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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우연히’라는 말을 알아야 질병의 원인을 알 수 있다.
왕상 22:29-37  이스라엘 왕(아합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니라. 아람 왕이 그 병거의 장관 삼십이인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필연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지르는지라 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해가 질즈음에 군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가로되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 하더라. 왕이 이미 죽으매 그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장사하니라.

 

    왕상 22:34의 기록에 의하면 아합 왕은 적군이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전쟁에 참여했던 여호사밧 왕, 아합 왕이나 그의 부하들이 보기에 “재수 없이 우연히” 적군이 쏜 화살에 아합 왕이 맞아 죽은 것으로 보이지만 절대로 “우연히”가 아니다. 적군이 쏜 화살이 우연히 아합 왕을 맞추어 그가 죽은 것이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우연히”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조차도 관여하시는 하나님이 그 “우연히”라는 배후에 계시어 그렇게 하시는 것임을 왕상 22:29-37은 밝히고 있다. 이상의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 에게 “우연히 일어난 사건, 우연히 생긴 질병, 우연히 생긴 고난, 우연히 생긴 교통사고란 있을 수 없다”는 교리가 정립된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는가?
룻 2:1-4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상의 성경의 문자적인 기록에 의하면 룻이나 보아스가 보기에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연히” 룻이 그렇게 된 것이 절대로 아니다. 믿음이 신실한 룻을 축복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에서 하나님께서 룻의 발걸음을 보아스의 밭으로 옮기게 하신 것이지 “우연히”가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배후에 계셔서 행하게 하신다는 기록이다. 이상은 축복도 저주도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실례의 기록이다. 


선지자 엘리는 비둔하여 걸상에서 ‘우연히’ 넘어져 죽었는가?
삼상 2:12-17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삼상 2:22-25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 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삼상 4:15-18 때에 엘리의 나이 구십팔이라.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 사람이 엘리에게 고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가로되 내 아들아 일이 어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

 

    “제사장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의 구절의 문자적인 표현에 의하면 “우연히”라는 글자는 없으나 “의자에서 자빠진 것은 나이 많은 그가 몸이 비둔하여 우연히 의자에서 자빠진 것”을 말한다. 이상에 나타난 현상에 의하면 엘리가 이렇게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이렇게 죽게 된 이유는 그의 두 아들들의 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 저주로서 하나님께서 엘리를 그렇게 죽게 만드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왕상 22:51-53  유다 왕 여호사밧 제 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아비의 길과 그 어미의 길과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숭배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기를 그 아비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왕하 1:2-4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 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아하시야가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보면 “우연히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든 것”을 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범죄함을 인하여 그렇게 죽게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우연히”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우연히”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합 왕, 룻, 선지자 엘리, 아하시야 와” 등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또는 주위의 사람들이 보기에 “우연히”이지만 그들에게 이러난 사건이 절대로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배후에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 바알을 섬기는 아합 왕을 죽이기 위하여 적군이 활을 쏘아 죽임을 당하게 만드신 것이다. 적군은 아합 왕을 향하여 조준하여 그를 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우연히” 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화살이 아합 왕을 맞추게 하신 것이다. 룻이나 보아스가 보기에는 분명히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룻의 믿음을 보시고 그녀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녀의 발걸음을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이 구절의 해석은 이 구절만으로는 절대로 해석되지 않는다.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보면 선지자 엘리가 죽은 것은 비둔하여 “우연히” 의자가 넘어짐으로 목이 부러져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선지자 엘리가 이렇게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이렇게 죽게 된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과 선교사들과 잘 믿는 것으로 보이는 신자들이 음식을 우연히 잘못 먹어서, 우연한 교통사고, 우연한 비행기사고, 우연한 각종의 사고로 인하여 죽으며, 치료 불가능의 질병에 걸리며, 이로 인하여 죽는 이유는 그 배후에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어 그들의 죄로 인하여 징벌하신다는 사실을 이상의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상의 기록은 그릇 행하였기 때문에 고난이 왔다는 뜻이며,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으니 고난을 당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잘못을 했는 데에도 고난을 당하지 아니했다면 주님의 율례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나,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으니 이 고난은 분명히 유익한 것이라는 다윗의 간증이다.

 

시 118: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다.
시 94:12-13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시 94:14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잠 4: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잠 4: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잠 4: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주님의 말씀이 떠나지 하지 아니하면 질병이 없이 육체의 건강을 주시니 이는 곧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기록이다. 불신자들을 위시하여 신자들은 물론이고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 선교사들이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죽으며 여러 고난과 재앙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이상의 성경과 아래의 성경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 107:10-11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잠 26: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같이 제비의 날아가는 것 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이상의 기록은 모든 사람들에게 “까닭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저주는 절대로 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모든 고난, 고통, 질병, 재난, 사망, 저주, 불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거역하여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함에서 온 것임을 이상의 성경말씀 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응답하시리라.”
잠 24:12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응답하시리라.
욥 4:7-9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욥 34:10-12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 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렘 2:17-19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야.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요.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불신자들이나 신자들,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왜 고난이 오게 된 것인가의 이유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은 분명히 구원이지만 고난과 질병에서 구원받는 것도 구원이다. 그런데 수많은 경우 예수님을 믿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전도사, 선교사로서 열심히 봉사하는 데에도 고난과 질병과 죽음에서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이 성경에는 자세히 나와 있는데 신학자들이 성경을 잘못 연구하여 신학생들과 목자들을 잘못 가르쳐 오도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신학자들의 그릇된 연구를 바른 것으로 착각하여 오도된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그릇된 것을 또 다시 신자들을 가르치어 오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