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욥 2:3의 “까닭 없이”라는 말을 해석하지 못하면 욥기 해석은 불가능하다.
욥 1:8-10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상의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 까”라는 기록에서 [까닭 없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의 뜻은 욥이 [까닭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까닭이 있기 때문에,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이다. 

 

욥 2: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여기의 문자적인 기록에 의하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순전한 믿음을 가진 욥을 하나님께서 사단의 거짓된 말을 듣고 격동하여 까닭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치게 하신 것이다. 기록된 문자로만 본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잘 믿고, 아무런 죄가 없고, 순전한 믿음을 가진 욥을 속이는 사단의 말을 듣고 욥의 모든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라 가게 하시고, 결혼도 하지 않은 열명의 자녀들을 죽이시며, 욥의 온 몸에 악창이 나게 하시며, 욥의 아내는 간 곳도 없이 사라지게 하시는 무자비한 분이시란 말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로 이러한 분이 아니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러한 모순된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일까? 이러한 해석이 나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욥 2:3에 나오는 “까닭 없이”라는 말의 그릇된 해석에서 온 것이다. 이 말을 성경 안에서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면 욥기의 해석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라는 말의 뜻은 이 구절만으로는 절대로 밝혀낼 수 없고 성경의 다른 구절을 연구해야 한다.

 

사 52:4-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대상 9:1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사 52:4-5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의 기록에 의하면 여호와의 백성이 “까닭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것이다. 그러나 대상 9:1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사 52:4-5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까닭 없이 바벨론으로 잡혀갔고, 대상 9:1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 론으로 잡혀갔다고 하여 상호 모순되고 오류가 있게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모순과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그렇다면 사 52:4-5과 대상 9:1의 모순과 오류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사 52:4-5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까닭 없이 바벨론으로 잡혀갔다”는 뜻을 밝혀내면 모순과 오류가 일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까닭 없이 바벨론으로 잡혀 갔다”는 뜻은 앗수르인이 하나님의 백성을 잡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즉 앗수르인은 아무런 이유 없이, 까닭 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잡아갔다는 뜻이다. 앗수르인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들을 잡아간 것은 영토확장의 야욕과 이스라엘을 지배하겠다는 지배 야욕이라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러한 이유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스라엘을 잡아 갈 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대상 9:1의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을 격동시켜서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 백성을 사로 잡아가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까닭 없이 바벨론으로 잡혀갔다”는 것은 여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함을 인하여”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까닭 없이 바벨론으로 잡혀갔다”는 뜻은 앗수르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까닭 없이 사로잡아 갔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하나님께서 앗수르인을 통하여 바벨론에게 사로잡혀 가게 하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까닭 없이 바벨론으로 잡혀갔다”는 말은 앗수르인에게는 까닭이 없지만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까닭에, 죄 때문에 바벨론으로 잡혀갔다”는 뜻이다.
욥 7:20-21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욥 8:17-18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욥 2:3에 나오는 “까닭 없이”와 욥 8:17-18에 나오는 “까닭 없이”는 같은 의미로 사용 되고 있다. 욥 8:17-18에서 욥은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괴로움을 주신다”고 하였다. 기록된 문자 그대로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전한 욥을 까닭 없이 온 몸에 상처를 주시고난을 주시는 불의한 분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불의한 분이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욥 7:20-21의 욥의 말에 의하면 그의 고난은 허물과 죄로 인하여 고난이 온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욥 7:20-21의 기록과 욥 8:17-18의 기록은 서로 모순과 오류가 있게 된다. 이러한 모순과 오류가 생긴 이유는 욥 8:17-18에 나오는 “까닭 없이”란 말을 잘못 해석한 데서 온 것이다. 욥 8:17-18에 나오는 “까닭 없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욥 7:20-21을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욥 7:20 -21에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라고 하였다. 욥의 범죄와 하나님과는 “상관 없는” 것이며, 하나님 편에서는 “까닭 없는 것이며, 이유 없는 것이지 않느 냐”는 욥의 항변이다. 즉 욥의 범죄가 하나님 편에서는 까닭 없는 것이지만, 욥이 고난을 받는 것은 욥의 허물과 죄에서 온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욥 8:17-18에서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 의 뜻은 “하나님에게는 까닭 없는 것이지만 욥이 허물과 죄 때문에 욥의 상처를 많게 하시며, 욥으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욥을 채우시고 계신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 편에서는 까닭이 없지만 욥의 편에서는 그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고전 10:13은 욥의 자녀들과 욥의 아내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의 말씀은 욥의 자녀들과 욥의 아내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욥에게만 적용되었다. 이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모두 적용되는 구절이 아니라 조건부로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무조건 피할 길을 열어주시지 않는다. 믿는 자들이 시험과 고난이 왔을 때 그 고난이 죄 때문에 온 것임을 자각하고 죄를 회개하면,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욥 42:1-6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 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욥 42:12-17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욥 42:11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 하고”라 하였다. 욥이 당한 모든 재앙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욥이 비록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전한 믿음을 가진 의인이었지만, 자녀교육에 실패하였고, 자녀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자인 아버지의 재산을 의지하였고,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모은 전 재산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에 의하여 하루 아침에 없어졌고, 열명의 자녀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의 아내는 소식도 없이 사라지는 재앙을 당한 것이다. 이러한 욥이 그 동안의 죄를 깨닫고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는 회개의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입어 재앙 전의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과 새로운 자녀 열명을 축복으로 받은 것이다.

 

약 1: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욥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까? 이에 대한 해답은 고전 10:11에서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밝히고 있다. 욥을 위시하여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고난과 재앙을 받는 실례들은 오늘을 사는 믿는 우리들의 거울로, 경고의 말씀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왜 징계하시는가?

신 8:5-6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잠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사 48:9-11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히 12:5-11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은 어찌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징계하시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종케 하기 위하여 권면하시고 그래도 듣지 아니하면 고난의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한다”는 뜻은 은과 금에 불순물이 있음으로 이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아니한 불순종의 불순물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제거시키기 위하여 질병이라는 고난의 풀무 불을 통과하시게 하는 것이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 병 낫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뜻일지 모른다”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그릇된 것이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하심이다. 질병으로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채찍, 징계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불순종한 자녀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질병으로 고난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따라서 질병은 반드시 치료함을 받아야 하나님의 뜻이다. 질병을 치료받지 못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잠 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잠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이 기록에서 장수하지 못하고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 이유는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잠 24: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잠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렘 5:3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렘 10:18-1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 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란 무슨 뜻인가?
욥 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man is born unto trouble-KJV, man is born to trouble-NIV, man is born for trouble-NASB),
 
    욥 5:7의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욥 4:19-20에 나오는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조석 사이에 멸한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를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 나오는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를 문자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루살이에게 눌러 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들이란 하루살이처럼 조석 사이에, 하루만에 죽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욥 4:19-20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듯이 욥 5:7에 나오는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의 기록도 문자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문자적으로만 볼 경우에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다는 기록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으로 태어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고난을 위하여 창조하시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이 기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말이 안 된다. 창 6:3에 “여호와께서 가라 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을 모든 사람을 의미하지 많고 불신자만을 의미한다. 불신자들에게는 성령님이 영원히 계시지 않지만 신자들과는 함께 계신다. 히 9:27에 나오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 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의 기록 가운데 “사람”이란 신자들과 불신자들을 모두 포함한 사람을 결코 의미하지 않고 오직 불신자들만을 말한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에 근거하여 욥 5:7에 나오는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의 기록에서 “인생”이란 불신자들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삶은 고난의 삶이란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살면 행복의 삶을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고난과 죽음의 삶을 사는 조건부로 사람을 창조하시었다.
    시 10:4에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기록이 있다. 불신자들은 그들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인생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곧 욥 5:7의 말씀이다. 전 2:26에서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는 말씀은 믿는 자에게 해당되며, 욥 5:7의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의 기록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해당이 안 된다.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신다”는 말씀은 불신자에게 해당되며, 욥 5:7의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의 기록도 역시 불신자에게 해당된다.
    신 28:15-19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바로 욥 5:7에 나오는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의 실례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