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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해석을 위한 질문: 욥은 왜 번제를 자주 드렸는가?
욥 1:4-5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그의 자녀들이 죄짓지 아니했는데 번제를 드렸는가? 욥기의 해석은 이 질문의 답변에 달려있다. 이 질문의 답변을 성경에서 찾지 못하면 욥기를 절대로 해석할 수 없다. 잠언 30:5의 말씀대로 “네 말을 보태지 말고,” 해답을 오직 성경 안에서 찾아야 한다. 태풍이 몰아쳐 자녀들이 죽은 것은 자연재난으로 인한 불가피한 사고사인가? 눅 13:1-5에 기록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십팔 명이 죽은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욥이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번제를 자주 드렸는데 번제를 드린 이유를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욥이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번제를 드릴 때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라고 하였는데, 죄짓지 아니했는데 죄 사함의 번제를 드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욥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분명한 심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제사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신 것처럼 욥의 제사를 받지 않고 징벌을 내리신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욥 3:25의 해석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행복을 곧 빼앗아 가리라고 속삭이는 것은 마귀입니다. 이 마귀는 옛날 욥에게도 공포심을 심어주었지요, 여러 번 욥이 그와 같이 처참하게 패망하게 된 까닭은 그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35). 이 공포심 때문에 동방에서 제일가는 욥이 그 자식 열명과 양 7천과 약대 3천과 암나귀 5백과 남녀종까지 다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욥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 아니다. 멀지 않아 너의 자손을 빼앗고 너를 패가망신 시킬 것이다’라고 속삭였습니다. 욥이 이 소리에 넘어가 부정적인 신앙으로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잃어버리자 불안과 공포에 떨기 시작하였고 마귀는 이 두려움을 조건으로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무서운 형벌을 받게 하였던 것입니다(조용기 목사, ‘삼박자 구원’ 1989, p.25).
    성경의 ‘욥기’에 보면 ‘어느 날 두려워하고 걱정하니 재앙이 임했다’고 말한 구절이 있다. 욥은 많은 재산과 재물도 잃고 온몸에 종기도 났다. 그때 욥은 “나의 두려워하는 것이 나에게 임하고...고난만 남았구나”라고 탄식했다. 이것이 바로 도적질하는 마귀가 하는 짓이다. 마귀가 좋아하는 것은 ‘부정적인 상상’이다. 욥도 얼토당토않은 부정적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재앙이 일어났다. 마음에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면 그것이 생활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땐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라고 대적해야 한다. 바로 오늘처럼 모여 기도하며 대적해야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 목사가 “광우병 괴담은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기 위한 사탄의 계략”이라고 말했다. 2008년 5월 18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엄신형 목사] 주최로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화합을 위한 특별기도회’에서 강론한 ‘두려움과 형벌’이라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 2008년 5월 18일 서울 중앙일보 Internet에서 발췌)

 

    조용기 목사는 “마귀는 욥의 마음에 불안과 공포심을 심어주었고 마귀는 이 두려움을 조건으로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무서운 형벌을 받게 하였던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그릇된 해석이다. 조용기 목사의 주장은 욥 1:4-5과 욥 3:24-25의 관계를 전혀 잘못 연구한 데서 온 것으로 전혀 그릇된 해석으로 수많은 신자들을 오도하고 있다.

 

욥 3:24-25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의 이 탄식은 재산이 다 날라가고, 열 자녀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그의 몸에 악창이 난 후에 한 것이다. 여기에서 욥이 어떤 마음으로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가를 알 수 있다.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그의 자녀들이 포도주를 먹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의 엄한 징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움의 마음으로 번제를 드렸음을 고백하고 있다. 욥은 그의 자녀들이 포도주를 먹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의 엄한 징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움의 마음으로 번제를 드렸던 것이지 조용기 목사의 말대로 “마귀는 끊임없이 욥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 아니다. 멀지 않아 너의 자손을 빼앗고 너를 패가망신 시킬 것이다라고 속삭였습니다. 욥이 이 소리에 넘어가 부정적인 신앙으로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잃어버리자 불안과 공포에 떨기 시작하였고 마귀는 이 두려움을 조건으로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무서운 형벌을 받게 하였던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러한 조용기 목사의 주장은 욥 1:4-5에 왜 욥이 번제를 드렸고, 번제를 드리는 욥의 태도를 전혀 연구하지 아니하였고, 즉 욥 1:4-5과 욥 3:24-25의 관계를 일체 연구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전혀 그릇된 것이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위에서 “성경의 욥기에 보면 어느 날 두려워하고 걱정하니 재앙이 임했다고 말한 구절이 있다. 그때 욥은 나의 두려워하는 것이 나에게 임하고...고난만 남았구나라고 탄식했다. 이것이 바로 도적질하는 마귀가 하는 짓이다. 마귀가 좋아하는 것은 ‘부정적인 상상’이다. 욥도 얼토당토않은 부정적 생각하다가 그대로 재앙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욥이 어느 날 두려워하고 걱정하니 재앙이 임했고, 얼토당토않은 부정적 생각하다가 그대로 재앙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이는 욥기 1:4-5과 욥기 3:24- 26의 기록을 잘못 연구한 데서 온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욥이 얼토당토않은 부정적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재앙이 일어난 것이 결코 아니다. 욥기 1:4-5과 욥기 3:24-26의 기록을 종합하면 욥의 자녀들이 수시로 포도주를 먹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의 엄한 징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움의 마음으로 번제를 드렸던 것이지 조용기 목사의 말대로 욥이 얼토당토않은 부정적 생각하다가 그대로 재앙이 일어난 것이 결코 아니다. 결론적으로 간단히 설명하면 욥의 자녀들의 범죄와 욥의 자녀들의 교육에 실패한 대가로 하나님께서 사단을 통하여 그에게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욥기 해석을 위한 질문: 욥의 자녀들은 어느 때에 죽임을 당했는가?
욥 1:13-15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욥 1:18-19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의 자녀들이 포도주를 마실 때에 욥의 모든 재산은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파괴되고 스바 사람들에게 약탈당하였고 그의 열 자녀들은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께서 욥의 자녀들이 아무런 죄가 없는데 사단을 통하여 죽이도록 허락하신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그릇된 처사이며,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천부당만부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또한 모든 신학자들이 욥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사단의 참소를 듣고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시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죄 없는 욥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욥의 죄 없는 열 자녀들을 죽이도록 사단에게 허락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공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만드는 것으로 대단히 불의한 처사이다.

 

하나님은 욥의 자녀들이 잘못이 없는데 사단의 그릇된 말을 듣고 죽게 만드는 분이신가?
행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왕하 14:6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렘 31:30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잠 24:12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욥 4: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시 34: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잠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욥의 자녀들에게 이상의 말씀이 임하여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상의 기록에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욥의 자녀들이 죄가 없는데 죽임을 당했다면 이상의 말씀은 절대로 진리일 수가 없다. 그러나 이상의 말씀은 구약시대는 물론이고 신약시대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시까지 존재하게 될 모든 불신자들과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불변의 진리의 말씀이다.


매튜 헨리의 욥기 해석
욥의 친구들의 의견은 일반적으로 옳았다. 즉, 하나님이 심판을 굽게 하시지 않으며, 또한 공의의 고정된 법칙을 그 어느 것도 어긋나게 하지 않으신다(3절)는 것은 옳았다. 하나님은 결코 무죄한 자를 학대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죄의 값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심판자이시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냐(창 18;25). 욥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굽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인정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자녀들이 어떤 큰 범죄로 인해 버림을 당하거나 죽게 되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특별한 고통은 언제나 특별한 죄에 따르는 심판이 아니며 때로 그것은 특별한 은혜를 시험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메튜 헨리, ‘성서주석 욥기’ [상] p.191-192)

 

    메튜 헨리의 “욥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굽게 하시지 않는다”라는 주장과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자녀들이 어떤 큰 범죄로 인해 버림을 당하거나 죽게 되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서로 모순된다. “그의 자녀들이 어떤 큰 범죄로 인해 버림을 당하거나 죽게 되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이 맞다고 가정할 경우 하나님은 죄가 없는 그의 자녀들을 죽게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심판을 굽게 하신 것으로 되어 버린다. 따라서 메튜 헨리의 “그의 자녀들이 어떤 큰 범죄로 인해 버림을 당하거나 죽게 되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전혀 그릇된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굽게 하시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고통은 언제나 특별한 죄에 따르는 심판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황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베이커 성경주석의 욥기 해석
빌단의 마음속에는 욥의 고난과 그의 자녀들의 죽음에 염두를 두고 있다. 그는 욥의 자녀들의 죽음을 하나님의 공의의 개연적인(비록 정확하지는 않을지라도) 실례로 잔혹하게 취급하고 있다.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4절). 즉 절제 없는 잔치를 베푼 그들의 죄에 마땅하게 받을 벌을 가하셨나니. 일반적은 진리를 가혹하게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 적용하고 있다. 욥의 자녀들이 비록 범죄했어도 우스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죄가 그들의 죽음의 원인은 아니었다. 욥이나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그 어떤 불의가 재난을 허락하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베이커 성경주석 ‘욥기’ 183)

 

    “욥의 자녀들이 비록 범죄 했어도 우스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은 그릇된 비유이다. 즉 욥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를 했느냐 아니했느냐를 따져야지 다른 불신세계의 사람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베이커의 “그들의 죄가 그들의 죽음의 원인은 아니었다”는 주장을 맞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 욥의 자녀들을 죽음에 처하게 하시는 분이시므로 공의의 재판관이 아니라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그들의 죄가 그들의 죽음의 원인은 아니었다”는 주장은 황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헤세드 성경주석의 욥기 해석
욥은 잔치가 끝나면 자녀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는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는 그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범했을까 해서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위탁한 하나님의 생명들입니다. 그들을 사탄에게서 지켜야 할 의무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지도해야 할 책임이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욥은 그 일에 있어서 철저했습니다. 욥의 자녀들은 형제 우애가 깊었습니다. 그래서 맏형의 집에 모여 함께 식사와 대화로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던(행 2:46-47) 초대 성도들처럼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온 이웃들이 그들 형제를 칭송하였습니다. 대조적으로 엘리 제사장의 자녀들은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엘리의 자녀들은 여호와 앞에 범죄함으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닮아 입으로 범죄하는 일도 없었고 형제간에 질투나 원망이 없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로는 결코 일시에 닥친 재난에 희생될 일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욥 8:1-7에서 빌닷은 하나님은 심판을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공의를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욥의 자녀들은 그 죄의 대가로 죽은 것이 분명하다는 논리를 편다. (헤세드 성경주석 ‘욥기’ p.68-69,72,77,151)

 

    옥한흠 목사는 이상의 헤세드의 욥기해석을 수용하여 욥기의 자녀들을 해석하는데 이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전혀 그릇된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를 닮아 입으로 범죄하는 일도 없었고 형제간에 질투나 원망이 없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로는 결코 일시에 닥친 재난에 희생될 일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라는 주장을 맞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은 죄 없는 자녀들을 사단의 그릇된 말을 듣고 죽음에 처하게 하시는 불의한 재판관이 되시기 때문에 황당한 주장이 되어버린다.


욥의 자녀들이 죽임을 당한 이유

욥 8:1-7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광풍과 같겠는가.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상의 기록된 욥에 대한 수아 사람 빌닷의 지적은 바른 지적이다. 특히 이 기록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는 것은 불변의 진리로서 하나님은 공의의 재판관이시라는 기록이다. 만약에 욥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들을 죽이도록 사단에게 허락하시었다면 하나님은 결단코 공의로운 재판관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법대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재판관이시다. 욥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죄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에 의하여 그들은 죽임을 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