἐν ἑνὶ πνεύματι ἡμεῖς πάντες εἰς ἓν σῶμα ἐβαπτίσθημεν, εἴτε Ἰουδαῖοι εἴτε Ἕλληνες εἴτε δοῦλοι εἴτε ἐλεύθεροι, καὶ πάντες ἓν πνεῦμα ἐποτίσθημεν.

NIV  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into one body-whether Jews  or Greeks, slave or free-and we were all given the one Spirit to drink.
KJV  For by one Spirit are we all baptized into one body, whether we be Jews or Gentiles, whether we be bond or free; and have been all made to drink into one Spirit.
NAS  For by one Spirit we were all baptized into one body, whether Jews or Greeks, whether slaves or free, and we were all made to drink of one Spirit.
필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몸 안에서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고 또 다 한 성령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 하셨느니라.
필자  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in one body-whether Jews  or Greeks, slave  or free, and we were all given the living water of the one Spirit to drink.

 

    이상의 “다 한 성령(님)을 마시게 하셨느니라”의 기록에 의하면 성령(님)은 요 3:34의 “성령(님)을 한량 없이 주심”에서와 같이 성령(님)이 분명히 인격체이신 성령 하나님을 뜻하지 않고 물질취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마 10:29, 행 2:17-18, 살전 5:19, 요 3:34에서와 같은 맥략에서 고전 12:13도 번역하고 해석해야 한다. 요 3:34의 후반절에 나오는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은 요 3:34의 전반절을 같이 놓고 번역하고 해석해야 하듯이 고전 12:13의 후반절의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의 번역과 해석도 반드시 고전 12:13의 전반절의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와 같이 놓고 연구해야 한다. 고전 12:13은 고전 10:1-4, 요 7:37-39과 연결시켜 번역과 해석을 해야 한다.

 

고전 10:1-4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요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고전 10:1-4의 기록에 의하면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석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하였다(They all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accompanied them, and that rock was Christ). 만약에 여기에서 예수님를 마셨다고 한다면 언어로서 말이 안되기 때문에 어불성설이다. 이와 같이 고전 12:13의 후반절에 나오는 “한 성령(님)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한 성령(님)을 통하여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 하셨느니라"로 번역하고 해석해야 한다.
    요 7:39의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By this he meant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later to receive. Up to that time the Spirit had not been given, sinc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는 한글성경과 모든 영어 성경의 번역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바른 번역은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의 권능충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아직 저희가 성령의 권능충만을 받지 아니하였더라”(By this he meant the Spirit, of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later to be filled with. Up to that time they had not been filled with (the power) of the Spirit, since Jesus had not yet been glorified)이어야 한다. (* 요 7:39의 번역의 문제에 관하여서는 본서의 lambano의 번역을 참조할 것)
    행 1:5,8, 행 2:3-4의 기록에 의하면 성령세례란 성령(님)의 권능을 받는 것이며 이는 곧 성령충만(권능충만)이라는 것이다. 즉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동의어라는 사실이다. 요 7:37-39의 기록은 한 문장으로서 믿는 자가 성령세례(권능충만)를 받으면 그의 배에서 생수(living water)의 강이 흐른다는 뜻이다. 이 생수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믿는 자에게 주신다는 말씀이며 성령세례(권능충만)를 받는 자는 성령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 된다는 뜻이다. 고전 12:13의 전반절과 후반절은 별개의 뜻을 가지는 기록이 절대로 아니라 하나의 뜻을 기록하는 기록이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한 몸 안에서(이 구절에 나오는 헬라어 eis는 into가 아니라 반드시 in으로 번역해야 한다) 다 한 성령에 의한 세례를 받았고, 또한 다 한 성령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 하셨느니라”(필자의 번역)의 뜻이다. 여기에서 “또”(kai, and)는 바른 번역이 절대로 아니다. 바른 번역은 반드시 “즉, 곧, 다시 말하여”(namely, that is)이어야 한다. 고전 12:13의 뜻은 간략하게 설명하면 “우리 모두 한 몸 안에서 한 성령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고 곧 성령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 되었다”이어야 한다. 행 2:4을 위시하여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성령충만”(성령세례)이란 말은 그릇된 번역에서 온 것으로 성령님을 물질취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번역은 반드시 “성령의 권능충만”이어야 한다. 행 2:4의 바른 번역에 관해서는 필자의 글 뒷편에서 자세히 다르고 있다.


성령(님)을 power로 취급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단이다.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power로 취급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단이다.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아니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성경을 무오의 진리로 믿는 정통 기독교,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정통 기독교를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신학자와 목사는 일체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히 밝히는 것은 한국이나 서구에서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성령(님)을 물질취급하거나 power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이 이단이라고 비판한다고 하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일체 없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충만히 받으라. 성령을 부으리라”라는 말을 일체의 예외 없이 모든 한국의 기독교인들, 목사, 선교사, 사역자, 신학자들, 신자들이 바른 용어로 알고 사용하고 있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충만히 받으라. 성령을 부으리라”는 용어사용에 대하여 개신교 역사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국의 신학계와 교계에서 이 그릇된 용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다. 이 용어문제를 성경 안에서 해석하여 풀지 못하면 성령론의 정립은 절대로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