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신유기도에 소요되는 시간
배상길 목사의 주장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병든 자를 치유하셨는가 말씀으로 했습니다. 병든 자를 위해서 한다니까 안수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성경말씀을 읽어줌으로도 병든 자가 낫습니다. 말씀 자체가 능력이 있잖습니까. 꼭 안수기도만 해야 낫는 것이 아니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 말씀만 읽어주고 와도 치유가 나타나는 것이예요.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다 고쳤잖아요.(한국교회성장연구소–기독교 대한감리회 숭의교회[이호문 목사] 발행, ‘목회와 교회성장’ 제1집, 배상길 목사의 글, ‘치유목회와 교회성장’ p.63,65) 
서울대학병원 간호사가 병에 걸려 그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기에 병원에 심방을 가서 바쁘지만 한 시간 기도했습니다. 그 간호사가 임원한 방은 독방이지만 여섯 명이 입원하고 있는 특수한 방이니까 시끄럽지 않아요. 6명이 입원하고 있는 방에 들어가서 여러분 내가 환자를 위해서 예배를 드릴텐데 여러분이 30분만 떠들지 말고 예배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고 내가 당신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줄거니까 그렇게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 그렇게 하라고 해서 예배를 시작해서 찬송가를 몇 장 불렀습니다. 찬송이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찬송가 94장, 217장이라든지 몇 번을 부르고 그 다음에 기도를 하는데 아주 오래 했습니다. 흠뻑 젖는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가 사실 기도를 해보면 알지만 기도는 2-3분 한다는 것은 건성입니다. 기도 줄을 잡는데 5-10분 하다보면 정말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니죠. 그때부터 하나의 영감이 넘치는 기도 아니겠어요. 기도 좀 오래 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오래 20분쯤 했을 거애요. 아부 흠뻑 기도했어요. 한 시간 동안 그렇게 해주는데 힐링 목회를 하려면 괴롭습니다. 비싼 값을 지불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하려고 하지 않아요. 사실 건강한 사람들 목회하면 좋지 병든 사람이 뭐 좋겠어요.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배상길 목사의 글, ‘치유목회와 교회성장’ p.71-72)

 

신유기도에 소요되는 시간에 대한 찰스와 프란시스 헌터의 주장
산더러 움직이라 명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라고 하셨다. 이 ‘누구든지’는 바로 우리들 각자를 말하며 그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그저 누구든지 일꾼으로 삼으실 뿐이다. 더불어 “누구든지 기도를 하면”이라고 하지 않았고, “누구든지 말하면”이라고 했다. 기도하는 것과 단순히 말한다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고, 말할 때에는 무엇이 이루어지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산을 보고 바다에 던지우라는 말은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인가를 자각하고 내리는 명령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안에 있음을 알고 성경에서 지시하는 대로 이 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고 명령해야 마귀가 쫓겨나가는 이적이 나타난다. 이것은 소리지르거나 악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소리도 지르고 악을 써 보았다). 예수님께서도 병자를 붙잡고 기도하지 않으셨다. 제자들도 병자를 붙잡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병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멜리데 섬에서 제일 높은 보블리오의 부친의 병을 고치며 전도하였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행 28:8). 이것이 병 고치기 전에 앞서 기도한 성경의 예이지만 이것을 꼭 원칙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병을 고칠 때는 기도보다는 명령을 해야 한다(찰스와 프란시스 헌터 ‘신유의 방법’ p.67).
예수님께서 여기 지상에서 치유를 베푸실 때 그는 감정을 흥분시킨다거나 길고 복잡한 기도를 하지 않으셨다. 그는 단순히 환자에게 치유되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당신이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 권능이 당신에게서 흘러나온다. 사람의 신체에 닿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며 치유를 실행하는 것도 그의 권능이다. (찰스와 프란시스 헌터 ‘신유핸드북’ p.86)

 

예수님께서는 병자 앞에서 기도하지 아니하시고 말씀으로만 치유하셨다.
눅 4:31-37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린 병자를 고치시는데 기도 없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는 명령만으로 고치시었다. 여기의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는 말씀은 성령세례(충만)를 통하여 받은 권능을 가지고 명령해야 마귀와 귀신을 추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령세례(충만)를 받지 않고 명령할 경우에 마귀와 귀신은 나가지 않는다.

 

눅 4:38-39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 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눅 4:40  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눅 4:38-39의 기록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기도하지 않고 꾸짖음을 통하여 치유하시었다고 하였다. 눅 4:40에서 예수님은 막 16:18의 말씀대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대로 안수함으로 병자를 치료하시었다. ‘20분 동안의 흠뻑 젖은 기도를 해야 치료할 수 있다’는 배상길 목사가 주장대로 하지 않고 예수님은 안수만으로 치료하시었다.

 

눅 13:10-13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마 9: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눅 13:10-13에서 예수님은 “십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기도 없이 “네 병에서 놓였다”하시고 안수만으로 고쳐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 9:1-8에서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명령만으로 기도 없이 고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눅 8:41-56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 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아직 말씀하실 때 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그 부모가 놀라는 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의 믿음 보시고 안수나 기도 없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말씀만으로 고쳐주셨다. 또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일으켜 세우시는데 안수나 기도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는 명령만으로 살려주셨다. 

 

마 9:27-30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시니라.


막 3:1,5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7:24-30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마 9:27-30에서는 예수님은 두 소경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으로 기도 없이 고쳐 주셨고, 막 3:1,5에서는 예수님께서 한편 손 마른 사람을 기도 없이 “네 손을 내밀라”는 말씀만으로 낫게 하시었다. 막 7:24-30에서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해 주시는데 기도 없이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는 말씀만으로 치료해주시 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막 7:31-35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 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막 8:22-25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 하거늘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막 7:31-35에서는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 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열리라”는 명령으로 고쳐 주셨다. 막 8:22-25에서는 예수님께서 소경을 기도 없이 눈에 침을 뱉으시며 두 번의 안수를 통하여 고쳐주셨다.

 

마 8:1-3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눅 17:11-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 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마 8:1-3의 기록에는 예수께서 한 문등병자를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여 기도 없이 안수와 명령으로 고쳐주셨다. 그러나 눅 17:11-19에서는 마 8:1-3과는 다르게 열 명의 문둥병자를 안수 없이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명령의 말씀만으로 고쳐 주셨다.
 
마 17:14-20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이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막 9:17-29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 17:14-20과 막 9:17-29은 동일한 사건을 약간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병자를 기도 없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만으로 고쳐 주셨다.

 

질병치유와 귀신추방을 위한 믿음과 기도
마 17:19-20   이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막 9:22-23,29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눅 9:1-2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막 9:22-23,29의 기록은 마 17:19-20의 기록과 같이 귀신 추방을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며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첨가되었다. 즉 똑같은 사건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다르게 기록했다면 모순이 되기 때문에 마 17:19-20에는 막 9:22-23, 29에 기록된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생략된 것으로 해석해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이 일치하게 된다. 귀신추방을 위해서는 겨자씨의 믿음 즉 의심 없는 믿음과 평상시에 기도를 통해 믿음을 저축해 놓아야 하고, 실제로 귀신을 추방할 때는 평상시 기도로 축적 된 겨자씨의 믿음으로 명령하라는 말씀이다.

 

마귀(귀신)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군인이 적군과 싸울 때 적군 앞에서 총을 쏘는 훈련을 한 후에 적군을 향하여 총을 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싸우기 전 평상시에 총을 쏘는 훈련을 철저히 한 후에 적군을 만나면 무조건 총을 쏘아 격퇴시켜야 한다. 이와 같이 마귀와 귀신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평상시에 충분한 훈련으로 단련한 후에 적군과 전쟁을 개시하듯이 평상 시에 하나님께 기도를 통한 겨자씨의 믿음의 훈련을 철저히 한 후에 마귀와 귀신을 접하면 예수님과 같이 기도 없이 오직 명령만으로 추방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마 17:14-20과 막 9:17-29에 기록된 귀신추방을 위하여서는 믿음과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런데 마 10:1, 눅 9:1-2에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여 제자들에게 귀신추방을 위한 권능을 주시어 복음사역을 하게 하시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이때 받은 권능은 오순절 전 성령세례를 받기 이전에 복음사역을 위한 훈련용으로 임시로 주신 것이었으며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통하여 정식으로 권능을 받고 복음사역에 임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귀신추방을 위해서는 성령세례를 통해 권능을 먼저 받고 기도를 통해 확고한 겨자씨의 믿음을 가지고 귀신 앞에서는 기도 없이 명령만을 통하여 추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요 5:2-9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여기에 나오는 삼십팔년 된 병자의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는 그의 말에 근거하여 그는 몸의 거동이 대단히 불편한 중풍병자로서 반신불수였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기도나 안수 없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명령으로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다. 

 

요 9:1-3,6-7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안수나 기도 없이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명령만으로 고쳐 주셨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경우 1분 정도의 짧은 기도를 하시고 명령으로 살리셨다.
요 11:1,14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요 11:39-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죽어 무덤 속에 있던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 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1분도 안 되는 짧은 기도를 하신 후에 “큰 소리로 나사로 야 나오라”는 명령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이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참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많은 유대인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배상길 목사가 말대로 20분 내지 한 시간 동안 흠뻑 젖은 기도를 하지 아니하시고 1분도 넘지 않는 짧은 기도를 행하신 후 “나사로야 나오라”는 명령만으로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 

 

눅 7:11-17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 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요 11장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는 기도를 1분정도로 짧게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는 명령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런데 여기의 나인성의 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실 때는 기도 없이 “그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안수와 명령만으로 일으키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병자들을 고쳤다.
요 14:12-1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마 28:16-20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행 3:1-10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질병을 치유하는 방법을 보고 그대로 배운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그의 질병을 고쳐달라는 말도 하지 아니했는데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라는 명령만으로 그를 고쳐주었다. 여기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고쳐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안수도 하지 않고 오직 그들의 믿음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명령만으로 고쳐주었다. 예수님의 3년 동안의 공생애 중에서 무수히 병자를 고치셨는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1분정도의 기도를 하신 것 외에는 기도를 통해 고치지 않으시고 안수와 명령을 통하여 고치시었다. 이를 보고 배운 베드로와 요한도 기도하지 않고 명령만으 로 고쳤다. 그런데 오늘날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님의 제자 된 목자들이 예수님이나 제자들도 하지 않은 귀신들린 환자 앞에서, 병자들 앞에서 오랜 시간의 기도를 통하여 병을 고치려고 하는데 이것은 그릇된 처사이다.

 

행 8:5-8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빌립의 신유사역으로 “사마리아 성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는 큰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빌립 집사가 어떻게 귀신을 추방하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낫게 했느냐의 기록은 누가복음을 위시하여 4복음서에 자세히 기록된 예수님의 방법이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행 9:17-18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행 9:32-35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행 9:17-18에 다메섹에 이르는 길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강제로 눈먼 봉사가 된 바울(사울)은 예수님이 보내신 제자 아나니아의 기도 없이 안수만을 통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행 9:32-35에 베드로는 팔년 된 중풍병자를 기도를 하거나 안수하지 않고 “애 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는 명령만으로 고쳐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행 9:36-42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죽은 다비다를 일으켜 살리는데 베드로는 방안에 있던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기도와 명령으로 살려주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본 베드로는 예수님과 전혀 동일하게 기도한 후에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명령하였다. 행 9:36-42의 기록으로 보아 베드로의 이때의 기도 시간은 1분을 넘지 않으셨던 예수님처럼 극히 짧았다고 해석해야 한다. 

 

행 14:8-10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행 16:16-18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 14:8-10에서 바울은 루스드라에 있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쳐주는데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여 예수님과 베드로와 같이 기도하거나 안수 없이 명령만으로 일으켜 세웠다. 행 16:16-18에서 바울이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하여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여 쫓아내었다. 바울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하여 기도하거나 안수 없이 오직 “나오라”는 명령만을 하였다.
    행 19:11-12에 나오는 바울의 병고침은 요 14:12-1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장면이다. 4복음서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바울이 행한 치유사역은 예수님께서 행하는 사역보다 더 큰 것이었다.

 

행 20:7-12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 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한글성경(개역한글, 개역개정,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은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죽었다고 번역하였고, 이어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번역하여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글성경은 전혀 그릇된 번역이다. KJV와 NIV에서는 동일하게 “아이”가 아니라 청년(young man)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헬라어 원문성경에 충실한 올바른 번역이다. 예수님과 베드로처럼 바울도 죽은 자를 살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하여 기도를 행한 후에 “일어나라”는 명령을 통하여 살렸는데, 바울의 경우에는 이것과는 다르게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살렸다고 하였다.
 
행 28:7-10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바울은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였다.

 

질병은 죄에서 왔지만 죄의 회개 없이도 그냥 치유함을 받았다.
    예수님은 마 12:9-13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고, 막 8:22에 소경의 눈에 안수하심으로 눈을 뜨게 해주시고, 막 2:1-9에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고, 막 9: 15-26에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내어주시고, 막 10:46-52에 소경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요 5:1-14에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시었고, 요 9:1-7에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해주시었다. 베드로는 행 3:1-10에 성전 미문가의 앉은뱅이를 일으켜 주었고, 엘리사는 왕하 5:1-14에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을 고쳐 주었다고 기록 하고 있다. 이상은 모든 질병은 죄에서 온 것이지만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 말 없이 그냥 치유함을 받았다는 기록인데 성령세례(충만) 곧 성령의 권능을 받아 이 권능을 가지고 병자들을 고쳐준 실례들이다.