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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질병의 원인

요 9:1-8에 대한 베이커 성경주석의 해석
우리 주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라는 말씀에서 그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인들이 아니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롬 3:23). 이 특별 한 재앙이 특별한 범죄나 죄의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다. 고난에는 특별한 죄의 직접적인 결과로써 야기되는 고난과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혜로운 목적들과 자신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그 자신의 백성들에게 임하도록 허용하는 환난이라는 두 가지 종류가 있음에 틀림없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죄가 그의 소경됨의 원인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고난은 항상 고난 받고 있는 사람의 죄나 죄과 때문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난은 그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인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진전 시키고자 하는 위대한 목적이 없이는, 또한 고난 받는 자들의 유익을 위한 방식이 아니면 결코 인간들에게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 인간들에게 고난을 가져다 주는 이러한 영광된 의도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속에 표현되어 있다. (베이 커 성경주석 ‘요한복음’ [상] p.532,539,541-2)

 

요 9:1-8에 대한 레마 성경주석의 해석
주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불행, 곧 인간의 고난이 제자들이 당연하듯이 생각하고 있는 죄 때문에만은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이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확고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고난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생각을 수정할 때가 왔습니다. 고난이 죄의 원인으로 기인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알 수 없는 고난의 시련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놀라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진리가 슬픔과 절망에 얽매인 자를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본문 3절 끝부분에서 주님은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할렐루야!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일찍이 하나님의 섭리가 계셨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해주시는 분인지를 나타내주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소경이 고침 받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메시야의 표적으로 예언되어 있을 뿐입니다(참조, 마 11:5).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이 눈을 뜹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이제 예수님의 손길에 의해서 눈이 떠진다면 이는 메시야가 오셨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불행, 그의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증거를 위해 소경의 고난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성도의 고난을 통해 지금도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영광을 얻으시려 한다면 그 누가 반대하며 그 누가 실망만 할 것입니까? 고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시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레마 성경주석 ‘요 한복음’ p.315)
 
    여기에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일찍이 하나님의 섭리가 계셨다. 그의 불행, 그의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증거를 위해 소경의 고난이 필요 했던 것입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죄가 없는데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이러한 섭리에 의해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예수님을 만나 뵙고 눈이 뜨임을 받았다고 한다면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이 각종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왜 치료의 역사,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학계와 교계의 요 9:1-8의 잘못된 해석으로 성도들의 각종 질병이 치유 받지 못하고 있다.

 

요 9:1-8에 대한 존 윔버의 해석
신약에서는 구약에서와는 달리 질병들 가운데 극히 소수의 경우만이 개인의 습관적인 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들 자신의 죄로 인하여 질병이 초래될 수도 있으나 반드시 모든 경우에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질병은 대체로 사단에 의하여 생겨난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불순종과 질병의 관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욥기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실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고 말씀하셨다. 의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사단의 공세에 의해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 신약의 가르침이다. (존 윔버, ‘능력 치유’ p.84) 

 

요 9:1-8에 대한 박윤선 목사의 해석
나면서 소경된 자의 그 소경된 원인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 함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무의 죄의 문제도 따지지 않으셨다. 그는 그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나실 것을 지적하였다. 인간의 지병이나 불행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보아 확실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본인의 죄악으로 말미암지 않는 불행이나 고통도 있으니 그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답변에서 그런 의미를 밝히신다. 3절 말씀은 마치 나면서 소경된 것이 하나님의 하실 일을 위하여 계획된 불행인듯이 가르 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사람의 불행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는 의미까지는 아니다. 그것은 그 불행에 대하여 이러니 저러니 이론을 붙이는 것보다 불행을 상대하고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다 행한 일들만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는 인간의 불행을 고쳐서 복이 되게도 하시는 사랑과 능력을 가지신다. (박윤선 목사, ‘성경주석 요한복음’ p.301-302)

 

요 9:1-8에 대한 배상길 목사의 해석
그 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낳을 때부터 소경된 자가 부모의 죄 입니까. 그의 죄 입니까. 그러나 누구의 죄도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소경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했을 때 그것이 죽을 병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결국 죽었지만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때때로 병을 치유 받을 수 있는데 그 병을 치유 받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숭의교회[이호문 목사] 발행, ‘목회와 교회성장’ [제1집] 배상길 목사의 글, p.67)

 

요 9:1-8에 대한 김의환 목사의 해석
병은 왜 생기는가? 병은 반드시 죄에 대한 벌로 보아야 하는가? 병은 반드시 죄벌로만 볼 수는 없다. 길가의 소경을 보고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니까, 그 부모이오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대답 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다. (김의환 목사, ‘성경적 축복관’ p.70-71)

 

요 9:1-8에 대한 ‘NIV 한영해설성경’의 주석
질병이 언제나 죄의 결과라는 생각을 예수님은 부정했다(요 9:3). (NIV 한영해설성경, 편찬책임 이국진 목사, 1997)

 

요 9:1-8에 대한 조용기 목사의 해석
여기에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소경이나 그의 부모가 모두 죄 없는 의인이라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가 소경으로 난 것은 그 렇게 될만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치료하여 보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그를 선천적인 소경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질병에 걸리는 원인과 그 통로는 다양하다. 그리고 대부분 질병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징계로,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질병을 사용하십니다. 질병의 원인을 알아 보는 것도 무시할 일은 아니지만, 그 보다도 중요한 일은 그 질병을 치료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입니다. (조용기 목사, ‘요한복음 강해’ [상] 1997, p.256-261)  * 한국의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의 요 9:1-8의 해석도 이상의  사역자들이 주장한대로 그 범위를 넘어서지 않고 해석하고 있다. (자료:온누리교회 CGN TV에서 하용조 목사가 죽은 후에도 계속하여 방송을 하고 있다.)

 

요 9:1-8의 베이커 성경주석, 레마 성경주석, 존 윔버, 박윤선 목사, 배상길 목사, 김의환 목사, NIV 한영해설성경, 조용기 목사의 해석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왜 그릇된 해석인가?

요 9:1-8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요 9:1-8을 근거로 하여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 구절을 제대로 한번 읽어 보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글을 쓴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 구절에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 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었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결코 말씀하지 아니하시었다. 요 9:1-8은 난해구절인데 이 구절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면 신유론의 정립은 전혀 불가능하게 된다. 한국을 위시하여 전 세계의 현대 신학계에서 이 구절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신유론의 정립에 실패하였다.
    “소경이 된 이유가 본인이나 부모의 죄가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 내고자 하심이니라”의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이 안 된다. 즉 “이 소경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 곧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죄도 없는 사람을 날 때부터 소경이 되게 했다”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요 9:1-8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제까지의 성경은 “모든 질병은 죄의 결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사실에 근거하여 이 사람이 소경이 된 원인은 본인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라면 아담의 원죄에서 온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는 기록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묻는 질문의 요지는 “이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본인이나 부모의 자범 죄에서 온 것이냐”의 질문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히 “소경이 된 이유가 본인이나 부모의 죄가 아니다. 즉 부모나 본인의 자범 죄가 아니다”라는 말씀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종류는 원죄와 자범죄의 두 가지이다. 질병이 자범죄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원죄에서 온 것이다. 아담의 원죄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서 왔고, 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아담과 그의 자손 된 모든 인류에게 저주와 질병과 죽음이 오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 소경된 본인을 포함하여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씻는다”고 하여 눈이 뜨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경 밖의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일반 상식에 어긋나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경은 예수님의 말도 안 되는 행동과 예수님의 “씻으라” 는 명령에 아무런 이유를 전혀 달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여 무조건 실로암에 가서 무조건 씻었더니 치료함을 받은 것이다. “소경이 무조건 순종했더니 치유되었다”라는 말은 “아담이 무조건 불순종했더니 저주가 왔다”는 말과 전혀 같은 맥락의 말이다. 즉 아담의 무조건 불순종의 원죄에서 소경이 되는 저주가 왔는데 이 소경이 무조건 순종했더니 저주가 변하여 눈을 뜨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모든 질병은 아담이 지은 원죄와 그리고 질병에 걸린 자의 자범죄에서 왔다. 하나님은 아담의 원죄에서 온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는 분이다. 이러한 뜻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이다.
 
민수기, 신명기, 예레미아에서 말하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질병의 원인
민 14: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신 4:40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신 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렘 32:18  주는 은혜를 천만이에게 베푸시며 아비의 죄악을 그 후 자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요 9:1-8에 “예수께서 길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죄 없는 자를 소경으로 만드시는 분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 절대로 아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민 14:18, 신 4:40, 신 5:9, 렘 32:18에 아비의 죄악을 그 후 자손의 품에 갚으시오며,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였다. 날 때부터 소경된 것이 본인이나 그 부모의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들 성경의 기록에 근거하여 그 부모의 부모의 죄, 소경된 자의 삼사대 위의 조상, 할아버지의 죄에서 온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석하지 아니한다면 민 14:18, 신 4:40, 신 5:9, 렘 32:18의 말씀은 그릇된 말씀이 되어 버린다. 다시 말하여 요 9:1-8은 이상의 말씀에 근거하여 해석해야 모순이 없게 된다.
 
누가 소경이 되게 하였는가?
출 4: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상의 기록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벙어리, 귀머거리, 눈 밝은 자, 또는 소경이 되게 하시였다”고 하였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여 질병의 저주를 내리시는 분일 수가 있는가? 신명기 28장에 분명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을 내리시고, 불순종하면 모든 저주와 질병을 내리시는 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의 불순종은 원죄와 자범죄를 모두 포함한다. 모든 질병은 원죄와 자범죄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요 9:1- 8의 소경은 원죄에서 온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현재의 불신자와 신자들의 각종 저주와 각종 질병은 원죄와 자범죄에서 온 것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불신자와 신자들은 성경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면 일체의 예외 없이 완전히 치료함을 받고 저주에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이 저주에서 구원을 받는 방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오셨고, 승천하신 후에는 다시 성령님으로 오시어 성경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고 계신다. 이러한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목회자에게 많은 신자를 보내 주시어 교회를 성장하게 하시며, 이러한 교회를 통하여 바른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들은 모든 저주와 질병에서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수명을 살지 못하고 일찍 질병으로 죽는다든지, 질병으로 고통가운데 생활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절대로 하나님의 뜻도 섭리도 아니다. 또한 의식주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 안으로 들어와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