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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신학자들의 주장: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잇에서 거듭났다(회심하였다).”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의 간증
나는 미국 조지아의 인디언들에게 기독교의 본질을 가르치기 위하여 영국을 떠났다. 그러나 2년 4개월 동안(from late 1735 to Feb. 1738) 그곳에서 내가 배운 것은 타인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미국에 간 내가 내 자신이 하나님께 결코 개종하지 아니했다는 사실이다. 1738년 5월 24일 저녁때 나는 올더스게잇의 한 집회에 참석했는데 어떤 이가 마틴 루터가 쓴 서신서들과 로마서의 서문을 읽는 중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믿고 있음을 느꼈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사하시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속하신다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Kenneth J. Collins, ‘A Real Christian-The life of John Wesley’ p.54,62). 1739년 1월 요한 웨슬리는 ‘나의 친구들은 내가 미쳤다고 하였는데 왜냐하면 일년 전까지 나는 그리스천이 아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Randy L. Maddox ‘Aldersgate Reconsidered’ p.73)

 

    요한 웨슬리는 그의 올더스게잇 체험이 있은지 7개월 후에 “나의 친구들은 내가 미쳤다고 하였는데 왜냐하면 일년 전까지 나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고 간증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그는 크리스찬이 되는 것이다. 어릴적 부터 교회를 다니며 성경을 읽고 기도생활을 했다는 사실과 선교사와 목사로 활동했던 요한 웨슬리가 35세 때 올더스게잇 체험을 하고나서야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말한 것은 그가 중생(회심)과 크리스천의 개념에 대하여 확실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는 그의 올더스게잇 체험을 성경 안에서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정립하지 못하여 후계 목사들에게 바르게 전수하는데 실패하였다. 그의 올더스게잇의 체험은 4복음서와 행 1:5, 행 1:8, 행 2:3-4의 기록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면 간결하면서도 조직적으로 정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그의 후계자들은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통한 성령론 정립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Maddox가 말하는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에 대한 감리교회의 표준적 해석
첫째로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the standard interpretation)은 어떤 것인가에 우리들 스스로 이해해야할 필요성이다. 간결하게 설명하면 올더스게 잇은 웨슬리의 회심의 경험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즉 올더스게잇은 요한 웨슬리가 크리스천이 되기 전의 도덕주의자(a pre-Christian moralist)에서 진정한 크리스천(a true Christian believer)으로 완전히 전환되는 주관적인 체험이었다. James Nelson (1988)은 올더스게잇은 웨슬리가 의인이 되고 중생(회심)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했다. (Randy L. Maddox [editor], ‘Aldersgate Reconsidered’ 1990, p.13,16)

 

감리교의 김홍도 목사의 주장: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잇에서 거듭났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잇에서 거듭났고 그 후에 성령충만을 받았다. (김홍도 목사 서울 금란교회 시무, LA 근교에 위치한 세계비젼교회 김재연 목사 시무 2007년 5월 18일 부흥집회 설교 중에서 발췌)  

 

미주한인웨슬리연합회의 주장: “올더스게잇의 체험은 웨슬리의 회심의 날이다.”
회심(Conversion)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첫 단계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회개, 중생, 거듭남, 칭의 같은 원사건의 주관적 측면을 뜻합니다. 죄인인 나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지금 가고 있는 멸망의 길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을 찾아오는 결단적 변화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런던 올더스게잇 거리 어떤 집회에서 구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났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동안 요한 웨슬리 목사님을 따르는 교단들은 매년 5월 24일을 요한 웨슬리의 회심의 날로 기념하여 왔습니다. 그 분이 이 날(수요일) 저녁 8시 45분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 읽는 것을 들을 때에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지고 죄 용서받음과 구원받은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본회는 5월 마지막 주일을 회심강조주간으로 선포하고 이를 온 세계교회로 확산시키는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확신이 희미한 이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획기적인 영적 갱신이 일어나고 전도의 불꽃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려면 회심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 입니다. (미주한인웨슬리연합회 회장: 이정근, 이사: 김인경, 김흥규, 윤길상, 전길성, 총무: 이영기, 회계: 한상신, 고문: 김찬희 2004년 5월 13일 미주 크리스천헤럴드)

 

    이상에서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잇에서 거듭났고,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에 대한 감리교회의 표준적 해석은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은 웨슬리의 회심의 경험의 시간이었고, 진정한 크리스천 신자(a true Christian believer)로 완전히 전환되는 체험이었고, 의인이 되고 중생(회심)하게 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주한인웨슬리연합회는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은 그가 회심하는 날이며 이 회심(Conversion)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첫 단계입니다”라고 하여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잇 이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회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그 이전에는 회개, 중생(거듭남)이 없었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황당한 그릇된 비 성경적인 주장이다.
    요한 웨슬리는 1703년 6월 17(28) 출생하였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목사였다. 그는 학교 다닐 때에 성경을 읽고 아침저녁으로 기도생활을 하였고, 22세 때(1725년)에 안수 받아 집사가 되었고, 3년 후 25세 때(1728)에 안수 받아 목사가 되었고, 32세가 되던 해에는 미국의 인디안들에게 복음전도를 위하여 미국 조지아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2년 4개월간 선교사역을 하였다. 그 후 1738년(35세) 2월에 영국에 돌아와 그해 5월 24일 올더스게잇의 체험 때까지(35세) 여러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다. 이와 같이 선교사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복음사역을 행한 요한 웨슬리가 올더스게잇의 체험 이전까지 “회심하지 아니하였고, 중생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아니한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황당한 주장이다. 또한 요한 웨슬리 자신이 올더스게잇의 체험이전까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역시 어불성설이다. 현대의 동서양의 감리교회를 이끄는 요한 웨슬리의 제자들이 요한 웨슬리의 탄생이 3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회심’(중생)이라고 그릇 해석하여 신학적으로 전혀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의 체험은 4복음서와 행 1:5,8, 행 2:3-4에 기록된 예수님의 제자들의 중생과 구원과 성령세례를 연구하면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게 신학적으로 정립할 수 있다. 전 세계의 현대 신학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중생과 구원과 성령세례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면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의 체험의 연구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베드로는 오순절 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중생하였고 구원을 얻었고,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아 권능있는 사역자로서 복음을 전했다. 베드로와 같이 웨슬리는 올더스게잇 체험 이전에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회심(중생)하였고 구원을 얻었다. 이미 중생한 요한 웨슬리는 올더스게잇에서 베드로와 같이 성령세례(충만)를 체험하여 베드로와 같이 권능있는 복음사역을 행한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올더스게잇은 요한 웨슬리의 오순절”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모든 목회 사역자를 위시하여 모든 크리스천들은 일체의 예외 없이 중생한 후에 웨슬리와 같이 올더스게잇과 같은 성령세례의 체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리해야 웨슬리와 같이 권능있는 복음사역과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웨슬리의 올더스게잇 사건이후 300여년 동안 전 세계의 모든 감리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의 그릇된 해석으로 인한 그릇된 교리로 스스로를 오도하고 있으며 신자들을 오도하고 있으니 이는 분명히 불행이다. 요한 웨슬리의 기독교의 나라, 감리교의 기독교의 나라인 영국은 현재 수많은 교회가 모슬렘에게 넘어가고 있으며, 지난 100년간 9,000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고 현재도 매년 220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있음은 감리교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과 영국 성공회의 소위 유명하다고 하는 그릇된 신학자 John Stott의 성령론 연구의 실패에서 온 것이다. 현재의 미국교회와 한국교회가 세속화의 길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것도 그릇된 성령론으로 인하여 중생과 성령세례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성결교회의 이성주 목사의 요한 웨슬리에 대한 주장
웨슬리는 그의 올더스게잇 체험을 자신의 회심(conversion)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웨슬리가 말하는 회심이란 구원 즉, 죽음에서 생명으로 처음으로 옮겨진 것을 말한다. 웨슬리의 이러한 표현에 대해 대부분의 웨슬리의 연구가들은 반대한다. 왜냐하면 4대째 내려오는 성직자의 가정에서 엄격하고 경건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특히 목사로서 생활을 13년이나 살아온 웨슬리가 그의 나이 35세가 되는 1738년에야 비로소 구원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웨슬리가 그의 일생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한 1725년을 그의 회심이 있던 해로 보기도 한다. 웨슬리가 올더스 게잇의 체험을 자신의 회심 즉, 중생의 체험으로 생각한 것은 웨슬리의 전반적인 사상과 어긋나며 성경말씀에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웨슬리에 있어서 올더스게잇의 체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체험한 성령의 역사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이전에도 이미 구원받은 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까지 받았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도로서 일을 한 것은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이후부터인 것이다.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중심으로 하여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웨슬리의 사역에는 뚜렷한 차이가 보인다. 올더스게잇 이전의 웨슬리가 실패와 번민과 고통의 연속 속에 지냈다면 올더스게잇 이후에는 확신과 승리와 기쁨과 평화가 연속적으로 웨슬리와 함께 했던 것이다. 올더스게잇의 체험이 웨슬리 생애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올더스게잇의 체험은 의심없이 웨슬리가 성령세례를 받는 체험이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신자가 더 높은 차원의 신앙 체험 즉 중생된 신자가 성결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웨슬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고 헌신적이고 능력있는 주의 일꾼이 되었다. 올더스게잇의 체험은 바로 웨슬리의 온전한 성화의 체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보수적인 웨슬리안 신학자들은 성령세례와 온전한 성화를 동일한 신앙 체험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주 목사, ‘조직신학’ p.269-271,274-275)

 

    이상의 기록은 맞는 것과 그릇된 것이 섞여있다. “특히 목사로서 생활을 13년이나 살아온 웨슬리가 그의 나이 35세가 되는 1738년에야 비로소 구원을 받았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올더스게잇의 체험은 의심 없이 웨슬리가 성령세례를 받는 체험이었다”는 것은 바른 주장이다. 또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신자가 더 높은 차원의 신앙 체험 즉 중생된 신자가 성결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라는 주장 가운데 “성령세례란 중생된 신자가 성결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는 것은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행 1:5,8의 기록에 근거하여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신자 즉 중생한 신자가 복음전도를 위한 성령님의 권능을 받는 것”이라고 해야 바른 주장이다. “성령세례란 중생된 신자가 성결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라고 해석해서는 안 되고, “성령세례란 중생한 신자가 복음전도를 위한 권능을 받는 것이다”이어야 한다. “성령세례란 중생된 신자가 성결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성경의 근거는 일체 없다. 이성주 목사는 이상에서와 같이 중생과 성령세례와 성결의 관계를 정확하게 정립하지 못하여 요한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의 체험을 체계화 하는데 실패하였다. 이성주 목사가 저술한 ‘조직신학’은 맞는 부분과 그릇된 부분이 섞어 있으며 성령론 부분에서 중생과 성결, 성령 받음, 성령세례, 성령충만의 관계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 현재의 감리교단은 웨슬리의 올더스게잇의 체험의 연구에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