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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복음전도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지만 복음전도의 최일선에 선 제자들과 이들을 뒤에서 돕는 일반 제자들과 신자들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제자이면서 사도직을 맡은 것이다. 열두 제자들, 칠십인 제자들, 일반 제자들도 분명히 모두 예수님의 제자들이지만 맡은바 임무가 각각 다르다. 실례로 전쟁하는 군인들은 모두 군인들이지만 임무가 각각 다르다. 최전방의 소총수(분대, 소대) 중대, 연대, 사단, 후방에서 지원하는 병참(보급) 부대 등으로 구분되어 맡은 바 임무가 각각 다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지만 맡은바 임무가 각각 다르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 (질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10:5-8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상의 말씀은 모든 병을 치유하라는 명령이다. 모든 병을 고쳐주라는 뜻은 치유 불가능의 질병은 없으니 반드시 모든 병을 고쳐주라는 말씀이다. 신유를 위해서는 신유의 권능이 없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함으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이 권능을 값없이 거저 주시었다. 이렇게 거저 주었으니 제자들도 돈을 받지 말고 거저 고쳐주라는 명령의 말씀이다. 거저 고쳐주면 그들이 의식주를 해결해준다는 말씀이다. 의사들은 많은 돈을 드려서 의과대학에서 의술을 배웠고 이 의술이 없이는 병자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값비싼 의술을 값없이 그냥 거저 주시었고 그것도 모든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의 의술인 신유의 권능을 주시었다. 이러한 신유의 권능은 성령세례를 통하여 받는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신유를 통한 복음전도였다. 따라서 “신유 없는 복음전도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사실이 이상의 기록을 통하여 밝혀진다. “복음”이란 말은 복된 소리, 기쁜 소식이라는 것으로 실제로 복된 것, 기쁜 일이 이루어질 때 사용하는 말이다. 불치의 질병으로 신음하는 병자, 돈이 없어서 약도 살수 없고, 병원에도 갈수 없는 가난한 환자에게 복된 소식이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돈 없이, 값 없이, 약 없이 거저 치료해주신다는 것이 복된 소식이다. 이와 같이 실제로 복된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말만 가지고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이란 말의 뜻에 위배되는 어불성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사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고전 12:7-12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 12:27-30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 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위의 마 10:1의 기록에 근거하여 신유의 권능(은사)을 받지 않는 사도는 사도가 아니었듯이 사도의 직분을 부여 받은 오늘날의 목사도 신유가 없으면 목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고전 12:7-12, 12:27-30의 기록에 의하면 모든 신자들에게 모두 똑같은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유의 은사를 모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뜻에 따라 각자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마 10:1에 근거한 해석과 고전 12:7-12, 12:27-30의 기록은 서로 모순되는데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고전 12:27-30의 기록은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이지만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직책과 임무는 각각 다르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고린도 교회에 한명의 목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명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전 12:29에 기록된 사도들은 마 10:1에 나오는 열두 명의 사도들의 직분을 이어받는 목사들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예수님의 열두 명의 사도들이 모두 신유의 은사를 받아 복음사역을 행한 것 같이 이러한 사도직을 이어받은 교회의 목사들도 반드시 모두 신유의 은사를 받아 복음사역을 행해야 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의 목사들도 열두 사도들에 이어서 고린도교회의 사도들과 같은 임무를 분명히 이어 받았음으로 열두 사도들과 똑같이 신유의 은사를 받고 복음사역에 임해야 한다. 사도의 직임을 받은 제자들이 받은 은사들은 예를 들어 방언, 신유, 예언일 수 있다. 교사의 직임을 받은 제자들이 받는 은사들도 예를 들어 방언, 신유, 예언일 수 있다. 서로 돕는 직임을 받은 제자들 가운데 신유의 은사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 있다. 고린도 교회의 교사들의 직임 가운데 돕는 직임을 받은 제자들일지라도 사도직을 이어받은 제자들은 아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서 평신도들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사도직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다. 사도는 사도의 직임과 동시에 교사의 임직도 겸하지만 고린도 교회 내에서의 사도직과 교사직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마 10:1에서 말하는 사도된 열두 명의 제자들은 신유의 은사를 반드시 받고 잃어버린 양을 위한 치유의 사역을 할 수 있어야 했다. 고린도교회의 사도들의 직임을 받은 제자들은 마 10:1에 기록된 열두 명의 사도직을 이어받았으니 이들은 반드시 신유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교회내의 행정목사는 사도의 목사직이 아니고 사도직을 받는 목사를 돕는 직임을 받은 제자이다. 행 6장과 7장 그리고 행 8장에 나오는 빌립의 경우에 그는 처음에는 복음사역을 전담하는 사도직을 부여받지 않고 구제와 행정직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그가 사마리아성에 가서 신유의 은사를 통하여 복음전도를 행한 것을 볼 때 그의 직임은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상의 연구를 통하여 사도의 직임을 부여받은 오늘날의 목사들은 반드시 열두명의 사도들과 같이 신유의 권능을 받고, 신유를 통하여 복음사역에 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상의 기록들을 근거로 신유 없이 유창한 말만 가지고 전하는 복음은 복음이 결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도직을 이어받은 오늘날의 목사들이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신유는 일체 없이 설교만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근거는 한 구절도 없다. 현대교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목회사역에서 성령세례를 통한 성령님의 권능의 신유은사를 받지도 않고, 육체의 질병의 치유는 하나도 없이 지혜로운 설교만으로 상담을 통한 내적 치유사역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는 마귀에게 잡혀 있다는 증거이다.

 

“신유의 역사가 없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복음전도자는 모두 신유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면 “성령님의 은사들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라는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고전 12:7-11에 기록된 신유의 은사를 포함한 성령님의 아홉가지 은사들은 성령님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인데, 복음전도자들은 모두 신유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얼핏 보면 맞는 주장인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눅 9:1-2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눅 10:1,17-19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행 1:5,8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눅 11:11-13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너희 천부께 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오역이다. 바른 번역은 반드시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지 않겠느냐 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12제자, 70인 제자들에게 귀신추방과 신유의 권능을 주시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었다. 만약에 그들이 이러한 권능을 받지 않고 복음사역에 임했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이 결코 아니었다. 오늘날의 복음사역자와 예수님 당시의 12사도들과 70인 제자들의 사역과 전혀 동일하다. 예수님의 12사도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오늘날의 목사들이 12사도들이 받은 귀신추방과 신유의 권능(성령세례)을 받지 않고 복음사역을 한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부르신 종이 결코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신유의 은사(성령세례)를 받지 아니 했다면 목사가 결코 아니다. 눅 11:11-13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의 은사(권능)를 달라고 강청하면 반드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었으므로 반드시 받아야만이 그는 목사이다.

 

신유의 은사를 받은 목회자들에게 왜 계속하여 신유가 나타나지 않는가?
마 7:15-23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15-23을 연구해야 신유의 은사를 받은 목회자의 경우에 왜 계속하여 신유가 나타 나지 않는가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많은 신학자들이 여기에서 권능을 행한 자는 거짓 선지자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거짓 선지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신유를 포함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실례가 성경에 한 구절도 없다. 불신자인 거짓 선지자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지 않고 그들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표적을 행하는 경우가 있다.
    예수님께서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주님의 종들이 한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역을 잘하였으나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불법을 행하여 타락한 종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마 7:15-23의 말씀은 성령세례(성령충만)를 통하여 성령님의 권능, 곧 신유의 은사를 받은 주님의 종들이라 하더라도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불법을 행하여 타락하게 되면 그에게 주신 권능을 거두어 가신다.

 

마 7:15-23은 겔 18:24에서 해석되고 있다.
겔 18:24-27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겔 33:12-16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 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

 

    마 7:22의 기록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라는 말은 주님의 이름으로 신유를 행하고 권능을 행하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능을 행했던 주님의 사역자가 겔 18:24-27과 겔 33:12-16의 말씀대로 계속하여 의를 행치 아니하고 그 의에서 돌이켜 불의를 행함으로 타락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는 뜻이다.

 

어느 목사의 간증
처음에는 신유가 있었는데 교단에서는 신유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교단의 반대로 이에 호응했더니 2년간 전혀 신유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40일간의 금식기도 중 아무 것도 안 보여주시었고 오직 37일째 되는 날 오후 2회에 걸쳐 3개의 만나를 주신 후 40일 금식기도가 끝나는 날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노라’하며 안수했는 데도 신유가 나타났다.
 
    어느 목사는 이상의 간증을 LA 미주복음방송(2000년)을 통하여 하였다. 그런데 이 목사는 현재에도 신유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간증은 없었다. 필자의 질문은 “미국에 와서는 왜 안 나타나느냐? 미주복음방송에서 방송기자와의 나누는 말로만의 간증으로 끝내느냐? 한국에서 신유가 나타났다면 이곳에서도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니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는 나타났는데 에베소 교회에서는 안 나타났다고 말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조용기 목사의 경우에 외국에 나가 전도할 때에는 신유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의 소속의 오산리기도원에서 조용기 목사가 직접 인도하는 말씀과 기도의 집회에서는 일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 오순절 하나님의 성회소속 미주성경교회의 홍경표 목사의 경우 (8가와 후버근처에 위치)에 그 교회에 피아노를 기증한 순복음교회 소속의 여자 집사의 직접 간증에 의하면 그가 교만함으로 신유의 은사를 거두어 가시어 지금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의 케서린 쿨만은 신유와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던 사역자였으나 유부남을 사랑하여 그로 이혼하게 한 후에 결혼하였다. 그 후 그녀에게는 신유와 예언의 은사가 없어졌고 중환으로 사망하였다. 그녀의 사역의 초기에는 성령님의 역사로 신유사역을 하다가 마귀의 미혹으로 유부남을 이혼케 하여 결혼함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성령님의 권능을 거두어 가신 것이다. 왜 신유은사자들이 복음사역의 초기에는 나타났던 은사가 떠나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가를 신학계에서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신학교에서 이에 대한 교육을 처음부터 아예 받지 못하여 마귀에게 먹혀 넘어지게 된 것이다.
    현신애 권사, 이천석 목사, 나운몽 목사, 박재봉 목사, 조용기 목사, 김계화 원장 등이 받았던 성령님의 신유의 은사가 그들이 타락함으로 이 은사를 거두어 가시어 말년에 마른 막대기로 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처음에는 불완전하나마 어여삐 여기시어 은사를 주시어 신유사역을 하게 하시었다. 부족한 상태에서 은사를 주시었음으로 추후 계속하여 성경 안으로 들어가 오직 성경 말씀대로 살며 오직 성경대로 복음사역을 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교만하게 되고 교만 마귀가 들어가 연구를 전혀 소홀히 함으로 넘어지게 된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소홀히 하면 어떤 은사 사역자이든지 일체의 예외 없이 마귀에게 잡혀 넘어지게 되어 있다.
    신유의 은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의 성령님의 은사들은 사역자를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그 사역자가 그 은사를 마치 어떤 물건처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 사역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섰을 때, 그릇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을 때, 그를 도구로, 기계로 사용하여 역사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사역자가 하나님 앞에 깨끗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성령님의 은사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은사를 받은 사역자들이 그가 받은 은사가 계속하여 나타나지 않으면 인간들에게서야 과거에 나타났던 그 은사로 인하여 주님의 종의 대접을 받겠지만 은사가 떠난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마른 막대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은사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즉시 성경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성령님의 은사가 소멸되었는가를 하나님께 물으면서 성경을 상고하면 그 이유를 반드시 가르쳐 주시게 되어 있다. 바울이 고전 2:1-5에서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역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있지 않으면 성령님의 권능이 나타나지 않으며, 말로만의 복음이 되어 결과적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헛된 것이 되기 때문에(고전 1:17)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님의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여 “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었다”고 한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 거짓 사역자들만이 이단이 아니다.
신 13:1-5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마 24:24-26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 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고전 9:27을 연구하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 거짓 사역자들만을 이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전 9:27에서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라고 하였다. 성령세례(충만)를 통하여 신유의 은사를 받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는 간증이다. 마 7:15-23은 바로 이러한 뜻이다. 한번 받은 신유은사라 할지라도 그 은사를 받은 사역자가 바울의 간증처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지 않으면 그 은사를 거두어 가실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도리어 버림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 거짓 사역자들은 물론 이단이다. 정통교회에 속해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게 가르치며, 불법을 행하게 되면 거짓 사역자가 될 수 있고 이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