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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주장: “중생 시의 성령님의 사역과 성령세례 시의 성령님의 사역은 다르다.”
김영한 목사의 주장: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는다.”
중생과 구원과 성령의 세례는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나 성령세례가 반드시 물세례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앙고백이 있는 물세례는 성령세례의 표징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이 단지 의식적으로만 그칠 때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오순절파의 성령론은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을 혼동하고 있다. 그리고 중생이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중생은 오로지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가능하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고 역설하고 있다. 이어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한 자들이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성령을 마셨다고 말하고 있다. 오순절파의 성령론은 이러한 중생의 역사를 일이키는 성령의 사역이 방언을 말하게 하는 성령의 징표적 역사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순절파의 성령론은 방언 말함을 성령의 세례와 동일시함으로써 성령의 역사를 중생보다도 방언 등 외적인 징표로서만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협착화 시키기에 이른다. 성령세례는 단 한번에 일어나는 구원의 서정으로 다시 되풀이 않는다. 이에 대해 성령충만은 지속적으로 일어나며 되풀이 되는 사건이다. 양자는 구별할 수는 있으나 분리될 수는 없다. 양자에는 시작과 지속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생과 구원과 성령의 세례는 동시에 일어난다. (김영한 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논문집 제20권 ‘성경과 신학’ 논문제목: ‘개혁주의 성령론’ 1996, p.632-3)  
  
    이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생과 성령세례는 동일한 성령의 사역으로 동시에 일어난다. 즉 중생 시의 성령의 사역과 방언을 수반하는 성령세례 시의 성령의 사역은 동일한 것으로 중생과 성령의 세례는 동시에 일어난다. 그런데 오순절파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중생과 성령세례를 다른 것으로 취급하는데 이는 동일한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으나 전혀 그릇된 것이다. 중생과 성령세례는 동일한 성령의 사역인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면 중생과 성령세례는 동일한 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이지만 중생 시의 성령의 사역과 성령세례 시의 성령의 사역은 전혀 동일하지 않고 분명히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중생과 성령세례가 동일한 성령께서 행하시는 동일한 사역이라고 하여 중생과 성령세례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또한 김영한 목사의 “성령세례는 단 한번에 일어나는 구원의 서정으로 다시 되풀이 않는다. 이에 대해 성령충만은 지속적으로 일어나며 되풀이 되는 사건이다”는 주장도 고전 12:13의 그릇된 번역과 행 1:5,8, 행 2:3-4의 그릇된 해석에서 온 것이며,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동의어의 관계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 그릇된 주장이다.

 

성경에 기록된 중생 시의 성령님의 사역
고전 12:3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요 3:5-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롬 8:9-16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 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갈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요 3:5-6에 근거하여 오순절 전에 성령을 통하여 즉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거듭 났고, 고전 12:3과 마 16:16에 근거하여 성령을 통하여 즉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였고, 갈 4:6에 근거하여 마음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오순절 전에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불렀고, 롬 8:9-16에 근거하여 성령이 그에게 내주하여 그리스도인 되었고, 동시에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즉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상의 기록은 오순절 전의 베드로는 그에게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즉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분명히 중생하였음을 증거하고 있다. 한 마디로 베드로의 중생은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오순절 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이 사실을 외면하면 중생 시의 성령의 사역과 성령세례 시의 성령의 사역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성경에 기록된 성령세례 시의 성령님의 사역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2:1-5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상의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오순절 전에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예수님의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이미 중생하고 있었는데 아직 성령세례(충만), 곧 성령의 권능을 받지 않고 있었다. 행 1:5,8, 행 2:1-5에 근거하면 베드로를 위시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께서 임하여 주시는 성령세례(성령의 권능)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성령께서 임하시어 주시게 되는 성령세례(성령의 권능, 성령충만)는 아직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은 성령세례는 분명히 성령의 사역이라는 사실이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중생은 분명히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런데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지는 성령세례는 오순절 날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말은 중생 시의 성령의 사역과 성령세례 시의 성령의 사역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즉 중생과 성령세례는 동일한 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이지만 중생 시의 성령의 사역과 성령세례 시의 성령의 사역은 같지 않고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중생 시의 성령의 사역은 불신자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사역이며, 성령세례 시의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권능을 받아 복음사역에 임하게 하는 사역으로 완전히 구분되는 사역이다. 그런데 김영한 목사는 이상의 사실은 전혀 잘못 연구하여 중생과 성령세례는 동일한 성령의 동일한 사역으로서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그릇 주장하게 된 것이다. 김영한 목사가 말하는 성령론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