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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도자에게 반드시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복음의 사역자들이 귀신추방과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주님께 복음전도의 사역자로서의 임명을 아직 받지 않은 것이다. 어떤 근거로 이렇게 주장하느냐 하면 마 10:1에 근거한다. 예수님 당시에 열두 사도들이 병 고치는 권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주님의 제자 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주신 귀신추방과 신유의 권능을 받고 귀신추방과 신유사역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만약에 열두 사도들이 귀신추방과 신유의 역사 없이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다. 


마 10:5-14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이상의 기록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게 명하신 복음전도의 실체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대교회에 있어서 이상에 기록된대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 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예수님의 분부하신 말씀과 같이 신유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고 신유의 역사 없이 말만 가지고 전하는 전도, 선교는 예수님이 명하신 전도, 선교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께서 명하신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말만 가지고 전하는 것을 전도, 선교라고 잘못 정의되고 잘못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그릇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눅 9:1-6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눅 9:1-6에 의하면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은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고 하여 병을 고치면서 복음을 전했지 결코 말만 가지고 복음을 전하지 아니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의 후계자라는 오늘의 목사들, 선교사들, 전도사들의 전도는 병의 고침은 일체 없고 말만 가지고 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처사는 그들 스스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칠십인 제자들은 어떻게 복음을 전하였는가?
눅 10:17-21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 외에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시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과 동일하게 칠십 인의 제자들도 귀신추방과 신유사역을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열두 사도 직분과 칠십 인의 제자 직분은 물려받았다고 하는 오늘날의 복음의 사역자들이 귀신추방과 신유사역은 일체 없이 말만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열두 사도 직분과 칠십 인의 제자들이 귀신추방과 신유사역은 일체 없이 말만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임명한 사도나 제자들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의 복음의 사역자들이 예수님 당시의 열두 사도들과 칠십 인의 제자들과 같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말만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이들은 예수님이 세우신 복음전도의 사역자들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오늘날의 사역자들이 예수님이 세우신 복음의 사역자가 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눅 24:49, 요 20:22-23, 행 1:4-5,8, 행 2:1-4에 기록된 대로 중생한 후에 성령세례(충만) 곧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면 오늘날에도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과 똑같이 권능의 제자들이 되어 예수님이 명하신 바른 복음사역에 그대로 임할 수 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요 20:20-23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난해구절이다. 이 구절을 해석하지 못하면 복음전도와 신유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당시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과 오늘날의 제자들에게 맡긴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는 전혀 그 릇된 번역이다. 바른 번역은 “저희에게 작은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성령충만(성령의 권능 충만, 성령세례)을 받으라”이어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는 말씀은 성령충만(성령님의 권능충만, 성령세례)을 받으면 죄에서 온 질병을 치유해줄 수 있는 죄 사함의 권능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 권능을 가지고 질병을 치유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요 20:22의 말씀이 마 28:18에서 다시 설명되고 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 부부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여 그들은 죽게 되었다.
박형용 목사가 말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자금에 기부하는 것을 특별한 미덕으로 느낀 나머지 그들의 재산의 일부를 판 다음 마치 그들의 재산 전부를 교회에 헌납하는 것처럼 속였다. 베드로는 그들의 죄를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 위에 요청했다. (박형용 목사 ‘사도행전 주해’ p.86)

 

행 5:1-1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 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가 그들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을 헌금으로 냈다. 그런데 베드로는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만을 바친 것에 대하여 그와 그의 아내가 사단이 그들 속에 들어가 성령님을 속인 것이라고 하여 책망하여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즉시 죽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그들의 소유를 팔아 전부를 헌금으로 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들의 소유의 일부 또는 전부를 헌금으로 바치는 것은 그들 마음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될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베드로는 판값의 전부를 헌금으로 내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고 바로 이 죄 때문에 그들은 죽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도 베드로의 편에 서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죽이신 것이다. 그들이 죽게 된 원인은 판값의 전부를 헌금으로 내지 아니하고 거짓말의 죄 때문이었는데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은 행 5:1-11의 기록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들이 죽임을 당한 원인은 그들이 반드시 판값의 전부를 헌금으로 냈어야 했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판값의 전부를 내야했는가의 문제를 성경을 통하여 해석하면 그들이 죽임을 당한 원인을 밝혀낼 수 있다.  

 

민 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신 23:21-23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 
전 5:4-6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들의 소유의 일부 또는 전부를 헌금으로 바치는 것은 그들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사도들과 베드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를 내느냐 하는 것은 죄가 될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이 판 소유를 전부 받치지 아니한 것이 죄였다는 것인데 왜 이것이 죄였는가의 문제는 민 30:2, 신 23: 21-23, 전 5:4-6에 기록되어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는 말씀대로 그들이 소유를 팔면 전부를 받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했으나 서원한대로 하지 아니하고 거짓말한 것이 바로 죄가 된 것이다. 처음부터 그들이 하나님께 서원을 하지 아니 했다든지, 또는 일부만 드리기로 하고 일부만 드렸다면 전혀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서원하고 드리지 않는 것은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는 명령에 저촉된다. 바로 이 명령을 위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이를 책망하시었고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하여 그들을 죽이신 것이다. 
    요 20:20-23에서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에서 “성령을 받으라”는 전혀 그릇된 번역이다. 바른 번역은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이어야 한다. 성령의 권능, 성령세례, 곧 성령님이 주시는 권능은 바로 죄를 용서해주느냐 안 해주느냐에 관한 권한에 대한 것이다. 성령의 권능이란 세상적으로 말한다면 법원의 판사가 대통령으로부터 받는 판결에 관한 권한과 같은 권한이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은 직후 성령세례(충만)를 통하여 이 권능을 받고 복음사역을 하시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다”(마 9:1-8)고 하여 죄 사함의 권세를 행사하시어 죄로 인하여 생긴 중풍병자를 낫게 해주시었다. 베드로도 오순절 날 성령세례(충만)를 통하여 이 권능을 받고 복음사역을 하던 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만나게 되어 이 권능, 권세를 행사하여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고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