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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에게 고난과 질병이 오게 된 원인
욥기를 모르면 믿는 자에게 고난과 질병이 오는 이유를 절대로 알 수 없다.
    욥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욥기의 기록만을 통해서는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의 기록을 동시에 연구해야 한다. 예를 하나들어 보자. 왕상 15:23-24의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무릇 그 행한 일과 성읍을 건축한 것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저가 늙을 때에 발에 병이 있었더라. 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열조와 함께 그 조상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의 기록에서 아사 왕이 “발에 병”이 들었다고 하였다. 여기의 기록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잘 믿었던 아사 왕이 발에 중병이 들게 된 이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문제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역대하 15장-16장을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욥과 그의 아내와 그리고 열 자녀들이 당한 고난과 죽음 그리고 욥에게 질병이 오게 된 이유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구약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베이커 성경주석의 욥기 해석
욥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이 세상에 그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코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는 굳센 믿음을 지닌 사람이 있음을 입증해 보이고자 하셨으며, 이를 위하여 사탄이 욥에게 여러 가지 혹독한 고난을 가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욥기 2:3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은 고난과 시련을 당할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큰 고난과 시련을 당하였다. 이 증언은 욥기 전체를 통하여 계속 제시되어 있다. 욥은 자신의 고난과 시련을 당할 만큼 특별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믿었으며 이를 계속 주장하였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이러한 태도를 부인하였다. 욥의 당혹과 심란함의 요인은 욥의 친구들의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한층 더 가중되었다. 시련을 당하고 있는 신자들은 종종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인식치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시련의 원인과 목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커 성경주석, ‘욥기’ p.20,74)
욥기 1:10-11에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라고 하였다. 사탄은 악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못지않게 뻔뻔스럽다. 사탄은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욥을 시험해보라는 제안까지 하였다. 그는 욥의 위선을 주장하였으며 이를 입증해 보이고자 하였다.
욥의 고통은 사탄의 악의에서 시작되었고 그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비에서 비롯되었다. 욥기 42:12-13에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더 많이 주시기 위해 자기 백성으로부터 빼앗아 가신다. (베이커 성경주석 ‘욥기’ p.53,771,773)


    이상의 베이커 성경주석의 ‘욥기’ 해석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욥을 시험해보라는 제안까지 하였다. 그는 욥의 위선을 주장하였으며 이를 입증해 보이고자 하였다”에서 하나님은 사탄의 거짓말을 들으시고 죄 없는 욥에게 고난을 주어 시험하시고 자녀들을 죽이게 하시는 분으로 취급하고 있다. 특별히 이상의 “하 나님께서는 오직 더 많이 주시기 위해 자기 백성으로부터 빼앗아 가신다”의 주장은 얼핏 보 면 바른 주장인 것 같으나 이는 전혀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더 많이 주시기 위하여 그의 열 자녀들을 죽이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이커의 주장은 전혀 그릇된 황당한 것이다. 많은 신학교 교수들과 목사들이 그릇된 황당한 베이커 성경주석의 해석을 바른 해석이라 믿고 신자들의 가리치어 오도하고 있다. 

 

매튜 헨리의 욥기 해석
욥은 믿음이 있는 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를 섬겼고 모든 일에서 거룩한 율례에 의해 그 자신을 다스렸다. 그는 믿음에 성실하였다. 그는 순전했다. 그는 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죄에서 떠난 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성실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그의 애인의 영혼을 원수의 손에 붙이고 양을 사자에게 붙이는 것”과 같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 욥을 영예롭게 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고, 모든 세대를 통해 환난 당하는 그의 백성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 즉 유익한 전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심사숙고 끝에 이러한 경우를 만드셨던 것이다. 욥의 고통은 사탄의 악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였다. (매튜 헨리, ‘성서주석 욥기’ [하] p.30,48,437,439)

 

    이상의 매튜 헨리의 “하나님께서는 욥의 성실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셨다. 욥의 고통은 사탄의 악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믿음이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에서 떠난 욥을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셨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자녀를 이렇게 대하시는 하나님으로 취급하는데 이는 그릇된 해석에서 온 것이다.

 

존 윔버의 욥기 해석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거의 모든 질병들은 죄악과 불순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죄와 질병 사이에 불분명한 몇몇의 경우들에 있다(예컨대 왕하 20:1-11에 있는 히스 기야 왕의 치유). 그러나 욥의 경우만은 단 하나의 예외로서 그의 고난에 있어 중심적인 것은 질병이 아니라 가족과 재난과 명예의 상실이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욥기는 독자들의 마음속에 불순종과 질병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일으킨다. 그의 이야기는 불순종과 질병의 관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존 윔버, ‘능력치유’ p.79)


    존 윔버의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거의 모든 질병들은 죄악과 불순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는 주장에서 즉, “거의 모든 질병들”이라고 한 것은 그릇된 주장이다. 따라서 이 주장은 반드시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질병들은 일체의 예외 없이 죄악과 불순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라고 해야 한다. 또한 “예컨대 왕하 20:1-11에 있는 히스기야왕의 치유의 경우와 같이 죄와 질병 사이에 불분명한 몇몇의 경우들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헤세드 성경주석의 욥기 해석
욥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이 그의 죄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나 욥은 그것을 극구 부인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고 욥을 질고에서 건져내십니다. 욥은 신앙의 순수성과 불굴성을 입증키 위하여 시험을 당했습니다. 시험은 대적자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사법부의 검사와도 같이 하나님의 재판정에 죄인을 고소하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반드시 이 시험을 이길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탄은 욥의 모든 재산과 열 자녀들을 죽였습니다. 욥 2:1-6에는 다시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욥에 대한 2차 시험을 허락 받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사탄은 여호와께서 욥의 육신을 치시면 하나님을 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셨다. (헤세드 성경주석 ‘욥기’ p.65-66,71,77-78,82)

 

    이상의 헤세드 성경주석의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이 그의 죄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나 욥은 그것을 극구 부인합니다”라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욥기 7:20-21에 욥은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욥은 분명히 그의 고난은 그의 죄와 허물에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사탄은 여호와께서 욥의 육신을 치시면 하나님을 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셨다. 사탄은 사법부의 검사와도 같이 하나님의 재판정에 죄인을 고소하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반드시 이 시험을 이길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라는 주장은 황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법대로 판결하시는 공의로운 재판장인 하나님은 사탄이라는 그릇된 검사의 그릇된 고소를 듣고 죄가 없는 욥에게 그의 일생에 모은 모든 재산이 한 순간에 없어지게 하는 고난과 질병을 허락하시며, 10명의 자녀들을 죽임을 당하도록 판결하시는 재판장이 절대로 아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