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기독교는 지옥에서의 구원과 질병에서의 구원의 종교이다.
    인간의 죽음과 모든 질병은 죄에서 온 것이므로 예수님은 죽음과 질병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지옥)에서의 구원 + 질병에서의 구원]의 두 가지를 위한 것이었다. 이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 죄의 용서 + 질병 치유]의 두 가지를 반드시 포함하는 도식이어야 한다.

 

요 3:14-17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병)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사 53:4-6은 마 8:17과 벧전 2:24에서 해석되고 있음으로 이 세 구절들을 같이 놓고 같은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 53:4-6; 마 8:17; 벧전 2:24에 대한 ‘헤세드 성경주석’의 해석

사 53:4-6에서 그가 찔리고 상하며 채찍을 맞은 것은 주의 백성들의 죄를 대신 속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종의 고난으로 인해 주의 백성들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되었다. 한편 마태는 이 구절을 병자를 치료하시는 그리스도의 기적을 설명할 때에 적용시킨 적이 있는데(참조, 마 8:17),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즉 병자를 치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은 영혼의 치료와 구원 사역을 실제적인 모습으로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종의 주된 사역은 어디까지나 영혼구원이었던 것이다. 본문이 병자 치료의 사건에 인용 되었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사의 활동과 같은 질병의 치료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베드로는 여기에서 말하는 ‘나음’의 의미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참조, 벧전 2:24), 이는 바로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헤세드 성경주석 ‘이사야’ [하] p.399)

 

기독교는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종교이다.
    예수님은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죽어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인생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또한 예수님은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생긴 질병으로 고통을 받아 평강이 없는 인간들이 질병의 치유를 받아 평강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죄로 인하여 가게 될 지옥에서의 구원의 종교이며, 모든 질병을 고치는 치유의 종교이다. 오늘날의 신학계와 교계에서 죄에서의 구원, 지옥에서의 구원은 가르치며 강조하지만 질병에서의 치유, 질병에서의 구원은 전혀 도외시 하고 있다.
    사 53:4-7, 마 8:17, 벧전 2:24의 말씀에 근거하여 질병에서의 치유가 없는 기독교는 완전한 기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사 53:4-7, 마 8:17, 벧전 2:24의 기록은 [주님의 십자가 = 죄에서의 구원 + 질병에서의 구원]의 두 가지를 위한 것이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이 두가지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죄에서의 구원만이 있는 것으로 잘못 믿어 왔다. 교회는 십자가를 두고 있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란 있을 수 없다. 죄사함의 십자가가 없는 교회, 죄사함의 선포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죄사함의 선포만 있고 신유가 없는 교회는 절름발이 교회이다. 병 고침이 없는 병원은 병원이 아니다. 병 고침이 없는 병원은 병원이 아니듯이 신유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사 53:4-7, 마 8:17, 벧전 2:24에 기록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외면하거나 망각하며 이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곧 신유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상처로, 찢기심으로 우리가 치유를 받았다. 미래에 치유가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현재완료형 곧 현재형의 기록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의 상처를 받으심을 믿으면 치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의 문장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지 못하였나니”의 문장으로 절대로 고칠 수 없다. 예수님의 “저가 채찍에 맞음”(By his wounds)의 사건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You have been healed. We were healed)의 결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의 결과가 없으면 “저가 채찍에 맞음”은 무효가 되어버린다. “저가 채찍에 맞음”은 절대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는 절대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믿으면 일체의 예외 없이 반드시 믿는 자에게 신유가 있어야 한다. 믿는 자가 질병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신구약의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십자가의 신유의 사역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신학교 교수들이나 목회자들에게서 예수님의 신유의 사역을 잘못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잘못 연구하여 잘못 가르침을 받은 것을 바르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유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질병으로 인한 비극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소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의 그릇된 성경해석을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해석이라고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유의 십자가를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성령님께서 베푸시는 신유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한편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사 53:4 -6, 마 8:17, 벧전 2:24의 기록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 53:4-6, 마 8:17, 벧전 2:24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의 모든 죄의 용서와 죄로 인한 질병의 치유를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반대되는 해석은 있을 수 없다. 이상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 죄 사함의 십자가 + 질병치유의 십자가]의 도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 죄 사함의 십자가]만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신유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아야 한다.

(1) 십자가 밑에 나오면 모든 죄는 일체의 예외 없이 용서함을 받는다. 성령 훼방죄를 제외하고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죄는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2) 모든 질병은 일체의 예외 없이 죄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나와 회개의 기도를 하면 모든 질병은 일체의 예외 없이 반드시 치유함을 받게 된다.
(3) 오늘날의 교회에 죄 용서함의 십자가는 있지만 질병치료의 십자가는 일체 없다. 환자의 치유 없는 병원은 병원이 아니듯이 질병치유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세상병원에서는 30%의 환자가 치유된다고 하지만 교회에서는 사 53:4-6, 마 8:17, 벧전 2:24 에 근거하여 100%의 환자가 치유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4)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By his wounds you have been healed) 라는 말씀은 ‘현재완료형의 문장’으로 십자가 밑에 있는 자의 질병은 현재 치유함을 받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 
(5)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몸에 질병을 가지고 있게 된 원인은 벧후 3:15-16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의 기록에 근거하여 성경에 기록된 신유론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일단 걸렸다면 반드시 치유 받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오늘날의 교회에 죄 용서함의 십자가는 있지만 질병치료의 십자가는 일체 없다. 사 53:4-7, 마 8:17, 벧전 2:24의 기록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원죄와 모든 자범 죄로 인하여 생긴 모든 질병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질병은 일체의 예외 없이 반드시 치유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질병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살인죄를 위시하여 사람이 지은 모든 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회개하면 일체의 예외 없이 용서함을 받는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죄는 없다. 모든 질병은 일체의 예외 없이 죄에서 왔으므로 예수님께 나아와 그 동안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면 반드시 치료해주시고 반드시 치료함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치료함을 받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를 헛된 것으로 만들게 된다. 따라서 모든 질병은 십자가 아래에서 일체의 예외 없이 반드시 치료함을 받아야 한다.

 

김의환 목사의 주장
성도의 몸을 다룸에 있어서 주어진 교훈 중에 순종을 조건으로 병에서 면제될 것이라는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구원 받은 성도에게 불순종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병석에서 고생하는 것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우리는 신자의 병 낫기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그 병을 통해서 신자의 영적인 병을 고치시려는 섭리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의 뜻대로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 욕심으로 구하는 인간의 요구가 다 응답되는 경우의 비극은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떤 병은 성도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허락된 것이므로 당장에 고침 받기를 구해야 되는 것만은 아니다. 욥의 병이나 사도 바울의 병은 당장 고침 받지 못할 병이었고 오히려 그 병을 통하여 그들에게 영적 유익을 얻게 하였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모든 병자를 다 고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면 직접 팔레스틴의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었을 것이다. (김의환 목사, ‘성경적 축복관’ p.73-75)

 

    이상의 “성도의 몸을 다룸에 있어서 주어진 교훈 중에 순종을 조건으로 병에서 면제될 것이라는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의 주장은 출 15:26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 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는 말씀과 신명기 28의 말씀을 읽어보지도 않고 글을 썼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또한 “구원 받은 성도에게 불순종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병석에서 고생하는 것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는 주장도 출 15:26의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또한 “우리는 신자의 병 낫기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그 병을 통해서 신자의 영적인 병을 고치시려는 섭리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주장도 그릇된 것이다. 출 15:26과 신명기 28의 기록에 의하면 모든 질병은 하나님의 명령의 불순종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질병은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면 반드시 치유 받을 수 있다. 시 103:3의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은 모든 병이 고침을 받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모든 병자를 다 고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면 직접 팔레스틴의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마 8:17의 “우리 연약한 것(질병)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는 뜻을 모르는 데서 온 황당한 주장이다. 또한 김의환 목사의 주장은 마 9:35의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라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한 것이다. 팔레스틴의 모든 병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병든 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시는 분임을 믿고 그에게 나아왔다면 그들은 모두 치료 받을 수 있었다.
 
김동길 교수의 간증
예수님을 잘 믿는데 죽을 병에 걸려 죽는 것을 보았다. 이를 보고 느낀 것은 ‘저렇게 살다가 가기도 하는구나’라고 은혜를 받는다. (2000년 2월 20일 LA 라디오코리아의 김동길 교수(교회장로)의 방송 중에서 발췌)

 

    “예수님을 잘 믿는데 죽을 병에 걸려 죽는다”는 말은 성경에서 지지를 받을 수 없고 이러한 실례가 성경에 일체 없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말은 인간의 눈으로 본 것이며,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에 무슨 죄가 있기 때문에 죽을 병으로 치신 것이며, 병든 자 본인이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목숨을 거두어 가신 것이다. “예수님을 잘 믿는데 죽을 병에 걸려 죽는 것을 보고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죽을 병에 걸렸으나 예수님께 나아와 회개하고 기도했더니 치료함을 받는 것을 보고 은혜를 받았다”라고 말해야 앞뒤의 말이 맞는 말이다.
    현대교회에서 질병의 문제를 성경 안에서 전혀 정립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김동길 장로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신학교 교수,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신자, 선교사들이 계속하여 질병의 고통을 받고 있으며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병든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김동길 장로와 같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