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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사로의 질병의 원인
베이커 성경주석의 해석
병든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베이커 성경주석 ‘요한복 음’ [하] p.24)


    이상의 “병든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요 11장에 일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그릇된 주장하는 것은 이 구절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요 11:1-4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요 11:39-44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외형으로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죄 없는 나사로를 병들어 죽게 하시고, 죽은 후에 살려주어 그와 그의 누이들과 그의 살아남을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기를 원하시는 그런 분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처사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이러한 일을 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을 이러한 분으로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처사이다.


요 11:1-4에 대한 대전맹인학교 송권 교장의 해석
세 살 되던 해, 독한 약을 드신 어머니의 젖을 빨았던 것이 실명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실명을 하게 되었지요. 1951년 여름인가? 동네에 맹인이 구걸을 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동네 어른들이 밥을 주기는커녕 ‘맹인이 된 것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 죄 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며 길 안내까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어요. 그리고 며칠 후에 ‘왕중 왕’이란 영화에서 ‘제가 맹인이 된 것은 나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려함 입니다’라는 대사를 들었습니다. 가슴이 묵직해 오더군요. 그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송권 교장, 전 연세대 총장 송자의 친 동생, 우먼센스 1999년 6월호 미주판)

 

    송권 씨의 말대로 “제가 맹인이 된 것은 나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려함 입니다”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 하나님은 세 살된 어린 아이를 맹인이 되게 하여 고쳐주시지도 않고, 맹인이 된 그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란 말인가?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그릇된 처사이다.
    나사로가 죄 지은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가 병들어 죽게 하시고, 죽은 그를 다시 살려줌으로서 그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다. 한국에 놀부와 흥부라는 이야기가 있다. 흥부라는 동생은 다리가 다친 제비를 우연히 접하게 되어 불쌍하여 그의 다리를 싸메어 고쳐줌으로, 그 제비가 그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복덩어리 호박씨를 물어다 주어 심게 하여 큰 복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놀부라는 형은 그도 복덩어리 호박을 얻기 위하여 한 제비의 다리를 일부러 부려 뜨려 그것을 싸메어 고쳐줌으로 그 제비를 통하여 복을 받으려고 했는데, 복을 받기는커녕 재앙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죄가 없는 나사로를 병들어 죽게 하여 무덤에 장사지내게 한 후에 살려줌으로 영광을 얻으셨다고 한다면 이러한 처사는 마치 놀부와 같은 하나님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요 11:4를 문자적으로만 보고 “나사로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라고 해석하면 이와 같이 어불성설의 말이 되어 버린다. 분명한 것은 위의 성경에는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이유에 대하여 일체 말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나사로의 죽을 병이든 이유에 대하여 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사로의 병든 이유에 대하여서는 논쟁할 수 없다. 또한 창세기 48:1에 야곱이 병들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의 기록을 통해서는 야곱이 병든 이유를 절대로 논할 수 없다. 열왕기하 13:14에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나사로와 야곱의 경우와 같이 이 기록을 통해서는 엘리사가 병든 이유를 절대로 논할 수 없다.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이 기록에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을 병이든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가 비록 죽을지라도 다시 살려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체험한 나사로, 그의 누이들인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직접 목격한 사람 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양을 드릴 것이므로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게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은 질병의 원인은 말씀하시 않으시고 죽은 나사로가 하나님의 살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결과만을 설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받기 위하여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나사로를 병들어 죽게 한 후에 다시 살려주어 영광을 얻으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을 놀부와 같은 불의한 하나님으로 만드는 처사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원죄도 없고 자범죄도 없는 세 살짜리 어린이를 맹인으로 만들어 고쳐주시지 않고 죽을 때까지 계속하여 맹인으로 일생을 살게 하시어 그에게서 영광을 얻으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천부당만부당한 그릇 된 처사이다.
    만약에 맹인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 저를 맹인이 되게 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한다면 이런 기도가 말이나 되는 기도인가? 이러한 기도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맹인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아담의 원죄로 제가 저주를 받아 맹인이 된 것입니까? 혹은 우리 부모님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그 저주로 제가 맹인이 된 것입니까? 3살 때 어머니의 젖을 먹다가 봉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어린 제가 이렇게 맹인이 된 이유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 제가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영접하오며, 하나님을 저의 영의 아버지로 영접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저를 살려주옵소서. 거지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하시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를 만병통치의 의사로 모십니다. 그들에게 베푸시었던 은혜를 저에게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눈을 뜨게 해주시면, 저의 일생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겠고, 저의 눈을 뜨게 하신 구원의 복음, 기적의 복음, 신유의 복음, 영광의 복음을 저와 같은 맹인들에게 전하여 그들도 저와 같이 치유함을 받도록 전도하겠으니 저를 치료해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질병의 치유를 위한 믿음의 기도이며, 바로 이것이 요 11:1-4에 대한 바른 해석이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불퇴진의 기도를 하면 치료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소경 바디메오는 예수님께 외쳤더니 치료해주시었다. 바디메오의 눈은 뜨게 해주시고 오늘의 소경의 눈은 뜨게 해주시지 아니 한다면 이는 말이 안 된다. 2,000 년전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어 반드시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모든 질병은 아담의 원죄에서, 또는 선조나 부모의 죄에서, 또는 본인의 자범죄에서 온 것임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