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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주장: "중생 시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그릇된 주장의

두 번째 근거는 행 2장; 행 10장; 갈 3장이다.
John R. W. Stott의 행 2:38-41의 해석
오순절 날 말씀을 들은 3,000명은 회개하여 믿고 물로 세례를 받았다. 그들이 죄의 용서와 선물을 받았다고 특별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강력한 추측(strong presumption, 추론)은 그들이 죄의 용서와 선물을 받은 것이다. 120명은 이미 중생하였고 10일 동안 오직 기다린 후에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반면에 3,000명은 불신자들이었고 기다릴 필요가 없이 회개하고 믿은 후 즉시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동시에 받았다. 120명의 경우는 규범이 아니고 3,000명의 경우가 오늘날의 규범이다. (John R. W. Stott, op.cit., p.28-29)

 

  John Stott의 행 2:38-41에 대한 해석과 주장은 성경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전혀 그릇된 것이다. Stott는 이상의 주장에서 “성경에 3,000명이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고 특별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이 이것들을 받은 것은 강력한 추측(추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였다. 성경에 확실히 기록된 근거가 없는 것을 추측(추론)에 근거하여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동시에 받았다고 확증하여 이를 전 성경에 적용시켜 확정적인 규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오늘날의 신자들의 규범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Stott가 말한대로 행 2:38-41에 3,000명이 물세례를 받은 후 성령의 선물인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 3,000명이 예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하다. 그러나 물세례 받을 때 성령의 선물 곧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해석하거나 주장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불확실한 추측(추론)을 근거로 하여 물세례 받을 때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라는 주장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그릇된 주장이며 그릇된 해석이다. 이인한 목사는 “중생과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John Stott이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자 박형룡 목사와 박윤선 목사 그리고 많은 소위 보수신 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이인한 목사, “오순절과 성령의 세례’ p.10)고 주장하고 있다. John Stott의 그릇된 성령론을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성령론으로 수용하여 한국 신학계와 교계를 오도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자 박형룡 목사와 박윤선 목사 그리고 이 두 목사를 스승으로 삼고 있는 많은 보수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분명히 불행한 주인공들이다.

 

Billy Graham의 행 2:38-41의 해석
예수님의 120명의 제자들은 이미 중생하였고 10일 동안 오직 기다리다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반면에 3,000명은 불신자들로서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동시에 받았다. 그들은 일체의 기다림 없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즉시 이를 받았다. 3,000명은 중생 시에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120명은 오순절 전에는 오순절 날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오래전에 정지되어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우리는 3,000명과 같이 오순절 사건 이후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과 같이 우리도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 곧 성령세례를 동시에 받는다. 중생 후, 회심 후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구절을 보지 못했다. 회심 후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성경 구절을 나 개인적으로 발견하지 못했다. (Billy Graham, ‘The Holy Spirit’ p.95-96,146) 

 

    Billy Graham이 저술한 ‘The Holy Spirit’(성령)이라는 책은 1980년 초에 100만권 이상이 판매되었고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강사이기 때문에 그가 저술한 [성령]이라는 책을 독자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으로 믿고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지 않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그가 말하는 성령론을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론으로 믿고 있다. 이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가 말하는 “예수님의 120명의 제자들은 이미 중생하였고 10일 동안 오직 기다리다가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는 주장은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바른 주장이다. 그러나 “3,000명은 불신자들로서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동시에 받았다. 그들은 일체의 기다림 없이 회개하고 믿음으로 즉시 이를 받았다. 3,000명은 중생 시에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120명은 오순절 전에는 오순절 날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오래전에 정지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3,000명과 같이 오순절 사건 이후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과 같이 우리도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 곧 성령세례를 동시에 받는다”는 주장은 성경을 잘못 연구함으로써 생긴 전혀 그릇된 비 성경적인 주장이다. “3,000명은 불신자들로서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동시에 받았다”는 주장은 행 2:38-41에 근거한 것인데 이 구절을 통해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이 주장은 위에서 살펴 본 John Stott의 주장과 같이 추측(추론)에 근거한 것으로 자의적인 주장일 뿐이다.
    Billy Graham은 “중생 후, 회심 후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구절을 보지 못했다. 회심 후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성경구절을 나 개인적으로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회심 후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성경구절은 요 7:37-39, 요 20:22, 행 1:5-2:4, 행 8:1-20, 행 9:1-19, 행 10:1-47, 행 19:1-7, 고전 12:13 등등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영접할 때, 중생할 때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성경의 근거는 한 구절도 없다.
   

성경은 “120명의 제자들은 중생 후에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R. A. Torrey가 말하는 120명의 제자들의 중생과 성령세례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도 신자가 될 수 있고 중생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확실히 이러한 경우가 초대교회에 있었다. 오순절 전의 사도들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R. A. Torrey, ‘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p.152)

 

    이상의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도 신자가 될 수 있고 중생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바른 주장이다. 

 

박형용 목사가 말하는 120명의 제자들의 중생과 성령세례
성령세례는 단회적인 것으로 성도들이 예수 믿을 때 경험하는 것이다(고전 12:13). 역사적으로 유일하고 특별한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을 개인 성도들의 구원과 연관시켜 볼 때, 개인 성도가 구원받을 그때, 즉 의롭다 인정함을 받을 때 그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골 2:12). 바울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라고 말한다. 이는 사람이 처음 교회로 접붙임 받을 때 성령세례 받는 것을 증거한다.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과 성도의 중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베드로가 오순절 이전에 중생했는가?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중생했는가?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은 역사적으로 유일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이 개인의 구원경험에 적용될 때는 개인의 중생사건과 때를 같이 한다. (박형용 목사 ‘사도행전 주해’ p.283,320,327)

 

    박형용 목사는 “성령세례는 단회적인 것으로 성도들이 예수 믿을 때 경험하는 것이다(고전 12:13).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은 역사적으로 유일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이 개인의 구원 경험에 적용될 때는 개인의 중생사건과 때를 같이 한다”라고 하여 “예수 믿을 때, 중생 시, 구원 얻을 때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성령으로 세례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그릇 번역된 고전 12:13을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에 적용하여 예수님의 120명의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 이전에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중생하여 구원을 얻은 사실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만약에 박형용 목사와 같이 어떤 신학자가 그릇 번역된 고전 12:13을 통하여 “성령으로 세례 받아 한 몸이 되었다. 중생 시에 성령 세례를 받는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가 쓴 글은 필연적으로 많은 모순이 있게 되어 있다. 

 

레마 성경주석이 말하는 120명의 제자들의 중생과 성령세례
성령세례와 중생은 동시에 일어난다. 물론 초대교회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으나 오순절에 성령강림이 있은 이후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으며, 성령세례가 아니고서는 거듭날 수 없고 따라서 성령세례와 중생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 (레마 성경주석 ‘사도행전’ p.283)

 

    이상의 “성령세례와 중생은 동시에 일어난다. 성령세례가 아니고서는 거듭날 수 없다. 성령세례와 중생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그릇 번역된 고전 12:13에 근거한 것으로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성경의 근거는 한 구절도 없다. “성령세례가 아니고서는 거듭날 수 없다”면 120명의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성령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오순절 전에는 거듭나지 아니했다는 황당한 주장이 되어 버린다. 
 
홍정길 목사가 말하는 120명의 제자들의 중생과 성령세례
성령세례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 이미 받는다. (홍정길 목사, 옥한흠 목사 편집,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p.120)

 

    이상의 홍정길 목사의 주장에 의하면 “성령세례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 이미 받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예수님의 120명의 제자들에게 적용시키면 그들은 오순절 날에 성령세례를 받았으니 성령세례를 받은 오순절 날에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로 영접했다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주장은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왜 이렇게 그릇된 주장이 되게 되었느냐 하면 “성령세례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 중생할 때 받는다”는 그릇된 주장에 기인한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으면 이는 곧 중생이며 거듭남이며, 동시에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이다. 120명의 제자들은 언제 중생했는가? 120명의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성령세례를 받았다. 성령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다는 주장을고전 12:13에 근거한다면 오순절 날에야 성령세례를 받은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야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고 오순절 날에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고 중생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는 있을 수 없는 어불성설의 모순된 황당한 주장이다.

 

박형룡 목사가 말하는 120명의 제자들의 중생과 성령세례
오순절 날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본래 성령으로 세례 받아 중생한 자들로서 이날에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이것을 성령의 세례라고 한 것은 예외의 표현인 듯하다(행 1:5). (박형룡 목사, ‘교의신학 구원론’ p.56) 

 

    박형룡 목사의 “오순절 날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본래 성령으로 세례 받아 중생한 자들이다”는 주장은 성경에 근거가 일체 없는 자의적인 주장이다. 그는 한편으로 “오순절 날에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이것을 성령의 세례라고 한 것은 예외의 표현인 듯하다”(행 1:5)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박형룡 목사가 말한대로 “오순절 날에 받은 성령충만을 성령세례라고 했다”면 이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오순절 날 성령충만을 받았다.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았다”면 성령충만과 성령세례는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오순절 날 받은 성령충만 곧 이것을 성령의 세례라고 한 것은 예외의 표현인 듯하다”는 것은 전혀 모순되고 그릇된 주장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박형룡 목사가 그의 글 자체 내에 모순과 그릇됨이 있게 된 이유는 그가 “성경에 근거가 일체 없는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과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서로 다른 것이다”라고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박형룡 목사와 같이 어떤 신학자이나 목회자가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과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서로 다른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글을 썼다면 그가 쓴 글 자체 내에 반드시 허다한 모순과 오류와 그릇됨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어 있다. 박형룡 목사의 그릇된 성령론을 바른 성령론으로 수용하고 있는 한국의 장로교의 합동교단은 그릇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서철원 목사가 말하는 120명의 제자들의 중생과 성령세례
사도들을 포함한 120명은 주 예수를 그의 생존 시 만나 가르침을 받고 예수를 믿어 성령강림 전에 중생한 제자들이었다. 오순절에 모든 인류 가운데서 최초로 성령을 받은 제자들(행 2:1-4)은 이미 중생한 상태에서 성령 받은 자들이다. 그것은 중생 후 성령세례의 도식이 아니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만 오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오순절 강림 후에 예수 믿는 자들은 다 예수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 이런 근본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오순절파는 사도들과 제자들 백이십명이 오순절에 성령 받은 것에서 중생 후 성령세례의 도식을 행 2:1-4에 근거시키고, 또 이 본문이 이 신학을 증명해 준다고 한다. (서철원 목사, ‘성령신학’ p.87,90-91)

 

    서철원 목사의 “사도들을 포함한 120명은 주 예수를 그의 생존 시 만나 가르침을 받고 예수를 믿어 성령강림 전에 중생한 제자들이었다”는 것은 바른 주장이다. 한편으로 그의 “오순절에 모든 인류 가운데서 최초로 성령을 받은 제자들(행 2:1-4)은 이미 중생한 상태에서 성령 받은 자들이다”라는 주장은 행 2:1-4에 나오는 “성령충만을 성령 받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그릇된 것이다. 왜 그릇된 것이냐 하면 한글성경의 여러 곳에 나오는 성령 받음은 헬라어 동사 ‘lambano’의 그릇된 번역을 맞는 번역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순절에 모든 인류 가운데서 최초로 성령을 받은 제자들”(행 2:1-4)이라는 주장은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들”(행 2:1-4)이라고 해야 하며, “오순절에 모든 인류 가운데서 최초로 성령을 받은 제자들”(행 2:1-4)이라는 주장 중에서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령충만을 받은 것이 절대로 아니다. 성경에 구약시대로부터 오순절 이전까지 성령충만을 받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무수히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서철원 목사는 “그것은 중생 후 성령세례의 도식이 아니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만 오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라고 주장하는데 “중생한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성령충만을 받았다. 중생한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성령세례를 받았다”면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의어이며, 중생 후 성령세례의 도식이 증명된다. 그런데 서철원 목사는 “그것은 중생 후 성령세례의 도식이 아니고”라고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다. 만약에 서철원 목사와 같이 어떤 신학자이나 목회자가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며,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서로 다른 것이다. 성령 받음 = 성령세례, 성령 받음 = 성령충만”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가 쓴 글 자체 내에 반드시 무수한 모순과 오류와 그릇됨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어 있다. 한편 서철원 목사가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만 오실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이 주장은 120명의 제자들의 경우에만 적용될 뿐이고, 구약시대로부터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있기 전의 오순절 전까지의 기록에 수많은 성령님의 오심 곧 성령님의 임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철원 목사의 이 주장은 그가 성령님의 오심(임재)과 성령세례(성령충만)와 복음사역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서 오게 된 그릇된 주장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120명의 중생
마 16:15-17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제자들이 오순절 전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구세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하여 이미 중생했다는 증거이다. 

 

요 17:3-8,16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하면 주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하여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중생 시 회심할 때 받는다는 빌리 그래함의 주장은 전혀 그릇된 주장임이 여기에서 확증되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중생했기 때문이다.
 
요 15:1-5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는 말씀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죄의 용서함을 받아 깨끗하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말씀은 제자들은 예수님과 이미 한 몸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한글성경의 고전 12:13의 “성령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의 번역대로 말한다면 주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전에 이미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으니 오순절 전에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 1:5,8과 행 2:3-4에 오순절 날 제자들은 성령세례 곧 성령충만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행 1:5,8과 행 2:3-4과 고전 12:13의 기록은 전혀 모순된다. 왜 이렇게 모순이 있게 되었느냐 하면 고전 12:13의 번역을 바른 번역이라고 믿고 착각 속에서 해석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 12:13을 “한 몸 안에서 성령세례를 받았다”라고 바르게 번역한다면 행 1:5,8, 행 2:3-4, 고전 12:13은 모순되지 않고 전혀 일치하게 된다.

 

신학자들: “120명은 중생 후 성령세례를 받았지만 오순절 후에는 중생 시에 받는다.”
    John Stott와 Billy Graham은 “120명은 중생한 후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았지만 오순절 이후는 이와는 달리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행 2:38-41의 그릇된 해석에서 생긴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오순절 이후의 행 8장의 사마리아 신자들, 행 9 장에 기록된 바울의 경우, 행 10장의 고넬료의 경우, 행 19장의 에베소 교인들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이들은 결단코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지 아니했다. 따라서 John Stott와 Billy Graham의 “120명은 중생한 후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았지만 오순절 이후는 이와는 달리 중생 시에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주장임이 밝혀진 것이다. 120명의 중생과 성령세례의 관계는 행 11:15-17을 연구해야 한다.


행 11:17에 대한 정흥호 목사의 해석
행 11:17에서 “주 예수를 믿을 때”라고 표현함으로써 베드로의 보고를 통해 이방인들도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가이사랴에서 일어난 사건은 진실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정흥호 목사, ‘성경과 신학’ 한국 복음주의신학회 논문집 제20권 1996, p.606-7)

 

행 11:15-17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NIV  As I began to speak, the Holy Spirit came on them as he had come on us at the beginning. Then I remembered what the Lord had said: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So if God gave them the same gift as he gave us, who believed in the Lord Jesus Christ, who was I to think that I could oppose God?"
KJV And as I began to speak, the Holy Ghost fell on them, as on us at the beginning. Then remembered I the word of the Lord, how that he said, John indeed baptized with water; but ye shall be baptized with the Holy Ghost. For as much then as God gave them the like gift as he did unto us, who believed on the Lord Jesus Christ; what was I, that I could withstand God? 

 

    행 11:17에 대한 정흥호 목사의 해석은 한글성경의 번역을 맞는 것으로 믿고 연구한 것이다. 그러나 행 11:17에 대한 한글성경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의 번역은 그릇된 것이다. KJV과 NIV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as he did unto us, who believed on the Lord Jesus Christ)이라는 번역이 바른 번역이다. 한글성경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의 번역이 왜 그릇된 번역인가는 베드로를 위시하여 예수님의 120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은 성경에는 일체 없고 오순절 날에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은 일체 없다. 일체의 예외 없이 전 세계의 신학자들이 “예수 믿을 때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느냐  하면, 한국에서 [예수  믿음 = 성령 받음 = 성령세례 받음], 영어권에서  [to receive Jesus = to receive the Holy Spirit = to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이라는 성경에 없는 그릇된 공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공식이 왜 그릇된 것인가에 대하여서 본 저서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