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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의 욥기 해석
구약성경에 보면, 마귀는 욥의 재산과 자녀를 빼앗고,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도록 합니다(욥 2:7). 욥이 악창에 시달리게 된 것은 범죄함이나 위생관리를 잘 못한 때문이 아니라 사단이 몸을 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질병은 마귀로 인해 다가 오기도 하는 것입니다(조용기 목사, ‘목사님 병고침을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나요?’ p.30).
욥기를 보면 욥의 고난과 시련의 배후에는 사탄의 참소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죄 없는 욥을 어찌하든지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에게 허락하사 욥을 시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절대로 시험과 환난을 당해도 주를 욕하지 않을 것을 하나님은 확실히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을 고통 속에 빠뜨린 재난의 당사자는 배후에 사탄이었습니다. 사탄이 욥을 처서 재산을 다 잃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일곱 명과 딸 셋이 잔치를 하는데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짐으로 비명횡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모두 배후에 마귀가 한 짓입니다. 그리고 욥을 처서 육신의 병이 들게 했습니다. 욥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귀가 사람에게 행한 대표적인 악한 행위였습니다. 욥을 패가망신 시킨 마귀는 오늘도 사람에게 두루 패가망신 시키려고 합니다. (조용기 목사, 2007년 2월 4일 설교 중에서 발췌)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인간의 생명을 해칠 수 없습니다(욥 2:6). (조용기 목사,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 p.222)

 

    조용기 목사의 “욥이 악창에 시달리게 된 것은 범죄함이나 위생관리를 잘못한 때문이 아니라 사단이 몸을 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질병은 마귀로 인해 다가오기도 하는 것입니다”라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해석에서 온 것이다.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욥이 악창에 시달리는 것은 사단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데 욥기 1장과 2장에 자세히 기록된 하나님과 사단과 욥의 관계를 도외시했기 때문에 그릇된 것이다. 바른 해석은 욥이 하나님 앞에서 자녀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을 받는 사단이 몸을 쳤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또한 “마귀는 죄 없는 욥을 어찌하든지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에게 허락하사 욥을 시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절대로 시험과 환난을 당해도 주를 욕하지 않을 것을 하나님은 확실히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라는 주장도 전혀 그릇된 황당한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죄 없는 욥을 그릇된 사단의 그릇된 말을 듣고 욥을 사단에게 내어주시었다는 주장인데 이는 공의의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만드는 것으로 전혀 그릇된 처사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인간의 생명을 해칠 수 없습니다”(욥 2:6)라는 것은 바른 주장이다. 위에서의 조용기 목사의 주장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사탄을 통하여 그의 생명을 해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장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전혀 황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다음과 욥기를 해석하고 있다.

 

욥기를 보면 마귀는 하나님께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오직 복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 순수한 사랑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을 두고 마귀와 결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마귀에게 보이시고자 했고, 여기서 욥의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욥기 1:9-11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모든 면에서 복을 주셨으므로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만일 하나님께서 욥의 재산을 다 빼앗으면 절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고 사탄은 말했습니다. 섬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욕하고 배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욥을 두고 하나님의 장담과 마귀의 참소, 어느 것이 사실인지 시험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로로 욥은 고난과 시련 속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께서 꾸중하시고, 정죄하시며, 때리시는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를 짓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시고 복을 주시려고 하실 때 사탄이 와서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참소함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우리에게 시험을 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기 이전에 우리에게 크고 작은 시험이 다가오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귀 앞에 우리를 인정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 설교전집’ 제19권 p.19-96,7-14) 

 

   조용기 목사의 “하나님께서는 욥을 두고 마귀와 결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마귀에게 보이시고자 했고, 여기서 욥의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의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두고 마귀와 결전을 하기로 했습니다”라는 주장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마귀와 대결하여 결전하시는 분으로 취급하는 불의한 처사이다. “욥을 두고 하나님의 장담과 마귀의 참소, 어느 것이 사실인지 시험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라는 주장은 불신의 세계에서 만든 저질의 소설과 같은 그릇된 것이며, 욥기를 잘못 연구한 데서 온 황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조용기 목사가 말하는 고난과 질병의 원인
우리는 가정적으로 환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부부간의 불화, 친척간의 갈등, 자녀들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풍이 불어와 가정을 뒤흔들어 놓을 때 우리는 고난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건강을 잃은 환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생활의 바탕이 건강인데 이 건강을 잃어 자리에 눕게 되면 모든 것이 다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한창 일할 때인 중년에 당뇨병 혹은 간경화, 뇌졸증 등 심각한 병을 만날 때 깊은 고난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혹은 사업이나 직장생활에 실패했을 때 깊은 고통을 받게 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 깊은 충격과 함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다가오는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어서 이런 징계를 받는가 등 이같이 우리가 고난 당할 때는 반드시 회개할 때입니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나의 삶이 무엇이 하나님께 잘못 되었는지를 깊이 살펴보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 설교전집’ 제19권 1996, p.256)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다가오는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어서 이런 징계를 받는가 등 이같이 우리가 고난 당할 때는 반드시 회개할 때입니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나의 삶이 무엇이 하나님께 잘못되었는지를 깊이 살펴보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난은 죄 때문이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위의 욥기 해석에서는 “욥이 악창에 시달리게 된 것은 범죄함이나 위생관리를 잘못한 때문이 아니라 사단이 몸을 쳤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는데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이상에서 조용기 목사는 “고난은 죄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여 상호모순 되는 주장을 하여 그의 신유론은 앞뒤의 주장이 전혀 일치 하지 않고 횡설수설한 모순 속에 있음이 증명되었다.

 

김의환 목사의 욥기 해석
병은 왜 생기는가? 병은 반드시 죄에 대한 벌로 보아야 하는가? 병은 반드시 죄벌로만 볼 수는 없다. 욥의 경우는 그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믿음의 시련으로 병이 주어졌다. 그리고 발병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사탄의 역할이 주역을 담당한 사실을 알 수 있다(욥 1:6-19). 그러므로 죄와 병과의 관계를 일률적으로 필연적인 것으로 취급함은 잘못이다. 예수를 잘 믿는 신자는 병에 걸릴 수 없다고 가르치는 이단이 있다. 크리스챤 사이언스 교파에서는 병 자체를 부인하며 바른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병이 침입할 수 없다고 한다. 오늘날 일부 번영신학을 따르는 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도 비슷한 주장들을 한다. 그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다음의 성구를 인용한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 본문을 근거로 순종하는 신자에겐 병이 생길 수 없다고 한다. 신약시대 성도에게는 반드시 순종을 조건으로 병이 낫는다는 약속은 없다. 순종의 삶을 누린 바울을 위시하여 구제의 본을 보인 드로가나 바울의 제자 디모데도 다 병으로 고생했다. 사도 바울을 섬기던 에바브로디도 같은 성도도 병에 걸려 고생하며 사경을 헤맸다(빌 2:27). 성도의 몸을 다룸에 있어서 주어진 교훈 중에 순종을 조건으로 병에서 면제될 것이란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김의환 목사, ‘성경적 축복관’ p.70-73) 

 

    김의환 목사의 “병은 왜 생기는가? 병은 반드시 죄에 대한 벌로 보아야 하는가? 병은 반드시 죄벌로만 볼 수는 없다. 욥의 경우는 그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믿음의 시련으로 병이 주어졌다. 그리고 발병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사탄의 역할이 주역을 담당한 사실을 알 수 있다”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병은 반드시 죄벌로만 볼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죄 없는 욥을 사단에게 허락하여 욥이 질병의 벌을 받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공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의 하나님으로 취급하는 불경한 태도로서 있을 수 없는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김의환 목사는 “예수를 잘 믿는 신자는 병에 걸릴 수 없다고 가르치는 이단이 있다. 크리스챤사이언스 교파에서는 병 자체를 부인하며 바른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병이 침입할 수 없다고 한다”고 말한다. 김의환 목사가 말하는 크리스챤사이언스 교파는 분명히 이단이다. 이단들의 주장이라고 하여 성경에 전부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맞는 주장도 있다. 김의환 목사의 “예수를 잘 믿는 신자는 병에 걸릴 수 없다고 가르치는 이단이 있다”라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것이다. “예수를 잘 믿는 신자는 병에 걸릴 수 없다”는 주장은 바른 성경적인 주장이다. 김의환 목사의 그릇된 주장은 신명기 28장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고, 출 15: 26을 그릇 해석한 데서 온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이들 구절에서 “예수를 잘 믿는 신자는 병에 걸릴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의환 목사의 “성도의 몸을 다룸에 있어서 주어진 교훈 중에 순종을 조건으로 병에서 면제될 것 이란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주장도 신명기 28장을 위시하여 성경에 기록된 무수히 질병의 원인을 전혀 연구하지 않은 데서 온 그릇된 주장이며 신학계와 교계를 오도하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