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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성경적인 모임이란 어떤 것인가.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오늘날의 교회의 예배를 위시하여 각종 모임과 집회에서 찬송과 가르치는 말씀과 설교는 있으나 예언, 방언, 방언의 통역 등은 일체 없는데 반드시 이러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왜 이러한 일들이 없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고전 12:13의 그릇된 번역을 맞는 번역로 믿고 착각하여 “모든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그릇 해석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교리를 내세울 수 있는 성경의 구절은 신구약에 한 구절도 없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성령세례를 받으면 예언, 방언, 방언통역, 신유 등의 성령님의 권능의 역사가 교회에 풍성이 나타나게 되고 고전 14:26의 말씀이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

 

왜 예언의 은사가 특별히 중요한가.
고전 14:1-6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전 14:23-25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예언을 하면 불신자들이 교회에 와서 그 예언을 듣고 그들의 마음에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게 된다고 하였다. 불신자들에게 예언을 해주면 하나님이 계심을 믿게 된다는 기록이다. 질병을 가진 불신자를 신유의 은사를 통하여 치료해주면 믿게 되며, 바로 치료함을 받은 자가 소문을 내어 불신자인 병자들을 교회에 데려오게 되어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며, 건강한 불신자인 경우에 그에게 예언을 해주면 그가 하나님을 믿고 불신자들을 교회에 데리고 오게 되어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다는 말씀이다. 오늘날 이러한 성령님의 역사가 교회에 없기 때문에 불신자는 수없이 많아도 교회에 신자들이 모이지 아니한다.
    오늘날 소위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이나 설교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목회자들의 가르치는 설교에 해당되며 설교자는 예언자이다”는 그릇된 해석으로 인하여 복음이 오도되고 있다. 바른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는 것은 마귀이다. 마귀가 그릇된 신학자들의 생각의 배후에 붙어서 성경에 기록된 바른 복음의 전파를 못하게 하고 있다. 

 

민 11:24-30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고하고 백성의 장로 칠십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중으로 돌아왔더라.

 

    고전 14:1-6에서 바울은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고, 민 11:24-30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 신(성령)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예언에 관한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수가성 여인에게 행하신 예수님의 예언
요 4:16-19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 4:28-30,39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신자가 신자를 교회에 데려온다. 양이 양 새끼를 낳는다는 원리이다. 이것이 교회성장의 원리이다. 한 사람에게만 바른 복음이 전파되어도 신자들은 몰려오게 되어 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은 한 여인이 복음전도자가 되어 동네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목회자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예언을 받은 사람이 많은 불신자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이러한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이는 고전 14:23-25에도 기록되어 있다. 마귀의 종인 무당들은 예언의 은사를 마귀에게서 받아서 예언을 하여 그들을 끌어 모아 계속하여 번창해가고 좋은 집에 고급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들이 마귀의 종들이 갖는 예언의 은사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수님, 베드로, 바울이 가졌던 예언의 은사가 오늘날의 종들에게 왜 나타나지 않은가? 성령세례를 통하여 받게 되는 예언의 은사를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고 계신다. 예수님을 믿을 때 일체의 예외 없이 모두 다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라는 그릇된 번역과 그릇된 해석으로 인하여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권능, 성령의 은사, 예언의 은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

 

복음전도에는 왜 표적과 기사가 있어야 하는가.
    목사들이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종들은 말만을 가지고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니 내가 전하는 말은 인간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니 받아 이대로 지켜라”라고 하였는가? 오늘날 주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역자들이 이와 같이 말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성경에는 과연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마 12:38-40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이 말씀은 그 동안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는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는 말씀은 당시에나 현재에나 모두 음란한 세대이다. 따라서 표적을 보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요 4:48에서 예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병자를 고치는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여 믿게 만드셨다. 오늘날에도 이 말씀은 그대로 적용된다.

 

요 20:26-29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는 무슨 말씀인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상처를 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믿었던 도마와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다. 어떻게 하여 예수님을 보지 않고서도 예수님을 보고서야 믿었던 도마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성령세례를 받으면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증거할 수 있다. 따라서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의 뜻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2,0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음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게 된다. 인조 다이아몬드 (man-made diamond)와 천연 다이아몬도(natural diamond)는 하늘과 땅의 차이로 다르며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믿는 믿음은 인조 다이아몬드 (man-made diamond)와 같은 믿음이요, 성령세례를 받고 믿는 믿음은 천연 다이아몬도(natural diamond)와 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