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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 하신다.
겔 18:21-23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 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겯길로 나간 잃은 양들이다. 하나님은 겯길로 나간 잃은 양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모든 불신자들, 모든 악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시며 하나님은 모든 병자가 치유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모든 병자가 치유되기를 원하신다.


마 13:53-58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만병통치의 의사이신 예수님께서도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고 하였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만병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에 질병의 치료함을 받지 못하고 고난 중에 있다. 주님을 만병통치의 의사로 인정하지 않았음을 회개하고, 치료하시는 예수님만을 믿고 예수님에게 나아오면 반드시 치유해주신다.

 

막 6:1-6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기독교인이란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 자를 말한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 된 예수님의 영혼의 구원사역은 믿으면서, 예수님의 질병의 치유사역는 믿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는 그릇된 망령된 처사이다. 그 결과로 많은 목회자나 신자들이 불치의 질병을 치유 받지 못하여 신음하며 고생하며 죽어가고 있음을 본다. 이는 성경을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에 무수히 기록된 치유사역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있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비극이다.

 

눅 4:25-30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엘리야와 엘리사가 살았던 곳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만이 살고 있던 이스라엘이었다. 엘리야 때에 살았던 많은 신자들 가운데 오직 사렙다의 한 과부만이 기적을 체험했고,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으나 한 사람도 치유받지 못하고 오직 이방인 나아만 한 사람뿐이었다는 예수님의 탄식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도 하신 말씀이다.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고 있는 현대에 예수님의 치유사역으로 병 고침을 받았다는 간증을 듣기가 가뭄에 콩나는 경우와 같이 극히 희소하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며 문둥병자를 고치신 만병통치의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의 의사들이 치유 불가능하다고 하는 어떠한 불치의 질병도 반드시 고침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신유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만병통치의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온전한 메디컬 닥터, 의사로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으면 질병의 치유를 못하시었다고 막 6:1-6과 눅 4:25-30은 기록하고 있다. 

 

조용기 목사의 주장
주님께서는 아무리 우리의 질병을 고쳐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하더라도 병든 사람이 간절한 소원과 기대가 없이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신유의 기적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조용기 목사,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 p.190)

 

    이상의 주장은 막 6:1-6와 눅 4:25-30의 경우에 맞는 바른 주장이다. 그러나 행 3:1-10의 경우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제 구시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병든 사람이 간절한 소원과 기대가 없고 믿음을 갖지 못했는 데에도 신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 경우에는 병든 자의 믿음은 없었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으로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베드로와 요한이 행한 것과 같은 신유사역은 반드시 재현되어야 한다.

 

서철원 목사가 말하는 바울이 치유하지 못한 사역
바울도 그의 말년에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의 위장병을 고쳐줄 수 없어서 자연적 처방만을 했을 뿐이다(딤전 5:23). 에바브로디도는 죽기 전에 이를 만큼 병들었지만 신유은사로 바울이 고치지 못하고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사 고쳐주시기만을 기도하였고(빌 2:26-27), 드로비모도 병들어도 신유의 은사로 낫게 하지 못하고 밀레도 섬에 남겨 두었었다(딤후 4:20). (서철원 목사 ‘성령신학’ p.219)  

 

존 윔버가 말하는 성경에 기록된 치유되지 못한 네 사람
서신들에 의하면 병든 자들이 즉시 치유되지 못한 네 가지의 경우들, 그리고 전혀 치유될 수 없었던 경우들이 적어도 두 가지 정도 기록되어 있다. 그 첫 번째는 에바브로 디도의 경우로서 그는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였으며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문안하기 위해 로마로 왔다가 심한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던 인물이다. 그의 병이 어떠한 성격의 것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에게 이렇게 회신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 2:26-27). 이와 같은 바울의 배려는 친구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그의 치유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판단하건대 에바브로디도는 치유를 비는 기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병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있었거나, 아니면 그 후에 치유를 비는 기도가 효과를 나타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에바브로디도는 거의 병들어 죽을 지경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존 윔버, ‘능력치유’ p.256)
 
    이상의 서철원 목사와 존 윔버는 에바브로디도의 병이 치료함을 받지 못한 것으로 해석한 것은 그릇된 것이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 2:26-27)에서 하나님께서 에바브로디도를 긍휼히 여기셨고, 또한 바울을 긍휼히 여기사 그의 질병을 근심하는 바울의 근심을 면케 하셨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근심을 면케하였다”는 말은 근심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에바브로디도의 질병이 치유함을 받지 못했다면 계속 근심할 것이나 치유되었으므로 근심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에바브로디도의 병은 치료함을 받은 것이다. 존 윔버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두 번째는 디모데의 경우이다. 딤전 5:23에서 바울은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충고하고 있다. 바울은 신약 안에서 예 수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도 믿음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바울이 가장 사랑했던 제자인 디모데는 전도자, 목자, 교사, 사도 등 많은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디모데의 위장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사용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바, 이는 당시로서는 건강한 식생을 위하여 적절한 처방으로 생각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왜 그러한 충고를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그 때까지 디모데의 치유를 비는 기도가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존 윔버, ‘능력치유’ p.256)

 

세 번째는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의 경우이다. 그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에서 동행했던 사람으로서(행 20:4)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바 울이 체포될 때 본의 아니게 그 원인이 되었던 사람이다(행 21:27-29). 딤후 4:20에서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병듦으로”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통해 판단하건대, 드로비모는 과로로 인하여 건강을 해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에바브로디도, 디모데, 그리고 다음으로 살펴보게 될 바울의 병은 모두 그들의 사역과 관련된 육체적, 영적인 긴장으로부터 온 것으로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 역시 오늘날 나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 즉 적절한 운동과 식사, 충분한 수면과 기분전환 등 건강에 관련된 자연적인 법칙들을 무시하고 자기의 몸을 혹사하는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드로비모의 병에 대한 위와 같은 이론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디모데후서를 쓸 당시 바울의 기도가 그를 치유할 만큼 충분치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존 윔버, ‘능력치유’ p.256)


네 번째는 바울 자신의 경우이다. 갈 4:13-14에서 바울은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바울의 병에 관하여 어떤 주석가들은 그것이 안질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말라리아 또는 간질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병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당시로서 바울이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갈라디아서는 그 기록연대에 관 한 이론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주후 48-49년, 또는 53-57년경에 쓰여진 초기 서신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후로는 바울이 자신의 병에 관하여 언급하는 일이 한번 도 없기 때문에 결국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병이 치유되었던가 아니면 병세가 호전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치유의 역사를 행치 않으셨던 네 가지 경우들에 있어 특기할만한 점은 거기에 존경받고, 능력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죄나 그릇된 믿음, 또는 무지 등과 같은 이유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걸맞는 것이 될 수 없다. 이상의 네 가지 경우들에 있어서는 즉각적인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바울은 병든 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계속해 나아갔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였다(행 28:8-9). (존 윔버, ‘능력치유’ p.257)

 

    이상에서 에바브로디도, 디모데, 드로비모, 바울의 질병의 원인에 관한 주장, 곧 “그들 역시 오늘날 나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 즉 적절한 운동과 식사, 충분한 수면과 기분전환 등 건강에 관련된 자연적인 법칙들을 무시하고 자기의 몸을 혹사하는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은 성경 밖의 일반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질병의 원인에 관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출애굽기 15:26과 신명기 28장의 말씀과 전혀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치유의 역사를 행치 않으셨던 네 가지 경우들에 있어 특기할만한 점은 거기에 존경받고, 능력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죄나 그릇된 믿음, 또는 무지 등과 같은 이유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걸 맞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역시 그릇된 주장이다. 이상의 주장대로 “위의 네 명의 사역자들이 신자들에게 존경받고, 능력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며, 개인적인 죄나 그릇된 믿음, 또는 무지가 없는” 올바른 하나님의 종들을 하나님께서 고치지 못할 질병으로 치셨다면 하나님은 불의의 하나님이라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불의한 하나님이 아니시며 불의의 아버지가 절대로 아니시다. 인간적인 눈을 볼 때 바르고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 하나님 앞에 분명히 바르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질병으로 고난을 주신 것이다. 출애굽기 15:26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 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지키지 아니한 규례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질병을 내리신다고 밝히고 있다.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지키면 일체의 질병은 내리시지 않겠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신유론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세상 목사들이 보기에 성공적인 교회를 운영한 존 윔버는 벧후 3:16에 기록 된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라는 말씀대로 질병의 원인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억지로 그릇되게 풀다가 그는 심장병을 치유받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왜 디모데는 치유를 받지 못하고 바울은 왜 고치지 못했을까?
딤후 1:1-8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이상의 디모데에게 쓴 바울의 편지 내용으로 보아서 디모데의 “비위와 자주나는 병, 곧 위장병”의 원인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 하노라”의 기록으로 보면 디모데의 믿음이 대단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의 기록으로 보면 디모데가 바울의 안수로 성령님의 은사를 받은 것이나, 이를 적극적으로 계속하여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디모데가 받은 성령님의 은사를 계속 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편지를 썼을리 만무하다. 한번 받은 성령님의 은사를 계속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또한 디모데의 신유에 대한 믿음이 온전했겠느냐의 문제가 야기된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으며 성경에 기록된 질병과 신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면 질병은 발생하지도 않고, 한편 하나님의 채찍으로 설령 질병이 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치유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디모데의 믿음과 그의 신유에 대한 믿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치유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딤후 4:20-21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이상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다”고 하였다. 왜 드로비모는 치유를 받지 못하고, 왜 바울은 치유를 못했을까? 드로비모가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다면 질병에 걸렸을리 만무하다. 이는 성경이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질병으로 채찍을 내리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드로비모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 에 온전히 매달렸다는 확증이 없다. 그가 바울이 전하는 천국복음과 신유의 복음에 온전히 의지했다면 하나님이 그에게 질병을 주시지도 아니했을 것이다. 그가 성경에 기록된 질병은 죄 때문에 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면 일체의 예외 없이 치유된다는 믿음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도 그를 치유하지 못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신유의 은사를 받은 박재봉 목사, 나운몽 목사, 현신애 권사, 이천석 목사, 조용기 목사, 김계화 원장의 경우에 신유의 은사가 계속하여 나나타지 않게 된 원인을 반드시 연구되어야 한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했는데 “시편”의 많은 부분을 기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타락할 것을 모르고 계셨다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다윗이 타락할 것을 아시면서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계속적으로 택하시었을까? 그는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 문에 쓰신 것이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많은 이방 여인을 왕비로 삼았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이방신을 섬김으로 그는 죽어 서 지옥에 갔을 것이다. 이럴 줄 아시면서 하나님은 솔로몬을 택하여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쓰게 하신 뜻이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할 줄 아시면서 그들을 창조하신 이유를 연구하면 밝혀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조건부로 창조하시었다. 생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죽지 않고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있으나,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즉 양자택일의 자유의지를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것이다. 이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 된 모든 인간들에게 적용된다. 자유의지를 남용하지 않으며 타락하지 않으면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의 남용으로 타락했으나 그의 아들 된 셋과 셋의 자손들, 에녹은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타락할 줄 아시지만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밝힐 만한 사람은 솔로몬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택하실 때에 그는 하나님을 잘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지의 남용으로 타락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신유의 은사를 받은 박재봉 목사, 나운몽 목사, 이천석 목사, 조용기 목사, 현신애 권사, 김계화 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믿음으로 귀히 여기시어 신유론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없는 데에도 병을 고치는 신유은사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손에서 놓지 말고 주야로 묵상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다. 성경은 신유의 원리에 대하여 자세하면서도 철저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에게 나타난 신유에 대하여 성경을 통하여 철저히 연구하지 아니 하였다. 그들은 그들에게 나타나는 신유에 대한 지식이 성경적이 아니었고 또한 곁길로 나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신유의 은사를 거두어 가신 것이다.

 

조용기 목사에게 신유의 역사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조용기 목사는 성경에 기록된 신유론이 정립이 안 되었는 데에도 신유의 은사를 주시어 신유사역을 하게 하시었다. 필자는 1997년 2월 25일부터 1999년 5월 24일까지 한국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오산리금식기도에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와 그의 저서들을 심층적으로 연구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런데 특히 금식기도원에서의 신유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 기간 중에 있었던 조용기 목사는 그의 해외의 집회에서는 신유가 있었다는 간증을 하였다. 이때의 간증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를 통하여 계속하여 신유 사역을 하게 하시었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은가? 타락한 종에게 계속하여 신유의 은사를 주실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사사기 13장-16장에 기록된 사사였던 삼손의 경우와 계시록 2:1-7의 에베소교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주님의 종들이 일단 타락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신유은사를 주시는데,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주신 은사를 거두어 가신다. 신유의 은사가 나타났다가 안 나타났다가 하면 노랑 신호등이 들어 온 것으로 알고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노랑 신호등이 빨간 신호등으로 반드시 바꾸어지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고전 2:1-5에서 성령님의 권능이 나타나지 아니할까 염려하여 심히 약하고 두려워하며 떨었다고 하였다. 
    사울 왕의 경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왕으로서의 권능을 단번에 거두어 가시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여러번 주시었는데, 계속하여 불순종함으로 마지막에는 전쟁에서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게 하시었다.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성령님의 은사를 타락하였다고 단번에 거두어가시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전에 경고를 주신다. 이 경고가 하나님이 주시는 노랑 신호등으로 알고 즉시 성경 속으로 들어와서 무엇을 잘못했는가는 알아보고 첫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조용기 목사에게 수많은 경고를 발하고 계신다. 할렐루야 기도원의 김계화 원장에게도 많은 경고를 내리신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