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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성경에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으면 그는 예수님의 종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모든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글을 보고 설교를 들어보면 성경에 없는 인간들의 말이 무수히 섞여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인간적인 말을 가감하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는 예수님이 종이 절대로 아니다. 상전과 종의 관계에서 종이란 상전이 시킨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만약에 종이란 사람이 상전이 시키지도 않는 말을 하던지 행동을 한다면 그는 절대로 종이 아니다. 만약에 종이란 사람이 상전이 시키지도 않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그는 반드시 해고당 하게 된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인간 세상에서의 기본적인 규범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종이란 사람들이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이나 말을 자기 멋대로 하고 있다. 또한 신자들은 성경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아닌 목회자를 종으로 착각하여 따르고 있다. 성경의 말씀대로 먼저 지키지도 아니 하면서, 성경에 있는 그대로 가르치지 아니 하면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데 이는 언어도단이다. 이런 경우에 그는 절대로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김삼환 목사의 설교 
우리 교회에서는 말 못하지만 여기 오산리기도원에서는 말하겠다. 초신자, 집사 때는 헌금 잘 내더니 부자가 되고 장로가 된 후에는 안 낸다. (김삼환 목사, 서울 명성교회 목사, 1998년 가을 여의도순복음오산리기도원의 설교 중에서 발췌, 예장통합총회장)

 

    김삼환 목사를 위시하여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성경에 있는 그대로 설교하면 오래된 교회의 중진 신자들이 듣기 싫어서 교회를 떠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전해주라고 명령하신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신자들에게 전해주지 않는 것은 주님의 종으로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므로 주님의 종이 아니다. 개척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는 신자가 많이 모이는 교회라고 하여 부러워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교인의 숫자를 늘리는데 신경을 쓰지 말고 먼저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성령세례를 받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 복음을 전하면 그는 주님의 종이며, 이러한 종을 주님께서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신다. 목회자들이 숫자 많은 큰 교회와 웅장한 건물을 만드는데 연연하여 사람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 익숙하게 되어 어느 정도 교회가 성장한 뒤에도 신자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신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신자 숫자를 늘리는 일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하여 교회의 내분으로 심각한 몸살을 않는 교회가 많다. 목회자가 오직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베드로, 바울과 같이 먼저 성령세례를 받고 주님이 가르쳐 준 목회방식대로 목회를 하려고 노력하면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그 목회자를 뒷바라지 해주실 것이다. 목회자가 먼저 성령세례를 받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 먼저 행하고,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감 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면 그 교회는 반드시 성장하며 성정한 후에도 망하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
렘 26:1-1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 초에 여호와께로서 이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법을 행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 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집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으리라 하느뇨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집에서 예레미야에게로 모여 드니라. 유다 방백들 이 일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와서 여호와의 집 새문 어귀에 앉으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방백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죽음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같이 이 성을 쳐서 예언하였느니라.

 

    “예배하러 오는 백성에게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고 그대로 전하라. 그들의 악행으로 재앙이 임하리라”는 예레미야에 대한 설교를 듣고 이를 듣기 싫어서 그를 죽이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성경의 말씀대로 전하지 않고 있다. 성경에는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대충 절반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축복의 말씀만을 전하고 저주의 말씀은 전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하면서 주님의 종이라고 하는데 이는 언어도단이다. 주님의 종은 성경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사울 왕은 제사장 외에는 제사를 드리면 안 된다는 규례를 사무엘 선지자가 늦게 옴으로 백성들이 흩어진다는 이유에서 이를 어김으로 왕권을 박탈당하였다. 사울 왕이 왕권을 박탈당한 사실을 백성들은 모르고 그를 왕으로 추종하였으나 오직 사무엘 선지자만 이를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울 왕을 추종한 많은 군인들은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 왕과 같이 죽임을 당하였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한 말도 감하지 말고 그대로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대로 전하면 신자들이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이유에서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에 신자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종이 절대로 아니다.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렘 26:2-3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 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왜 성경 말씀을 한 말도 감하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렘 26:3에서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그 동안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재앙과 저주를 내리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들이 듣고 혹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려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고 명령하시었다. 여호와의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전하라는 이 명령대로 실천하지 않는 목회자는 예수님의 종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을 경우에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겔 3:16-21  칠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 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 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만약에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을 경우에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목회자를 통하여 선포 되는 재앙의 말씀을 죄인이 듣고 회개하면 죽지 않고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가 하나님의 재앙의 말씀을 선포하지 아니하여 죄인이 회개하지 아니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며, 나아가서 이 책임을 하지 않는 목회자는 그 책임으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성경에 이렇게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 목회자들이 신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씀은 전하지 않고 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저주의 말씀을 전하면 신자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 두려워하여 저주의 말씀은 전하지 않고 축복의 말씀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고 경고하시었다.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사 56:9-11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지 않는 목회자는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이므로 들 짐승을 보내어 삼키게 하겠다”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경고하고 계신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겔 2:6-7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 할지어다.
겔 3:27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 라.
사 58: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12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교회의 교인의 숫자가 많다고 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절대로 말 할 수 없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교회 건물이 크고 교인들의 수도 많이 거느리고 있는 목사가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 사고로 노사상태에서 죽은 경우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복음을 충실히 전하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 죽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 결코 아니시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복음을 충실히 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충성된 종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저주를 내리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교인의 숫자와 교회의 건물에 급급하는 목회자는 하나님이 가증이 여기신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절대 복종하는 목회자를 하나님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교회개척을 시작하고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인도하신다. 목회자 스스로가 먼저 성령세례를 받고 성경말씀대로 실천하며 신자들을 성경말씀대로 기록된 그대로 가르치면 반드시 교회성장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 확실하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6-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바울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복음을 그대로 전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경고하신다. 오늘날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목회와 선교 현장에서 각종 사고, 각종 질병를 당하여 죽는 원인을 갈 1:6-9에서 밝히고 있다. 이들의 사고사는 성경에 기록된 순교가 절대로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순교자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이에 반대하는 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말하지 질병, 교통사고, 비행기 사고, 천재지변 등에 의하여 죽은 경우가 절대로 아니다.

 

조용기 목사의 주장과 그의 실제 행동
설교자는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 전한다면 그러한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인간적인 언변이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설교자는 양무리에게 유익 된 꼴을 찾기 위하여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초장을 불철주야 누비며 살찐 꼴로 풍성하게 맑은 물이 넘치는 목장을 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유익된 것이면 어느 누가 말하든지 가슴을 열어놓고 받아들여 설교자가 먼저 소화시켜본 연후에 양무리에게 먹여야 합니다. (조용기 목사,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1996, p.222,385)

 

    조용기 목사는 이상에서 “유익된 것이면 어느 누가 말하든지 가슴을 열어놓고 받아들여 설교자가 먼저 소화시켜본 연후에 양무리에게 먹여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 조용기 목사 뿐만이 아니라 한국교계에서 이 말대로 설교하고 있는데 이는 저주 받을 인간의 말이지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전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여 하나님만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했다고 간증하고 있다. 이렇게 사역하는 바울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역사하심으로 성령님의 권능으로 표적과 기사, 병자가 치유되며, 죽은 자가 일어나며, 마귀가 쫓겨나므로 그 복음이 2,00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왜 바울에게 나타났던 성령님의 권능의 나타나지 않는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다. 바울처럼 성령세례(충만)를 받고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령세례를 받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그대로 전하였다. 오늘날의 목회자들도 바울처럼 성령세례를 먼저 받고 성경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전하면 성령님께서 반드시 함께 역사해 주실 것이다.

 

히 5:11-14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이 기록은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보고 골라서 먹여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다”라는 뜻이다. 의의 말씀의 경험과 선악의 분별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후에 성령세례 (충만)의 체험을 통하여 얻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말씀은 성령세례(충만)를 받지 못하는 자에 대한 설명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눅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듣기 좋은 설교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고 좋아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듣기 싫은 것을 위시하여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말씀하시었다. 그리하여 바리세인들에게 질투와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종들이 신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듣기 싫어하는 신자들이 분명히 있다. 눅 6:26에서 예수님은 듣기 좋은 설교를 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이러한 목자들을 거짓 선지자로서 이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임을 경고하고 계신다.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신 27:11-26  모세가 당일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수 8:32-35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 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 나도 없었더라.

 

    여호수아는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남녀노소에게 선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모두에게 낭독하였다. 설교나 부흥집회 시에 “이러 이러한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라고 하면 모두 ‘아멘’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라고 하였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가 “이러 이러한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설교하는 목사도 없고, "이러 이러한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할 경우에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교회도 없다. 신 27:11-26을 가르치는 교회는 한 곳도 없다. 바울은 분명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라고 경고하였다. 오늘날 고전 16:22에서 말하는 기록을 그대로 가르치는 교회는 전무한 상태이다.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의 교육에 관한 책이다.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의 교육이란 좋은 말만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책망이란 말은 그릇된 언행을 바로 고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책망이란 분명히 듣기 싫은 것이다. 성경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의 불순종의 언행을 책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듣기 싫은 것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야곱 집에 죄를 외치라고 명령하시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신자들이 듣기 싫은 설교를 절대하지 말고, 부정적인 설교는 절대로 하지 말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설교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성경의 말씀을 거역하는 마귀적인 처사이다. 
    하나님의 종이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신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 사명이다. 이러한 사명에 불순종하면 그는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는 종이다. 하나님의 종이었던 선지자 나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다윗의 간음과 살인죄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이 범죄로 인한 다윗이 받게 될 재앙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만약에 나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다윗이 듣기 싫은 말은 안 해주고 좋은 말만 전해 주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면 신자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이며 저주의 말씀은 전하지 않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 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목회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며 하나님의 종이 아니면 목회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개척을 시도하는 목회자는 물론이고 현재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종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가를 연구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일체 가감하지 말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한다. 언제부터, 어찌하여 한국교계에서 “축복”의 말만 전하고, “저주”의 말은 절대로 전하지 말라는 그릇되고 성경에 없는 마귀의 말이 지배하기 시작했는가? 신구약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한 구절도 가감하지 않고, 축복의 말씀이건 저주의 말씀이건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는 교회는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성경 밖의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분명한 교회이지만 성경 말씀 안에서 볼 때에 이러한 교회는 절대로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한 말씀도 빼지 말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 반드시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러한 교회는 교회도 아니며 그러한 목사는 주님의 종이 절대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