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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4:13-15은 바울의 질병이 치유되었음을 확증한다.
갈 4:13-15  내가 처음에(proteros) 육체의 약함(astheneia)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 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 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NIV   As you know, it was because of an illness that I first preached the gospel to you.
KJV   Ye know how through infirmity of the flesh I preached the gospel unto you at the first.
NAS  but you know that it was because of a bodily illness that I preached the gospel to you the first time.

 

    고후 12:9과 갈 4:13에 한글로 “약함”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똑같은 ‘astheneia’이다. 갈 4:13의 ‘astheneia’를 한글로 “육체의 약함”으로, 영어로 ‘an illness (NIV), infirmity of the flesh (KJV), a bodily illness’(NAS)로 번역하였다. 갈 4:13의 헬라어 'proteros'는 영어로 'before, prior, previous, former, first'이며 이는 “처음에, 전에”의 뜻이다. 갈 4:13의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질병)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를 해석하면 고후 12:1-10에서 바울이 치료함을 받았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진다. 갈라디아의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편지를 쓰기 전에 바울은 질병이 있는 상태에서 갈라디아의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쓰는 지금에는 질병이 치료된 것을 밝히는 것이다. 만약에 전에도 질병이 있는 상태에서 복음을 전했듯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에도 질병이 있다고 결코 해석할 수는 없다. 갈 4:13-15에서 바울은 “전에 그러했었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 “전에 그러 했듯이 지금도 그러하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전에 그러 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해석해야 한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는 말은 바울이 “처음에, 전에” 육체의 약함(질병)의 상태에서 복음을 전했듯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질병의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 따라서 고후 12:1-10에서 바울의 가시로 인한 육체의 질병이 치료 받았음을 갈 4:13-15를 통하여 밝히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히 12:5-13을 해석해야 고후 12:1-10이 해석된다.
    고후 12:1-10을 바르게 번역하고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면 신유론은 절대로 정립할 수 없다. 이 구절과 갈 4:13-15만을 가지고서는 난해하기 때문에 히 12:5-13을 반드시 같이 놓고 해석해야 한다. 고후 12:1-10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때리시며 질병으로 벌주시며, 또한 잘못한 것을 회개했는 데에도 고쳐주지 않으신 분이신가? 죄를 회개했는 데에도 용서해주지 않으신 분인가”에 대하여 반드시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죄를 회개했는 데에도 용서해주지 않으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가 절대로 아니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죄를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다.

 

히 12:5-11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징계를 내리신다면 언어도단이다. 히 12:5-11은 “하나님께 잘못함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아 회개하면서 징계의 아픔을 슬퍼하면서 인내했더니 그 징계를 거두시어 슬픔이 변하여 의의 평강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히 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여기의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strengthen your feeble arms and weak knee)에서 치유를 받지 않고, 치유 없이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라고 말한다면 이는 말이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반신불수의 몸을 가졌을 경우에 그가 치료함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걸어가라고 말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반신불수의 병자는 치료함 없이는 절대로 똑바로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The lame may not be disabled, but rather healed)의 말씀은 약한 다리, 병든 다리를 그냥 가지고 다니지 말고 치유를 받으라는 말씀이다. 고후 12:1-10에서 바울은 그의 육체의 가시 곧 질병의 치유를 위하여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세번이나 기도했는 데에도 치료함을 받지 못했다면, 히 12:12-13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구절에서 “연약한 손과 무릎과 저는 다리를 그냥 가지고 다니지 말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다. 바울 자신은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연약한 몸, 병든 몸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치료함을 받도록 하라고 말하며 다녔다면 이는 모순이며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바울이 “내가 교만함으로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으로 이 교만을 회개하고 치료를 간구했더니 치료를 받아 강건하게 되었으니, 너희도 고침을 받아 강건하도록 하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해야 고후 12:1-10의 말은 모순되지 않고 논리적이 된다. 이와 같이 고후 12장과 히 12장을 같이 놓고 해석해야 상호 연결되어 모순이 없는 해석이 된다. 만약에 바울이 자신은 교만함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아 연약한 몸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가 신자들에게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강건케 하시는 분이니 고쳐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다면 이는 헛소리이며 언어도단에 불과하다. 바울이 이와 같이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바울이 “내가 교만함으로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으로 사단의 사자가 나의 몸을 괴롭게 하여 몸이 연약하게 되었는데, 교만을 회개하고 치료를 간구했더니, 치료를 받아 강건하게 되었으니, 너희도 연약한 손과 무릎과 저는 다리를 그냥 가지고 다니지 말고 하나님께 회개기도하여 고침을 받으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해야 앞뒤의 말이 모순되지 않게 된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바울이 약함(질병)을 치료 받지 못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그릇된 해석이다. 
    모든 질병은 일체의 예외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 원죄와 자범죄에서 왔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원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자범죄로 인한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면 일체의 예외 없이 치유해주신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전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이다. 여기에 다른 단서와 이유와 조건을 붙여서 이것과 다른 결론이 나오게 하는 해석은 다른 복음이다. 베드로는 벧후 3:16에서 “바울의 서신 가운데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는데 다른 성경과 같이 잘못 풀면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오늘날 고후 12:1-10을 위시하여 몇몇 곳의 기록들 중에서 해석이 어려운 구절들이 있는데 이를 잘못 해석하고 억지로 그릇 해석하여 멸망하는 신자들과 목사들, 전도사들, 선교사들이 속출하고 있으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약 5:13-18을 연구하면 바울의 질병이 치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약 5:13-18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바울의 약함(질병)을 치료받지 못했다면 약 5:13-18의 해석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약 5:13-18에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병든 자를 위하여 믿음의 기도를 하면 치유된다. 믿음의 기도는 비가 안 오게도 하고, 오게도 한다. 이와 같이 병든 자를 위하여 믿음의 기도를 하면 반드시 치유함을 얻는다”고 하였다. 바울은 세번의 기도를 했으나 치유함을 받지 못했는데, 야고보는 기도하면 치유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면, 이러한 주장은 있을 수 없다. 만약에 바울의 간구로 그의 약함(질병) 을 치유를 받지 못했다면 고후 12:1-10, 히 12:12-13, 약 5:13-18은 서로 모순이 되어 성경은 진리일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현대 신학계와 교계에서 바울의 약함(질병)을 치유 받지 못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전혀 그릇된 해석임이 밝혀진 것이다. 모든 질병은 하나님의 명령의 불순종, 원죄와 자범죄에서 온 하나님 아버지의 징벌이므로 이 사실을 인식하고 회개하면 반드시 치유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임을 믿는 의심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치료 불가능이 일체 없는 만병통치의 의사이신 아버지이시다.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며 모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믿고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회개의 기도를 하면 어떤 질병이든지 일체의 예외 없이 완전히 치유해 주신다. 약 5:13-18의 기록이 바로 이러한 말씀이다.

 

빌 2:25-27을 연구하면 바울의 질병이 치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빌 2:25-29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이상은 “에바브로디도가 죽을 병이 들었으나 하나님의 긍휼(자비)하심으로 치유함을 받았다”는 바울의 기록이다. 빌 2:27의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Indeed he was ill, and almost died. But God had mercy on him)에서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God had mercy on him)란 뜻은 “하나님의 자비가 그 위에 머물렀다. 하나님의 자비가 그 위에 머물러서 치유함을 받았다”는 뜻이다.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바울은 빌립보서도 기록하였다. 바울의 빌 2:27과 고후 12:9의 기록하는 기록법은 전혀 동일하다. 따라서 빌 2:27의 해석의 원리가 고후 12:9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고후 12:9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렀다”(Christ's power may rest on me)란 “그리스도의 권능이 바울 위에 머물러 있다. 권능이 바울 위에 있다”는 말이며 이는 곧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바울이 치유 받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다”(God had mercy on him)는 말은 에바브로디도가 치유함을 받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후 12:9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렀다”(Christ's power may rest on me)는 말은 바울이 치유함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상의 기록들은 바울의 약함(질병)이 치유되었음을 확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