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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인생)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상에 기록된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인생)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3-5)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어 생명을 죽음에서 건지시고 독수리 같이 새롭게 만드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질병으로 고통과 고난을 받으며 또한 죽어가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젊은 목사, 선교사, 전도사가 질병과 사고로 인하여 죽을 경우에 그의 젊은 아내는 과부가 되고, 어린 자녀들은 고아가 되고, 그의 부모는 의지할 곳이 없어서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섭리이며 뜻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따라서 이러한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귀의 말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질병과 각종의 사고로 인하여 죽어가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아래의 말씀이 답변하고 있다. 

 

사 27:11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자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자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 4:14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11:3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상의 호 4:6의 말씀에 “백성이 지각이 없어 깨닫지 못함으로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하나님께서 치유의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고 베풀지 못하고 계신다”는 기록이 나온다.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질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한편 죽어가고 있다.


존 칼빈의 주장: “사도시대의 신유의 은사는 사라졌다.”
주님께서 얼마 동안 있기를 원하셨던 다른 기적들과 같이 신유의 은사는 복음의 새로운 전파가 영원히 경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사라졌다. (John Calvin, 기독교 강요, IV, 19, 18.) (The gift of healing, like the rest of the miracles, which the Lord willed to be brought forth for a time, has vanished away in order to make the new preaching of the gospel marvelous forever. (John Calvin, ‘기독교 강요’ IV, 19, 18)

 

    존 칼빈(1509-1564)의 주장대로 신유의 은사가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던 초대교회에는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없어졌다고 한다면 마 8:17의 “우리 연약한 것(질병)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는 기록은 초대교회의 신자들에게만 적용되고 오늘날의 신자들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마 8:17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있게 될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질병의 치유를 위한 신유의 은사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신유의 은사가 사도시대 후에는 없어졌다고 주장한 존 칼빈은 각종 질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54세를 일기로 죽었다.

 

존 칼빈이 저지른 죄악 
장로교의 창시자 존 칼빈은 아버지를 때린 어린 소년에게 교수형을 내렸고, 자신의 교리를 비방한 쿠르트에게는 반역과 불경죄로 교수형에 처했다. 그는 자기의 견해와 반대되는 뜻을 표시한 사람들을 가차 없이 추방하거나 교수형에 처했다. 세비투스도 칼빈과 다른 견해를 의논하기 위하여 프랑스에서 제네바로 왔지만 곧 체포되어 화형 당했다. 칼빈은 자기의 성만찬 예식에 대해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했으며 자기의 설교를 듣고 신통치 않다고 말하는 시민들에게는 3일간 빵을 먹지 못하게 하고 물도 마실 수 없게 하였다. 칼빈을 제네바로 데리고 갔던 피에르 아미는 약혼식에 그의 약혼녀와 춤을 춘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으며 훗날 그의 약혼녀는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했다. 매주 일요일과 수요일에는 모든 교인들은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당시 경찰들은 교인들이 그 의무를 이행하는지를 살피기 위해 예배시간에 거리, 상점 및 가가 호호를 방문하기도 했다. 반면 예배시간 이외에 교회에 가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폴임 박사의 ‘상식기행’ 2006년 4월 5일 미주 중앙일보)
 
    예수님은 2,000여년 전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오늘날에도 모든 죄를 가지고 십자가 밑에 오면 모든 죄는 반드시 용서함을 받는다. 이와 마찬 가지로 질병에 걸린 모든 사람들이 마 8:17의 “우리 연약한 것(질병)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는 사실을 믿고 십자가 밑으로 나오면 모든 질병에서 일체의 예외가 없이 반드시 치료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믿는 자가 질병에서 아직까지 치유함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예수님의 “저가 채찍에 맞음”(by his wound)을 무효로 만드는 처사이다. “신유의 기적이 없으면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성경의 기록은 이상의 사 53: 4-7, 마 8:17, 벧전 2:24, 고전 1:17-18 이다.

 

김의환 목사의 주장: “신유의 은사는 현재에도 존재한다.”
말씀중심의 부흥회, 그 다음에 병자 낫는 것은 부수적으로 강조하는 그런 부흥회라면 건전한 부흥회 인도의 태도이다. 부흥회는 사경중심으로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 수 있는 은사를 받은 부흥사는 병자를 고치게 하는 것, 이것이 좋다. (김의환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 주최 제5회 국제신학 학술세미나 자료집 1997년 8월호 p.87)

 

서철원 목사: “신유의 은사는 사도시대로 그쳤다.”
치병의 은사는 특별하고 임시적 은사이므로 복음사역의 정착과 성장으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므로 사라졌다. 치병의 은사는 신약시대는 사도들에게 국한 되었고 전도 자 빌립이 병고치는 일도 행하여(행 8:7-8) 최초의 전도자들이 치병의 은사도 행했음을 알 수 있지만(행 6:8-9), 지속적 치병의 기록은 없다. 사도들은 교회의 설립자이고 계시의 기관이며 복음전파자들이었으므로 상당기간 신유의 은사를 행하였다. 하나님은 교회를 바로 세우고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사도들로 여러 기적과 신유의 은사를 행하게 하셨다. 그들은 기도와 안수로 그들의 사역기간에는 신유은사의 소유자로 일하여 기적을 행하고 병을 낫게 하였다. 그러나 복음전파의 사역을 쉬거나 제한당하고 있을 때는 이 은사를 활용하지 못하였다(딤전 5:23). 사도 바울의 경우는 마지막 선교가 이루어진 멜리데 섬에서의 활동까지는 치병의 은사가 행사되었다. 그 후에는 세계에서 전도하는 일이 진행되지 못하였으므로 치병의 기적들을 행했다는 보고가 없다. 따라서 신유은사자는 사도들의 활동이 끝남과 함께 중지되었다. 신유의 은사도 교회설립과 복음의 확증을 위해 사도들에게 주어진 특별 은사임으로 사도들의 죽음으로 끝났다. 또 사도들에 의해 성경기록이 완료됨으로 이 신유은사의 지속적 행사도 계속될 필요가 전혀 없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신유은사의 소유자로서 치병의 능력을 행하는 것은 사도들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그 후 선교지역에서 복음이 처음 증거 될 때 치병의 기적들이 발생하였음이 보고되어 왔다. 그 경우는 신유의 은사자에 의한 치병이라기보다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도시대 이후에는 믿음의 기도로 병들이 낫는 것이 허락되었다. 야고보 사도의 가르침대로 믿음과 기도로 신자들의 병이 나음을 얻게 된다(약 5:14-16). 그리스도인들의 간절한 기도를 따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병을 고치신다. 지속적인 신유은사의 행사는 더 이상 일정한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안 했다. 기도를 통하여, 많은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초자연적 치유가 일어난다. 그러나 신유의 은사가 어떤 특정인들에게 주어져서 임의로 병을 고치고 지속적으로 그 은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기도로 병자들을 고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서철원 목사, ‘성령신학’ p.219-221)
현금 세계적으로 신유은사자들로 지목된 몇 사람들은 신유의 은사를 저장 받아 마술적 지팡이를 휘두르듯 병자들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사도시대로 그쳤다. 부흥운동들의 초기에 신유의 예들이 더러 발생하였지만 계속해서 병을 고치는 마술사로 남은 사람은 없다. (서철원 목사, ‘성령신학’ p.219)

 

    한국장로교 합동 측의 총회신학교 총장 김의환 목사와 같은 신학교 교수인 서철원 목사의 주장은 완전히 상반 되는 주장이다. 총장 김의환 목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 수 있는 은사를 받은 부흥사는 병자를 고치게 하는 것, 이것이 좋다”고 하여 오늘날에도 성경에 기록된 사도시대의 신유은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주장하고 있다. 한편 서철원 목사는 “신유의 은사를 저장 받아 마술적 지팡이를 휘두르듯 병자들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사도시대로 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신학교 내에서 총장과 교수의 신유론이 이렇게 완전히 다른데, 그 신학교의 신학생들이나 그 교단의 목회자들은 누구의 가르침을 성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러한 사실은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신학계와 교계에서 신유론이 전혀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의 자료이다. 결론적으로 김의환 목사의 주장은 바른 것이며, 서철원 목사의 주장은 전혀 비 성경적인 것이다. 또한 서철원 목사는 “현금 세계적으로 신유은사자들로 지목된 몇 사람들은 신유의 은사를 저장 받아 마술적 지팡이를 휘두르듯 병자들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사도시대로 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사도시대의 사도들은 신유의 은사를 저장 받아 마술적 지팡이를 휘두르듯 병자들을 낫게 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성경을 가르치는 신학교 교수로서 있을 수 없는 망언이다. 한편 김의환 목사의 “말씀중심의 부흥회, 그 다음에 병자 낫는 것은 부수적으로 강조하는 그런 부흥회라면 건전한 부흥회 인도의 태도이다”는 주장은 고전 1:17-18에 위배되는 주장이다. 

 

고전 1:17-18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상의 기록을 통하여 “신유의 기적이 없으면 기독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 신유의 기적이 없이 말로만의 복음전도는 절대로 복음이 아니며 말로만의 복음전도는 주님의 십자가를 헛것으로 만드는 처사임을 성경은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말씀선포와 신유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님의 경우와 같이 말씀전도를 하시기 전에 신유가 먼저 있던지, 또는 말씀이 먼저이고 신유가 그 다음이든지간에 말씀과 신유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말씀전도만 있고 신유가 없는 부흥집회는 결코 성경적인 바른 집회가 아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KJV   For the preaching of the cross is to them that perish foolishness; but unto us which are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이 말씀을 간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십자가의 말씀은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다”(The preaching [logos] of the cross is the power of God to us who are saved)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말씀이 선포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야 된다는 뜻이다. 십자가의 말씀이 선포되었는데 권능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교회를 개척하던지, 교회를 이미 성장시켰든지, 선교사역을 하는 누구를 막론하고 말씀의 사역자들은 이 말씀을 부여잡고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도록 예수님에게 매달려야 한다. 병자가 있는데 사역자가 질병의 치유를 외면하고 말로만의 설교를 통하여 “믿으면 구원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언어도단이라는 사실을 고전 1:17-18의 성경구절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너희가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겔 34:4)
    이 세상에는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건강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또한 질병에 신음하는 신자들보다 건강한 신자들이 훨씬 많으며 질병에 걸린 목회자들보다 질병에 걸리지 않은 목회자들이 훨씬 많다. 그리하여 건강한 사람들은 질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목회자의 경우에 목회자는 건강하고 신자가 질병으로 고생하는데 대하여 목회자 자신의 질병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 교계에서 신유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아니하며 성경에 기록된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한국에 성경이 들어온지 100여년이 넘는 오늘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질병에 걸렸을 경우에 그것도 치유 불가능한 암과 같은 질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그의 인생은 끝난 것으로 생각하여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인생의 삶에서 불치의 질병보다 더 큰 심각한 문제는 없다. 목회자들은 자신은 건강하다는 이유에서 심각한 문제인 질병에 대하여 외면하고 있다. 그리하여 각 교단의 목회자들을 위한 수많은 각종 제목의 세미나에 “질병의 원인과 치유”에 대한 세미나는 일체 없다.
    많은 목회자들이 “죽으면 천국가는 것이 큰 문제이지 질병을 치료받고 못 받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 53:4-7, 마 8:17, 벧전 2:24, 고전 1:17-18에 기록된 예수님의 십자가란 바로 질병의 치유를 반드시 포함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마귀의 주장이다. 성경은 목자와 양의 질병, 목자와 신자의 질병의 문제에 대하여 에스겔 34장에서 다음과 같이 심각하게 다루고 있으며, 신유를 외면하는 목자들에게 경고를 발하고 계신다.

 
겔 34:1-10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 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 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목자가 병든 양을 치료 해주지 않음으로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라고 경고하신다. 목자는 병든 양 무리를 반드시 치료해주라는 명령의 말씀이다. 오늘날 이러한 명령이 성경에 있는 줄도 모르는 목자가 허다하며 신학교에서 이런 내용이 있는 것을 가르치지 않음으로 이 명령에 불순종하는 목자가 허다하다. 이에 대하여 혹자는 “병든 양을 치료해주지 아니해도 수많은 건강한 양들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도 회개할 기회를 연장해주고 계신다. 목자는 반드시 병든 양을 치료해주어야 한다. 목자장 되신 예수님께서 목자들에게 병든 양들을 치료해주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고 양들을 치료해주라는 분이 절대로 아니다. 신구약성경은 예수님이 기록한 영혼구원과 동시에 질병치유를 위한 교과서이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옥한흠 목사와 하용조 목사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된 질병치유에 관하여 연구를 전혀 소홀히 하여 일찍 죽임을 당하였다.  여기에 반론이 있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은 옥한흠 목사와 하용조 목사의 신유론에 관한 강의와 설교를 직접 자세히 들어보고 반론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